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를 잡아라” 파운드리 전쟁, 삼성 혼자서 될까
[주간경향] 반도체 업황 둔화로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삼성전자는 4월 7일 연결 기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60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95.75%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대 이하로 내려간 것은 2009년 1분기(5900억원)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매출은 63조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19% 감소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60∼70%를 차지하는 반도체 부문에서 4조원 안팎의 적자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의 TSMC를 추격하기 위해 대규모 설비·기술 투자가 필요한데, 반도체 부문의 적자로 투자 여력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9년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TSMC를 제치고 파운드리 1위를 차지하겠다고 했는데 메모리 분야의 다운사이클이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TSMC의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58.5%로 삼성전자(15.8%)를 크게 앞선다. 삼성전자의 설비투자 규모는 15조5000억원 규모로 TSMC(47조3000억원)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생산 능력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용인에 세계 최대 파운드리 단지를 구축하기로 한 결정은 향후 TSMC와의 점유율 경쟁을 위해 파운드리 생산 능력을 확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도체 업황은 하반기 회복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미·중 반도체 패권경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또 다른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대만과 일본이 협력해 한국과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고 있다. 한국은 기술개발 역량과 외교력을 총동원해 대응해야 하는 시기를 맞았다.
파운드리 상생 모델이 필요
파운드리 분야에선 TSMC와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메모리반도체에서는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거의 없어진 상황이다.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지 못한 결과다. 팹리스의 칩 설계를 파운드리 공정에 맞게 최적화하는 디자인하우스 업체인 코아시아의 설병찬 전무는 “메모리는 시스템반도체에 비해 매출과 이익 관리가 어렵다”면서 “우린 아직도 시스템반도체 투자가 메모리 대비 빈약해 다른 데보다 좀더 위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설 전무는 한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걸출한 파운드리를 갖추고 있음에도 시스템반도체의 패권을 가져오지 못하는 건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은 특정 기능을 갖춘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하고, 그 설계도를 기계가 알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작업을 뜻한다. “마치 빌딩을 지을 때 설계도가 필요하듯, 칩도 여러 층으로 올라가는데 층별로 설계도를 만드는 레이아웃 작업을 해야 하죠. 그 레이아웃이 완성되면 그 데이터를 삼성과 TSMC의 파운드리에서 로딩해 빛으로 회로를 찍고, 웨이퍼가 나오면 잘라서 패키징한 후 테스트를 하는 구조인데, 앞단의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디자인과 최첨단 공정이 있어도 칩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열심히 쫓아가면 된다고 믿지만, 최소 3~4년은 지나야 성과가 나올 수 있는 만큼 정부와 업계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대만은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IP·팹리스, 디자인하우스, 후공정 생태계가 단단히 꾸려져 있다. 20년 이상 인내하며, 실력을 키워온 결과 지금은 애플과 엔비디아 등 글로벌 팹리스들이 앞다퉈 칩 제조를 맡기는 곳이 됐다. 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픽셀플러스 대표)은 “대만의 경우 팹리스가 여러 기능에 맞는 칩을 만들어 파운드리에 맡기고, 그 공정에서 수율이 나오지 않으면 공정을 개선하는 일종의 피드백 루프를 통해 계속 반도체 공정이 단단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칩 시제품 제조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여러 팹리스가 비용을 분담해 하나의 웨이퍼를 구매해 칩을 제조한다. 자리를 배정받아 버스를 타는 것과 비슷해 ‘셔틀런’이라고도 부른다. 이성현 오픈엣지테크놀로지 대표는 “최근 국내 파운드리도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TSMC가 셔틀런을 많이 운영하는 편”이라면서 “한국의 경우 최신 공정에 집중하는 편인데 TSMC는 28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상의 레거시 공정도 없애지 않고 꾸준히 운영하고, 미리 생산 일정도 공개해 거기에 맞춰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른 여유가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국내 팹리스의 시제품 제작과 양산 물량을 지원하기 위해 민관이 공동 투자한 ‘상생 팹’(파운드리)도 검토 중이다. 정부와 파운드리, 팹리스, 자동차·전자 등 수요기업이 공동투자하고, 설비의 일부는 국내 팹리스와 자동차·전자 등 공급이 부족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할당하는 방식이다. 이병훈 포항공대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들어갈 규모가 되지 않아 중국 파운드리를 찾는 중소 팹리스를 위한 상생형 파운드리가 필요하다”면서 “팹을 많이 지어서 국내 팹리스와 상생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칩렛 기반 이종집적 기술에서 결판날 듯
일각에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칩 설계와 제조를 동시에 하는 삼성전자 같은 종합반도체 회사가 애플이나 퀄컴, 엔비디아와 같은 고객사의 칩 제조를 맡을 수 있겠냐는 뜻이다. TSMC가 공정 기술이 뛰어난 점도 있지만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모토처럼 정보 유출의 우려가 없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이 삼성전자보다 TSMC를 선호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장기적으로는 일리가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파운드리의 특성상 팹리스의 설계도면을 받아야 해서 파운드리가 속한 사업장(삼성전자)에서 경쟁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건 약간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지금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리하면 자금력이나 조직력이 크게 약화돼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봤다. 김 연구원은 “만약 유출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삼성전자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점에서 그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억측”이라고 말했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삼성의 파운드리 분사는 파운드리 사업부가 충분히 재무적으로도 자생 가능할 정도로 안정화되고, 팹리스-디자인하우스-파운드리로 이어지는 생태계가 다변화돼 안정화됐을 때 자연스럽게 논의될 것으로 전망한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TSMC의 파운드리 전쟁은 칩렛(중앙처리장치나 그래픽 처리장치, 메모리 등 기능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 기반 ‘이종집적’ 기술에서 승부가 나리라는 예측도 있다. 반도체 업계는 초미세 공정 양산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상반기 3㎚ 공정 양산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고, 2025년 2㎚, 2027년 1.7㎚ 공정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그 이상은 물리적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에는 회로의 집적도를 높이는 대신 새로운 소재를 섞어쓰거나 여러 칩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성능을 끌어올리는 이종집적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이병훈 교수는 “칩렛 기반 이종집적은 아무도 선점하지 않아 모두가 마구 달려가는데 아직 우리만 가만히 있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과 학교가 힘을 합쳐도 TSMC·일본 연합을 이길까 말까 한데 아직 삼성전자가 다른 회사나 국내 대학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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