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이태원 참사’는 없다… 경찰, ‘인파 안전관리 훈련’ 공개 [지금 현장은]

윤준호 2023. 4. 8. 09: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연예인 출현 등 군중 몰리는 돌발 상황 연출
인파 밀집·유체화·충돌 상황 가정해 시범
“하나의 출발점…여러 시나리오 훈련 필요
인파 사고, 사전 예방단계부터 시작해야”

“경찰서죠? 여기 종로 젊음의 거리에서 아이돌 팬 사인회를 하는데 사람이 몰려와서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살려주세요!”

서울 종로의 한 거리, 연예인의 길거리 팬 사인회 행사에 몰린 군중이 유체화돼 서로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군중 유체화’ 현상은 사람들이 밀착한 나머지 각각 독립적인 입자가 아닌 물 등의 유체와 같은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반복적인 112 신고를 접수한 112상황실장은 지역경찰을 현장으로 급파했다. 또 경찰서장과 시·도경찰청에 보고해 기동대와 경찰특공대, 소방구급차, 인파 안전관리차, 스카이차의 출동을 요청했다.

T자형 골목에서 군중충돌 현상이 발생했다. 경찰서장이 스카이차에서 현장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윤준호 기자
지난 6일 경찰청 기동본부가 인기 연예인 출현 등으로 군중이 갑자기 몰리는 돌발적 상황을 연출한 가운데 보인 ‘인파 안전관리 시범훈련’의 한 장면이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 이후 ‘경찰 대혁신 태스크포스’(TF)에서 마련한 개선책을 토대로 이날 실제 상황처럼 훈련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1㎡당 12명 밀집하자 “어, 어, 어∼”

이날 시범은 인파 밀집도 체감 시연으로 시작했다. 시범 인력이 차례로 1㎡짜리 투명 박스 안에 들어가며 인파 밀집의 위험성을 보였다. 12명째 들어갔을 때 박스 안 사람들은 더 이상 서 있지 못하고 무너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 당시에는 1㎡에 12∼16명이 들어선 수준으로 밀집했다“며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어 인파 밀집 상황과 유체화상황, 충돌상황(유체화된 군중이 휩쓸려 이동하다 막다른 곳이나 반대편으로 진행하는 군중을 만나는 경우)을 가정해 시범을 보였다. 이를 위해 서울 중구 서울경찰청 기동본부 주차장에는 하늘색 컨테이너로 T자형 골목이 만들어졌다. 훈련을 위한 연출이었겠지만,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가 난 해밀톤 호텔 옆 그 골목을 떠올리게 했다.

군중충돌 상황에서 투입된 경찰특공대가 그물망과 완강기를 이용해 군중을 구조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는 군중의 자력 탈출이 어렵고 압사 위험이 있다. 경찰청 제공
시범훈련에서는 T자형 골목의 세방향 입구에서 몰려드는 인파가 중앙 교차지점을 향해 끊임없이 앞사람을 밀었다. 골목 가운데서 꼼짝 못 하게 된 이들은 뒤에서 미는 군중의 힘을 그대로 받아내야 했다.

시연에서 경찰은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지점부터 교통을 통제해 대원들이 현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대비했고, 신속하게 현장으로 뛰어든 지역 경찰과 경찰 기동대가 인파 후미에서부터 사람들을 힘으로 떼어내 인파를 분산하기 시작했다.

아수라장이 된 탓에 안내방송만으로는 군중 유도가 불가능한 ‘충돌상황’에서는 컨테이너 위(실제 현장의 경우 건물 옥상)로 경찰특공대가 투입됐다. 경찰특공대는 건물 아래 군중 한복판으로 그물을 던져 의식이 있는 사람을 먼저 구했다. 의식이 없는 이들에 대해서는 특공대가 직접 인파 속에 뛰어들어 완강기를 이용해 신속하게 구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은 이날 시범 훈련을 위해 12개 부대 등 800여명을 동원했고, 새로 도입된 ‘출동용 중형승합차’, ‘인파 안전관리차’ 등 새로 도입한 장비 6종을 공개하기도 했다.

경찰은 군중 밀집 사고에 대비해 인파 안전관리차 등 장비 6종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인파 안전관리차가 지난 6일 진행된 인파관리 훈련에 전시돼 있다. 윤준호 기자
◆“인파 안전사고, 사전 예방 단계서부터 시작해야”

이날 훈련은 ‘주최자 없는 군중 밀집’ 상황에서도 경찰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김연수 동국대 융합보안학과 부교수는 “이 훈련은 하나의 출발점이지 종착지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여러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훈련을 고도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인파 안전사고는 사전 예방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오늘 훈련은 사후 대응을 얼마나 신속하게 잘 처리할 거냐를 보여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이번 이태원 참사처럼 자발적으로 모인 인파는 지자체와 지역경찰이 적극적으로 사전에 동선을 관리해야 한다”며 “특히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파들이 들고나는 길목을 잘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이 인파 관리를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으려면 ‘112기본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학부 교수는 “지금은 재난안전상황에서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근거해 물리력을 행사하는데 경찰이 인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이 애매모호하게 돼 있다”며 “‘112기본법’이 있으면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이 인파를 강제 이동 조치 하는 등 더 능동적으로 조처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경찰도 지자체와 협조 체제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사실 인파 밀집에 대한 사전 판단은 경찰의 업무는 아니다”라면서도 “경찰과 행안부·지자체 간 협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범정부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부연했다. 

한편 이날 시범훈련에는 일본 언론도 참석했다. 경찰 관계자는 “세계 최초로 인력을 동원해 실시한 훈련이고 이태원 참사에서 일본인 희생자도 발생한 만큼 일본 12개 언론사가 참석했다”며 “일본과 이스라엘 대사관 측에서도 행사에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