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집서 도살된 ‘충견’ 복순이.. 주범들은 ‘기소유예’?
지난해, ‘충견’으로 마을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삽살개 ‘복순이’가 학대당한 뒤 보신탕집에 넘겨져 목숨을 잃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학대로 다친 복순이를 보신탕 가게에 넘긴 견주와 보신탕 가게 주인에게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 동물보호단체가 반발하고 있습니다.
4일 전주지방검찰청 정읍지청은 불기소이유결정서를 통해 복순이 견주 A씨와 복순이를 넘겨받아 도살한 보신탕 가게 주인 B씨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다고 밝혔습니다. 기소유예란 불기소처분 중 하나로 무혐의와 달리 혐의는 인정하지만, 사정을 참작해 법정에 세우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지난해 8월, 복순이는 행인 C씨가 휘두른 흉기에 깊은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A씨는 복순이가 피를 흘리고 있는 12시간 동안 복순이를 방치했고, ‘동물병원에 데려가라’는 이웃의 성화에 못 이겨 복순이를 동물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이후 동물병원에서 150만원 가량의 치료비가 든다는 진단을 받은 A씨는 치료를 포기하고 B씨에게 복순이를 넘겼습니다. B씨는 복순이를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인 뒤 그 사체를 냉동고에 보관했습니다. 다행히 고기로 팔리기 전, 동물보호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가 복순이의 사체를 확보해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복순이는 지난 2019년, 뇌졸중을 앓는 A씨의 남편을 구해 마을 주민들의 사랑을 받던 개였습니다. 당시 A씨의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복순이는 큰 소리로 짖어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A씨의 남편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가족을 살린 개를 치료비가 모자라 보신탕집에 넘겼다는 사실에 여론은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검찰은 흉기를 휘둘러 복순이를 다치게 한 C씨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C씨는 ‘복순이가 내 반려견을 먼저 공격했다’며 범행 이유를 설명했지만, 검찰은 처벌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에 비해 복순이를 죽게 한 A씨와 B씨에 대해서는 법정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 건데요.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검찰이 내놓은 불기소결정서에 따르면 A씨의 피의사실은 인정되지만, 초범이라는 점, 동물병원에 데려갔으나 치료비가 많이 들어 치료를 포기한 점, 남편이 뇌경색 투병 중이고 생활고에 처해 있는 점, 범행을 반성하고 있다는 점 등을 기소유예 사유로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동물권을 연구하는 변호사단체 PNR의 서국화 대표(법무법인 울림 변호사)는 “보통 검찰에서 기소유예 판단을 내릴 때 고령이나 생활고 등 피의자의 상태를 고려하라는 지침이 있다”며 “그 사유들을 열거한 것으로 보이나, 사안을 지나치게 가볍게 본 듯하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사안을 엄중하게 받아들였다면 고령이나 생활고 등을 이유로 기소유예를 내리진 않았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반면 B씨의 기소유예 사유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검찰은 복순이를 직접 죽인 B씨에 대해 '복순이를 나무에 매달았지만 몽둥이로 때리는 등 추가 학대는 없는 점', '다시는 보신탕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진술한 점'등을 참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서 대표는 “황당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미 목을 매달아 죽였는데, 몽둥이로 때리지 않았다고 해서 죄질이 가벼워질 수는 없다”며 “검찰이 기소유예를 남발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을 듯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검찰은 A씨와 B씨에 대한 처분은 ‘검찰 시민위원회’의 심의를 거쳤다고 강조했습니다. 검찰 시민위원회는 검사의 기소 여부에 대한 적절성을 판단하고 권고하는 곳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시민위원회 7인 전원은 A씨에 대한 검찰 처분이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B씨에 대해서는 6인이 검찰 처분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법조계 현장에서 일하는 서 대표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는 “외부 의견을 듣는 위원회의 경우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꾸리지만, 실제로는 기관의 요구사항에 맞춰주는 경향이 있다”며 “시민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의견 표명을 하고 표결이 되는 구조인지 다소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검찰이 내세우는 B씨의 기소유예 사유와는 정 반대의 정황도 발견됐습니다. 비구협은 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B씨가 여전히 개고기를 판매한다고 폭로했습니다. 손님을 가장해 찾아간 비구협 활동가에게 B씨는 “아픈 사람들은 보신탕이 약”이라며 개고기를 판매했습니다. 이 점을 들어 비구협은 검찰 결정이 잘못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비구협은 시민들에게 “복순이 사건 범인들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도와달라”며 탄원서를 모집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탄원서에는 시민 4,000여명이 참여했습니다. 탄원서 모집이 마무리되는 대로 비구협은 검찰에 항고장을 제출할 예정입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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