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해법으로 유럽은 ‘이것’ 선택했다 [평범한 이웃 유럽]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하다 보니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나이 차이가 꽤 난다. 주로 20대 초중반인, 이른바 ‘Z세대(1997~2012년생)’에 속하는 이들이 낯설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이들을 흥미롭게 보는 만큼이나 이들도 나를 흥미롭게 보는 모양이다. 스위스 이민자의 삶이라든가,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는 일상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얼마 전에는 한 중국인 학생이 진지하게 의논할 게 있다며 따로 만나자고 했다. 들어보니 결혼과 출산에 관한 고민이었다. 25세 중국인 C의 고민을, 그의 동의를 얻어 정리하면 이렇다.
“나는 이때까지 중국 남자를 사귄 적이 없어. 철들고부터 생각한 거야, 중국 남자와 사귀는 건 리스크가 크다고. 이건 남자들에 대한 반감이 아니야. 중국 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남자 집단에 기대할 게 별로 없다는 믿음 때문이지. 동아시아에서는 그나마 중국이 공산주의 배경 때문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낫다지만, 그래도 성차별은 존재해. 더구나 내 고향인 시골 마을은 도시보다 차별이 훨씬 심하고. 집안일, 육아 전부 여자 몫이야. 오죽하면 우리 아버지가 나를 스위스로 유학 보내면서 외국인 남자를 만나라고 했겠어. 아버지가 그러더라고. “네가 아들이었으면 중국에서 중국 여자를 만나 살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딸이니 외국 남자를 만나 사는 게 낫다.” 그러다 여기에서 노르웨이 남자 A를 만난 거야. 내가 A와 진지하게 사귀기로 결정하기 전에 물어본 게 뭔지 알아? 노르웨이 역사에 혹시 일부다처제가 존재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느냐는 거였어. 나는 노르웨이 역사를 모르니까 말이야.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A와 사귈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 사라진 과거의 풍습이라 해도 그것이 현재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보거든. 지금의 중국이 그렇듯이.
다행히 노르웨이에는 일부다처제가 없었고, A와 나는 지금까지 잘 만나고 있어. A를 중국 우리 고향에 데려간 적은 없어. 그랬다간 큰일 날걸. 중국에선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오랫동안 남자 아이가 훨씬 많이 태어났어. 우리 세대에도 성비가 심하게 기울어져 있고. 중국에 있는 남자들은 외국인, 특히 백인을 보면 ‘우리 여자를 빼앗으러 온 것들’이라고 생각해. 백인 남성과 사귀는 중국 여성들을 그들이 어떻게 볼지 말 안 해도 알겠지?
A와 나는 결혼해서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했어. 그런데 스위스가 과연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나라인가 의문이 들더라고. 물론 아름답고 안전하며 생활수준이 높지.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잖아. 여긴 의무교육인 유치원 전까지는 돌봄 비용이 그렇게 비싸다며?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커리어를 포기하고 집에서 아이들을 본다며? 성평등 지수만 봐도 스위스가 서유럽에서 최하 수준이잖아. 부유한 나라면 뭐 해, 그 돈을 영유아와 여성에게 투자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야. 그래서 노르웨이로 가는 것도 생각을 해봤거든. 거긴 아이 낳아 키우는 과정에 정부 지원이 훨씬 잘되어 있더라. 외국인인 내가 비자를 받기도 더 쉬울 것 같고. 그러자면 A가 지금 스위스에서 쌓고 있는 좋은 커리어를 포기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어. 커리어냐, 가정이냐. 노르웨이냐, 스위스냐. 그게 고민이야. 그래서 외국인과 결혼해 이곳에서 아이들 키우며 살아온 네 얘기를 듣고 싶었어.”
‘외국인 엄마’ 비중 증가하는 유럽
C의 얘기를 들으며 내가 조언을 할 처지가 아니라고 느꼈다. 그처럼 치열한 고민 없이 중요한 선택들을 해온 내가 무슨 할 말이 있단 말인가. 그보다는 중국에 C와 같은 여성들이 얼마나 많을지, 그 여성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것이 중국과 다른 나라들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가 궁금했다. 지난 1월 중국 정부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지속적인 출산율 감소 때문이다. 그런데 C처럼 중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중국인 여성들이 많다면 어떨까. 저출생은 미국과 유럽 대부분 국가들에서도 심각하게 인식되는 사회문제다. 고학력에 일할 의지가 있으면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어 하는 이민자가 환영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합계출산율 0.78명’이라는 수치가 충격적이긴 하나, 저출생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산 지원금이나 육아휴직 등의 정책만으로는 곤두박질치는 출산율을 되돌리기 역부족인 상황에서 많은 나라들이 저출생 문제의 해결 방안 중 하나로 이민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국가가 아닌 세계적 차원으로 관점을 확장하면 이민이야말로 인구문제의 현실적 해법처럼 보인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국가의 문제는 인구 감소 자체가 아니다. 노동 가능한 청장년층에 비해 돌봄이 필요한 고령층의 비중이 큰 역피라미드 인구구조가 문제다. 반대로 일부 아시아 지역 및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청장년층의 비중이 높은 반면 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다. 간단히 생각하면 이들 인구가 국경 너머로 재분배됨으로써 일자리, 저출생 등의 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 듯하다. 실제 그럴까?
