댄스 본능 케이팝…‘강력한 쇼트폼’ 날개를 달다 [ESC]
제스처·표정까지 사람 빛나게 하는 K안무, 쇼트폼과 ‘케미’
☞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검색창에 ‘에스레터’를 쳐보세요
데뷔하고 네 달 만에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 이름을 올린 걸그룹이 있다. 데뷔하자마자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뉴진스 얘기가 아니다.(뉴진스가 ‘디토’로 같은 차트에 오른 건 데뷔 6개월 만이었다.) 걸그룹 피프티피프티(FIFTY FIFTY)의 첫 싱글 ‘큐피드’는 뉴진스보다도 두 달이나 빨리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에 올랐다.
‘큐피드’ 공식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조회수는 올해 4월3일 기준 1329만회를 넘겼다. 처음 보는 그룹이고, 한국어 가사를 이해하지 못해도 음악이 듣기 좋고 안무가 귀엽다는 외국 팬들의 댓글이 달렸다. 미국과 유럽 청소년 사이에서 팬덤이 형성됐고 이들의 안무를 따라 하는 영상은 해시태그(#cupidchallenge)와 함께 틱톡에만 무려 7890만개가 올라왔다. 틱톡에서 먼저 인기를 얻기 시작한 노래가 현실 차트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신곡 홍보 수단 된 ‘챌린지’
2016년에 등장한 틱톡은 짧은 동영상 플랫폼의 원조라 할 수 있다. 2020년에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넷플릭스를 제치고 전세계 모바일 앱 내려받기(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으며, 2022년 기준 글로벌 이용자 수는 15억4천만명이다. 틱톡에서는 사용자들이 손쉽게 세로형으로 찍은 1분 이내의 영상이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진다. ‘본론만 짧게’ 다루는 틱톡의 성공을 신호탄으로 유튜브의 쇼츠, 인스타그램의 릴스까지 쇼트폼(숏폼) 콘텐츠가 인기를 얻었다.
쇼트폼은 ‘에스엔에스(SNS) 캠페인’이라 할 수 있는 챌린지와도 결합하며 열풍을 이어갔다. 케이(K)팝 챌린지는 노래나 특정 안무의 ‘킬링 포인트’를 동료 연예인이나 일반인들이 따라 하고 이를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에 올리는 방식이었다. 2020년 가수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가 큰 인기를 얻은 뒤 댄스 챌린지로 신곡을 홍보하는 가수들이 많아졌다. 지난달 13일 솔로 앨범 ‘로버’(Rover)로 활동을 시작한 엑소(EXO)의 카이도 같은 방법을 활용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11개의 안무 영상을 올렸고, 같은 음원을 활용한 3만개 이상의 영상이 챌린지 형식으로 퍼졌다. 카이의 ‘로버’는 지난달 24일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 음악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고, 써클 주간 차트, 아이튠스 톱 앨범 차트, 중국 큐큐(QQ) 뮤직 디지털 앨범 판매 차트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서경대에서 실용무용을 전공하고 있는 박주혜(23)씨는 인스타그램 릴스를 통해 카이의 로버 챌린지에 참여했다. ‘주카’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박씨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해 예술고등학교를 거친 9년차 댄서다. 동작이 크고 리드미컬한 아프리카 장르인 아프로비트가 주특기다. 지난달 31일 그를 만나 로버 챌린지에 참여한 계기를 먼저 물었다. “엑소의 오랜 팬이기도 하고, 로버의 포인트 안무에 아프로비트 동작이 포함되어 있어 잘 살릴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있었어요.”
박주혜씨는 10분 정도 안무를 익혔고 춤은 8번 반복해서 췄고 촬영은 스마트폰으로 같은 학과 친구가 도와줬다. “촬영과 편집을 잘한 영상이 반응도 좋아요. 아예 카메라와 삼각대, 짐벌(촬영용 거치대) 등을 갖춰놓고 릴스 촬영을 하는 친구도 있어요.”
그는 평소에는 알고리즘을 타고 퍼지기 좋은 챌린지를 주로 하고, 춤을 추고 싶은 노래가 생기면 따로 안무를 짠다. 반응이 좋으면 개인이 만든 안무가 챌린지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 안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는 강의 형식의 ‘안무 셰어’를 통해 춤을 알려준다.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하는
쇼트폼의 알고리즘을 타는 일은 댄서들 사이에선 큰 이슈다. 알고리즘을 잘 타기 위해 특별히 신경써야 할 포인트가 있을까? “일단 춤을 잘 춰야 눈에 띄어요. 잘하는 부분을 강조하거나 안무를 제 느낌으로 바꾸거나 표정 연기를 하는 식으로요. 그다음엔 영상의 심미성을 고려해요. 음악과 어울리는 장소를 고르려 노력해요. 로버의 경우 공사를 위해 비워놓은 강의실을 활용했어요. 발을 구를 때마다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장면에서 반응이 좋더라고요. 릴스는 전세계에서 시시각각 업로드되니까 이왕이면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뭔가가 필요해요.”
