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래를 품은 아이와 나무
인간은 나무와 함께 살며 문화 발전
숲에서 뛰놀며 마음이 건강해지는 아이들
숲 수업 일반화되어가고 있어 다행
봄바람에 흙가루가 포슬포슬 날리니, 괭이질하고 싶은 충동이 갑자기 일어나면서 몇 그루의 나무를 심고자 묘목원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묘목원에는 수많은 종류의 어린 나무들이 빠알간 새순을 뾰족이 달고서 자신의 본성을 도드라지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아이 교육을 맡고 있는 저로서는 그 모양새가 마치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앞으로의 행로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랑곳없이 오직 순수한 꿈과 희망을 키우며 돌진하려는 듯한 기세에 불쑥 웃음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한치의 앞도 모르면서 살아오는 가운데 엎어지고 넘어지나 하면 껑충 뛰어오르기도 하고 풍요와 피폐의 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 기쁨의 춤을 출 때도 있었고 고뇌의 늪을 헤매면서 줄곧 내달려왔다고 봅니다. 나무 또한 온 힘을 다하여 비바람을 견뎌내다가 따스한 햇살에 감사와 행복을 느끼는가 하면 살을 에는 추위에 온몸을 움츠리면서 쉼 없이 자신의 길이와 부피를 키워낸다고 봅니다.
아이들은 나무와의 공통점을 많이 지녀서인지 나무를 무척이나 좋아하더군요. 야들야들한 나뭇잎을 손바닥 안에 구겨넣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조물락거리기도 하고, 거칠거칠한 나뭇가지를 들고서는 자연발생적인 놀이들을 만들어내며 즐거움에 빠져드는 아이도 있답니다. 또 나뭇잎에 코를 가져다 대고는 연신 냄새를 맡더니, 나무 아래 누워서는 나뭇잎들이 햇빛과 바람과 만나 환상적인 빛깔을 연출하며 팔랑거리는 찰나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며 감상하다가 벌떡 일어나서는 두 팔을 활짝 펼쳐 나무둥치를 꽉 껴안기도 하더군요. 아이들은 꽃이 피거나 열매가 매달리면 더욱 흥분한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한 아이가 뜰보리수 열매를 자기 콧구멍에 계속 집어넣는 바람에 교사들은 경악하면서 아이의 콧구멍으로부터 뜰보리수 열매들을 빼내고서는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나무 앞에 몇 명이 모여들면 아이들은 상상외의 기이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답니다. 쓰러져 있는 큰 나무둥치를 발견하는 순간, 그 나무둥치를 자기들 숲자리로 가져가야 한다면서 여러명의 아이들이 영차영차 힘을 합치기도 하고 좋은 의견들을 서로 내어가면서 100미터 가까이 떨어진 자기들 숲자리에 온갖 어려움을 감내해가며 가져다 놓는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숲에서 썩은 나무둥치를 하나 발견하는 순간에 옛 유적이라도 발견한 듯이 시끌벅적해진답니다. 나무둥치를 에워싸며 둘러앉아서는 대단한 연구를 하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나무를 살펴보며 토론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는 자기들의 숲보물을 고이 보관하기 위한 나뭇집을 짓는다며 나뭇가지를 모으러 다니기도 하지요. 숲아이들은 나무의 성질을 배우고 나무를 닮아가며 나무처럼 자라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아이들을 위하여 나무가 많이 있는 곳으로 놀러가다 보면 자연스레 숲으로 가게 되는데, 숲의 개울에는 도룡농 알이나 개구리알 등의 생물들이 있어서 아이들의 호기심과 탐색의 기회가 풍요롭게 주어지게 됩니다. 아이들은 비온 뒤의 숲에서 버섯들의 향연을 구경했다가, 해가 쨍하니 나오는 날에 숲에 가서는 예쁜 버섯들이 사라졌다며 당황하면서 버섯들의 안부를 걱정하더군요. 아이들은 숲에서 거미줄이 떨어져 있으면 거미의 안전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 개미의 집을 밟으면 아니 된다고 조심하기도 한답니다. 이처럼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이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이 저에게는 숲교육을 실행하는 큰 보람으로 와닿곤 합니다.
나무가 있는 곳에 여러 생명들이 사는데, 나무는 이들 생명들을 이어주게 되고, 인간 또한 나무와 함께 살면서 인류문화를 발전시켜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옛적에는 딸을 낳게 되면 집 앞에 오동나무를 심고서는 정성껏 키웠다가 딸이 시집갈 때 그 오동나무를 베어 예단함을 만들기도 했지요. 마을 정자에는 느티나무를 심었고, 서당에는 매화나무를, 마을에 이름난 학자나 정승이 배출되면 회화나무를, 서원에는 배롱나무를, 사찰에서는 연꽃을 키웠었지요. 한식이 되면 조상의 묘터에 새 나무를 심기도 하였지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소나무가 병들어서 베어낼 때는 마을 사람들이 소나무 앞에 모두 모여서는 소나무에 흰 끈을 묶어주고 음식을 차려주고 소나무에게 막걸리를 부어주고 다 함께 곡을 하면서 모월 모일에 베겠다고 말씀을 올렸다고 하더군요. 이와 같은 행위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나름 기념할 만한 날이거나 의미를 담고 싶을 때는 ‘나무’와 함께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나무와 사람과의 인연을 좀 더 살펴보자면, 사람들이 마을을 형성하게 되면 마을의 뒤편과 마을 어귀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었답니다. 더운 여름에는 마을 숲이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주었고 추운 겨울에는 세찬 바람을 달래어주며 마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아파트를 지을 때 으레 나무를 곳곳에 심으며, 마을 대단지 옆에는 자연히 공원이 들어서며, 휴일이면 너도나도 산을 찾아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사람은 나무 없는 생활문화 공간을 상상할 수가 절대로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는 사람과 나무와의 관계성을 어린이교육에 심층적으로 연관짓고 있다고 봅니다. (사)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는 한국적 자연친화교육을 선도하려는 연구발표가 20여년간 이어져 왔습니다. (사)한국숲유치원협회는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숲공간의 필요성을 피력하면서 정부기관에 지원을 요청해왔고, 여러 차례의 심포지움과 많은 활동 및 출판 등을 통하여 한국적 숲교육 패러다임의 확산에 꾸준히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중 가장 큰 공로는 ‘동네숲터 발굴’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이 2/3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산자락들이 마을로 흘러들어 작은 숲터들이 동네마다 숨어 있습니다. 이 동네숲터를 발굴하여 아이들이 놀기 좋도록 다듬어서 교육장소로 활용하기 위한 과업을 지속적으로 실행해왔습니다.
숲에서 뛰노는 아이들은 앞으로 숲생명들을 깊이 사랑하는 정신이 확장되어 우주만물과 화애롭게 살아가게 될 겁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게 우리는 무한한 감사를 느껴야겠고, 미래를 위하여 우리 아이들은 나무와 공생해야겠습니다. 근간에 놀이중심교육이 활성화되면서 보다 더 자연을 찾고 나무와 숲과 함께하는 수업이 일반화되어가고 있어 다행이라고 보며, 귀하고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큰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도록 교육의 힘도 한껏 발휘해야겠습니다.
내일 지구가 사라지더라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노라고 했던가요. 오늘, 저는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뽕나무 한 그루를 심겠습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입안이 새까매지도록 오디를 따먹고는 헤벌쭉 웃으며 나무에게 고마워하도록 저는 오늘 뽕나무 한 그루를 심겠습니다.
김정화 경산 큰나무어린이집 대표이사(전 수성대 유아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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