우선 관련 통계를 보면 이민이 출산율 증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다. 유럽연합(EU) 통계국(유로스탯)의 지난해 3월 발표에 따르면, EU 내 출산율은 계속 감소하고 있지만 ‘외국 태생 여성에 의한 출산’ 비중은 증가하고 있다. ‘외국 태생 여성에 의한 출산’이란 외국에서 태어나 해당국에 이주해온 뒤 아이를 출산한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EU 국가 중 외국 태생 여성에 의한 출산 비중이 가장 큰 나라인 룩셈부르크의 경우 2021년 태어난 아기 중 65%가 룩셈부르크가 아닌 다른 나라 출신 여성으로부터 탄생했다. 이런 ‘외국인 엄마’의 비중이 높은 유럽 국가들로는 스웨덴·독일(각 29%), 스페인(27%), 핀란드(15%) 등이 있다. 그 반대편에는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등이 있는데 이들 나라의 ‘외국인 엄마’ 비중은 2% 수준에 그친다. 각국의 이민 현황이 출산율에 영향을 미침을 짐작할 수 있다.
인구의 약 4분의 1이 외국인인 다문화국가 스위스는 어떨까. 스위스 연방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스위스 거주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1.52명이다. 그런데 이 여성들을 출생지별로 나눠보면, 스위스 출신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1.42명인 반면 외국 출신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1.78명이다. 스위스의 합계출산율이 EU 합계출산율(1.53명, 2021년) 수준을 유지하는 주요 배경에 이민이 있는 것이다. 2021년에 스위스 땅에서 태어난 아기는 총 8만9644명으로, 지난 50년 이래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이 중 스위스 국적 아기는 6만4132명이고, 외국 국적 아기는 2만5512명이다(스위스는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어서 부모 중 하나가 스위스인이어야 태어난 아기도 스위스 국적을 갖는다). 신생아의 약 28%가 외국인이라는 얘기다. 이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자동으로 국적이 부여되지도 않는 나라에 외국인들이 계속 들어와 아이를 낳는 이유는 뭘까. 첫째, 안정적인 고임금 노동시장, 둘째, (이민자들의 출신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탄탄한 사회복지 시스템이다.
출산 거부는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이 점에서 스위스와 비교되는 유럽 국가가 스페인이다. 20세기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스페인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스페인 내 이민 인구도 크게 늘었다. 1998년 스페인 거주자 중 외국 출신은 3%가 채 되지 않았으나 2011년에는 이 비중이 14%까지 증가했다. 건축업, 관광업이 발달하면서 같은 언어를 쓰는 중남미 국가에서 일자리를 찾아 이주해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유럽 재정 위기에 스페인 경제가 무너지며 이들이 맨 앞줄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서비스직, 단기 계약직의 비중이 스페인인보다 이민자들 사이에서 더 컸기 때문이다. ‘에스파냐 드림’이 무너진 자리에 이들이 남을 이유는 없었다. 스페인 통계청(INE)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 사이 남미 출신 이민자 중 80만380명이 스페인을 떠났다. 스페인은 현재 이탈리아·포르투갈과 더불어 유럽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다(2021년 1.19명).
이민은 저출생 대책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우선 이민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일자리와 복지뿐 아니라 외국인을 차별하지 않고 포용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자국민에게 더 투자해 아이를 낳도록 하지 왜 외국인에게 좋은 일을 하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자국민을 위한 출산·양육 지원이 아닌 이민을 통한 해법에 집중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동안 쏟아부은 예산과 온갖 대책이 실효를 내지 못했다는 경험적 결과다. 다른 하나는 출산율을 높여서 인구를 늘리는 것이 인류의 당면 과제를 해결할 근본 대책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이다. 출산율이 오르면 당장의 경제 상황은 나아지겠지만 지구와 환경에는 재앙이다. 아이 한 명이 덜 태어나면 1년에 이산화탄소 배출을 58.6t 줄일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Wynes & Nicholas, 〈The climate mitigation gap: education and government recommendations miss the most effective individual actions〉). 이에 따르면 아기를 낳지 않는 것은 비행기, 자동차를 타지 않거나 채식을 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효율적인 탄소배출 저감 행위다. 관점을 바꿔보자. 출산 거부는 희생을 회피하는 이기적 행위인가, 아니면 탄소 저감을 위한 이타적 행위인가. 인공지능과 ‘트랜스휴먼(과학기술로 신체 조건과 능력이 증진된 인간)’의 시대에도 예전 같은 노동력이 필요할까. 출산율 증가가 아닌 기존 인구 ‘재분배’라는 프레임이 안 될 이유는 뭔가.
철학자 피터 싱어의 저서 〈더 나은 세상: 우리 미래를 가치 있게 만드는 83가지 질문〉 중 한 챕터의 제목은 ‘우리가 인류의 마지막 세대라면’이다. 여기서 싱어는 기후위기 등으로 인류의 미래가 불투명한 시기에 아이를 낳는 선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기후변화의 문제를 대단히 심각하게 여긴다. 일부는 인류의 탄소 발자국 크기를 줄이기 위해 육식이나 해외여행을 중단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을 세대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미래세대가 없다면 기후변화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야 할 이유도 줄어들 것이다. 자, 만약 우리가 인류의 마지막 세대라면 어떻겠는가?” 인류는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 지속될 수 없다. 위기에는 도발적 질문이 필요하다.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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