쇼트폼 콘텐츠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에 좋다. 박주혜씨 역시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거나, 친구를 기다리면서, 강의와 강의 사이에, 잠들기 전에 틈틈이 쇼트폼 콘텐츠를 소비한다고 했다. “앞으로도 쇼트폼 콘텐츠는 건재할 것 같아요. 앱을 한번 켜면 추천해 주는 영상을 둘러보다가 한 시간 정도는 쓱싹이에요. 마침 우리나라에서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여성 댄서 경연 프로그램)로 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있고, 외국에서는 케이팝의 인기가 한창이니까 한동안은 가수와 댄서 모두 쇼트폼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할 거라 생각해요.”
케이팝과 쇼트폼 콘텐츠는 정말 시너지를 내고 있을까. 돌(DOL)이란 예명을 쓰고 있는 비보이 박진형씨에게 의견을 구했다. 23년차 브레이크 댄서인 그는 17년간 춤을 가르쳤고 현재는 경기도 남양주에서 ‘레디투댄스’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춤은 어디에서나 통해요. 언어는 멀리 가지 못해도 춤은 갈 수 있죠. 케이팝은 쇼트폼 덕을 확실히 보고 있어요. 안무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음악이기에 더욱 그렇죠. 해외 아티스트가 릴스로 춤 영상을 둘러보다가 한국 가수에게 협업 연락을 한 경우도 있어요.”
쇼트폼의 매력은 접근성에 있다. 영상 길이가 짧아 편집이 간편하다. 누구나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다. 진입장벽이 낮아 인플루언서가 아니어도 자기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 유튜버에 도전하려고 비싼 카메라와 장비를 살 필요 없이 스마트폰 하나면 만든다. 쇼트폼은 놀이가 되기도 한다. 안무가 강경환(26)씨는 친구를 만나서도 “심심한데 릴스나 하나 찍을래?”라고 말한다. 춤을 추는 일이 직업인 그에게 쇼트폼은 가까운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이기도 하다. “예전에 친구들이 모이면 셀카를 찍었던 것처럼 요즘은 쇼트폼을 찍어요. 학교에서 수업 끝나고, 점심 먹고 길에서, 친구랑, 애인이랑, 가족이랑, 아니면 단체로요.”
쉬운 안무와 임팩트 강한 음악
릴스에 들어가는 안무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쇼트폼에서 유행하는 안무는 포인트가 직관적이에요. 따라 하기 쉬운 것도 특징이에요. 원래 안무에서 동작을 조금 덜어내고 챌린지용 안무를 따로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강경환씨는 이어 케이팝 안무와 쇼트폼 콘텐츠의 ‘케미’에 대해 설명했다. “둘은 특히 잘 맞아요. 케이팝은 아이돌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멤버를 돋보이게 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제스처나 표정, 움직임을 모두 활용해 비주얼을 강조하는 안무가 많아요. 케이팝 안무를 추는 개인도 멋져 보일 수 있는 그런 춤들이요.”
카이의 백업 댄서 팀의 일원인 강경환씨는 로버 챌린지에도 당연히 참여했다. 안무가로서의 업무와 릴스 촬영을 위해 춤을 출 때 분위기가 사뭇 달라 보였다. “일을 할 땐, 주제에 맞춘 춤을 고민해요. 강조해야 하는 제스처, 잘 보여야 하는 멤버, 그에 따른 대형처럼요.” 하지만 릴스의 경우에는 좀 느슨해진다. “릴스는 좀 더 오락의 목적이 강해요. 5분이면 영상 하나를 만들 수 있으니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고, 동작을 틀려도 괜찮아요. 좀 더 즐겁게 느낌에 충실한 춤을 출 수 있어요.” 촬영도 직접 한다. 삼각대에 휴대폰을 끼워 놓고 거울을 통해 찍기도 하고, 바닥이나 선반에 기대어 놓고 촬영도 한다. 연습실 영상을 크게 찍기 위해 스마트폰 가로 앵글도 활용하는데, 동영상을 플랫폼에 올릴 때는 자신의 동작을 강조하려고 세로로 자르기도 한다.
