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자랑’, 연극이 끝나고 난 뒤[MD칼럼]
[곽명동의 씨네톡]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집 밖으로 나서기 어려웠던 10여명의 엄마들은 커피 교육이 끝날 즈음 다음엔 도자기를 배울까, 연극을 할까 지나가듯 말했다. 이 말은 김태현 연출가의 귀에 들어갔고, 엄마들은 어떨결에 무대에 올랐다. 처음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엄마들은 대사가 입에 착착 감기고 연기를 통해 또 다른 세상과 접하면서 점점 연극의 마력에 빠져든다. 그러나 새로운 연극 ‘장기자랑’을 앞두고 엄마들 사이에서 질투와 갈등은 깊어지고, 급기야 몇몇은 아무 말도 없이 극단을 나가버린다.
이소현 감독의 ‘장기자랑’은 뭉클하고 감동적이며 따뜻하고 유쾌하다. 그동안 세월호 영화는 ‘슬픔’ 아니면 ‘투쟁’이었다. 한국사회는 희생자 가족에게 ‘유족다움’과 ‘피해자다움’을 요구했다. 이 영화는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슬픔의 한 복판에서 조금씩 힘을 내고 일상의 한 가운데로 한 걸음씩 걸어나오는 엄마들의 안간힘을 담아낸다. 엄마들은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아이들의 못다이룬 꿈을 연극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몸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고, 전문배우 못지않은 감정연기를 소화해낸다.
영화는 극단 노란리본의 연극 연습으로 문을 연다.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동료의 질문에 무대 위의 수인 엄마(김명임)는 “사랑은 전혀 다른 시야를 열어주는 것 같아. 지금까지 몰랐던 걸 말야”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장기자랑’은 사랑을 품고 있다. 실제 엄마들은 연극을 사랑하면서 평범한 삶을 벗어나 배우가 됐다. 아이들이 떠나기 전에는 몰랐던 꿈을 알게된 뒤 그 꿈까지도 가슴 깊이 사랑한다. 연극은 “유가족은 이래야 해”라는 편견을 걷어내고, 엄마들의 한없는 사랑을 드러낸다.
주인공에 욕심을 내는 영만 엄마(이미경)는 “나는 더 멋지게 살고 싶을 때가 있다”고 말한다. 아들의 생일에 딸기 케이크를 먹으며 눈물을 삼키다가도 무대에선 랩을 잘했던 영만이만큼 뛰어난 실력을 뽐낸다.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던 예진의 엄마(박유신)는 교복을 예쁘게 입기 위해 두 달 만에 15kg을 감량했다. 연극의 감초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씬스틸러 순범 엄마(최지영)는 그날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매번 노란 머리로 염색하며 살아간다. 누군가 노란색을 보고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도록.
인간은 슬픔이 아니라 이야기로 살아간다. 엄마들은 무대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풀어내며 상처와 좌절을 치유한다. 돌덩이같이 무겁게 박혀있던 응어리도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마모된다. 엄마들은 ‘장기자랑’을 끝내고 ‘기억여행’으로 넘어간다. 그 긴 대사를 언제 외워야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그런데 새로운 도전을 앞둔 배우들의 표정은 한없이 밝다. 아이들은 하늘나라에서 엄마들의 열정을 보고 슬며시 미소를 지을지도 모르겠다.
“내 꿈을 이루어줘서 고마워요, 엄마.”
[사진 = 영화사 진진]-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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