전문가의 영역이었던 영상 편집을 대중화한 것도 쇼트폼의 성공 요인이다. 기존 에스엔에스 앱 안에서 편집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프로그램을 따로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인스타그램 릴스의 경우 여러개의 동영상 클립을 넣을 수 있고, 손가락만으로 각 영상의 길이를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다. 동영상 전체에 필터를 씌워 다른 분위기로 보이게 하거나, 글자를 얹을 수도 있다.
챌린지에는 주로 해당 음악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들어간다. 다른 쇼트폼 앱들도 기능은 비슷하다. 축구로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너티에프시(FC) 소속이자 금융권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조유진(27)씨는 쇼트폼과 케이팝의 시너지 효과를 여기에서 찾았다. “예전처럼 시디(CD)나 카세트테이프를 이용해 노래의 전부를 듣지 않으니까요. 음악 차트에서 전체를 다운받거나 음악방송을 앉아서 보는 일 대신 릴스나 유튜브 쇼츠에서 음악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듣죠.”
쇼트폼을 통해 접한 음악은 임팩트가 확실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음악은 뒤로 넘기면 그만이다.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끝까지 듣지 않고 넘긴 음악과 영상을 기억했다가 다른 취향에 맞춰 다음 노래를 가져온다. 짧은 시간 안에 유행하는 노래를 알 수 있고, 기승전결 중 핵심만 뽑아 들을 수 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쇼트폼은 더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고 자발적으로 재생산하는 놀이의 도구가 되었다.
틱톡·쇼츠·릴스…내게 맞는 플랫폼은 무엇?
2022년 7월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와 데이터베이직이 공개한 ‘미디어·콘텐츠·플랫폼’ 조사 내용을 보면,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1990년대 중반 출생) 쇼트폼(숏폼) 사용자의 콘텐츠 하루 평균 시청 시간은 평일 75.8분, 주말 96.2분으로 매일 한 시간 이상이었다. 제트(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의 경우 이보다는 적었지만 평일 46.9분, 주말 58.7분이었다. 재밌는 영상을 많이, 효율적으로 보려는 엠제트 세대 취향에 따른 결과다.
독주하던 틱톡에 이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 합류하면서 2023년 현재 쇼트폼 시장은 삼각구도를 이루고 있다. 틱톡이 선두주자이지만 기존의 플랫폼 강자인 유튜브와 인스타그램도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더 많은 이용자를 끌어오고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해 제작자의 수익화를 지원하고 콘텐츠 제작 기능을 다양하게 만드는 등 지원도 적극적이다. 웹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시밀러웹의 쇼트폼 플랫폼 사용 시간 분석 결과(2021년 6월~2022년 6월)를 보면, 안드로이드 기기 기준 1일 평균 사용시간은 틱톡이 1시간27분으로 1위였고 유튜브 ‘쇼츠’는 1시간21분으로 틱톡을 바짝 추격하고 있으며, 인스타그램 ‘릴스’는 41분이었다.
틱톡은 중국 바이트댄스가 설립한 쇼트폼 전용 플랫폼이다. 2016년 전세계 150개 국가에서 75개 언어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틱톡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콘텐츠 제작과 업로드가 활발히 이어졌다. 음악, 증강현실(AR) 필터 등의 효과로 챌린지 붐을 일으켰다.
유튜브 쇼츠는 2021년 6월 출시됐다. 정보 전달 목적이 많아 내레이션과 텍스트 활용도가 많은 편이다. 기존 유튜브 콘텐츠를 쇼트폼으로 재가공해 원동영상으로의 유입을 유도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 릴스는 2021년 2월 출시된 인스타그램 인앱이다.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이란 신조어까지 만든 영향력 있는 앱인 만큼 감각적·시각적 콘텐츠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조서형 객원기자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깨끗한 선진국, 일본”…기득권의 들켜버린 ‘식민적 사고’
- 인터넷 도박까지 손댄 10대 아들, 어떡하죠? [ESC]
- 경찰, ‘마약 음료’ 제조범 등 2명 검거
- ‘강남 납치살인’ 배후 재력가 부부 신병확보…살인교사 혐의
- 대전서 만취 60대, ‘어린이 보호구역’ 인도 덮쳐 어린이 위독
- 강원 춘천 내일 아침 0도…내륙 서리·얼음
- ‘엠폭스’ 첫 지역 감염 방역 당국 비상…국외 여행 이력없어
- “채소? 하나도 안 써”…아이에게 새빨간 거짓인 이유
- 한국타이어 협력업체 노동자 260여명에 사직 통보
- 댄스 본능 케이팝…‘강력한 쇼트폼’ 날개를 달다 [ES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