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건물 사이 형형색색 열대꽃…‘젊은 예술가의 거점’ 치앙마이 [ESC]
전통공예·현대미술이 어우러져
젊은 예술가들에게 영감 주는 곳
마이이암미술관, 작가들 거점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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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 중 빨래하는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상의 행위를 이역만리 타국에서 하고 있다 보면, 이곳의 일상을 체화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한달간 머물렀던 타이 치앙마이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2019년 7월, 사흘에 한 번은 땀에 찌든 옷가지를 한아름 들고 코인세탁소를 찾았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낯선 언어가 오가는 대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혼재한 공간. 현지 특유의 냄새와 세제 향이 코끝을 찌르면 창밖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이 마치 전시된 그림처럼 다가온다. 돌아보면, 치앙마이에선 유독 그랬다.
현지 전통과 현대 예술의 접목
왜 그랬을까.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도시와 시골 사이의 경계에 걸쳐진 듯한 풍경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타이에서 방콕 다음으로 가장 큰 도시지만, 고층건물 사이에서도 울창한 나무와 형형색색의 열대꽃을 눈길이 닿는 곳마다 볼 수 있다.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잘 정돈된 주택의 정원 역시 발걸음을 자주 멈추게 한다. 치앙마이의 변하지 않는 풍경은 로컬 예술가에게 큰 영감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굳이 찾지 않아도 될 만큼 골목 사이사이에 자리한 많은 갤러리와, 플랜테리어와 라탄 공예로 꾸민 카페, 소품숍 등이 마치 자연 발생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치앙마이는 전통 공예에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때 타이 북부 란나 왕국의 수도였던 이곳의 장인들은 나무, 도자기, 종이, 보석 등을 이용해 예술품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타이 북부에는 등나무, 고리버들, 대나무와 같은 천연 재료가 풍부한 덕분이다. 여전히 지금도 치앙마이 사람들은 바구니부터 램프, 쓰레기 처리기까지 부레옥잠, 등나무, 바나나 나무 등의 섬유로 수제품을 만들며, 대대손손 수공예 유산을 지켜가고 있다.
현대에 접어들자 치앙마이에서는 동시대의 예술이 한동안 발전하지 못했다. 1988년, 조각가이자 설치 예술가인 몬티안 분마(1953~2000)가 치앙마이대학 미술학부에 부임하면서 그 이전엔 없던 새로운 예술이 치앙마이에 퍼지기 시작했다.(아시아 여행 매거진 <데스틴 아시안> 2017년 12월, 2018년 1월호 참고) 몬티안은 학생들과 함께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사찰에서 설치미술, 공연, 강연 등이 결합된 축제를 열거나 쇼핑몰, 거리 등의 장소에서 현대 미술을 선보이며 대중에게 다가갔다. 현지 전통과 현대 예술의 접목은 트렌드의 집결지인 님만헤민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들의 허브라고 볼 수 있다.
2016년 마이이암 현대미술관이 개관하면서 치앙마이가 젊은 예술가의 거점이라는 사실이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이이암 현대미술관의 운영자 에릭 분낙 부스는 집안 대대로 수집해온 타이의 현대미술을 공유하고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해 미술관을 설립했다. 도심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산깜팽 공예 마을에 들어선 미술관은 거울 타일의 반짝이는 외관이 금빛 사원과 대비되는 동시에 닮아있다.
나눔 가치 실현한 예술가 마을
마이암 현대미술관을 둘러보고 나니, 치앙마이의 젊은 예술가들이 더 궁금해졌다. 도심에서 약 4.5㎞ 떨어진 예술인 공동체 마을 반캉왓으로 향했다. 반캉왓은 2014년 치앙마이의 젊은 예술가인 나타웃 락쁘라싯이 주도적으로 설립한 예술가 마을이다. 14개의 타이 전통 가옥이 늘어선 골목을 따라 걸었다. 주로 1층은 스튜디오와 상점이며 위층에는 예술가가 거주한다. 여행자는 작품을 구입하거나 이따금 열리는 클래스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예술가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예술 비평가이자 작가 타니 포스다이크가 진행한 나타웃과의 인터뷰(tahneyalexandramay.com)를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는데, 요지는 ‘나눔’이었다. 그가 어린 시절 대가족 품에서 자라며 경험했던 나눔의 기쁨을 반캉왓의 핵심 가치로 삼은 것이다.
귀국을 목전에 두고, 다시 올드타운에 왔다. 한달 동안 님만헤민과 올드타운에 각각 숙소를 마련해 지낸 터였다. 올드타운은 란나 왕국 시절에 지은 성벽 안에 있는 구시가지로, 구글 지도에서 보면 정확히 네모난 모양이다. 경건한 금빛 사원이 지척에 있고 치앙마이 주민들의 느적느적한 일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님만헤민의 세련된 풍경보다는 올드타운의 정겨움에 마음이 동했기 때문일까. 여행의 마지막 주말을 이곳에서 보내기로 했다. 타패 게이트부터 성터 안쪽 직선도로를 따라 열린 선데이 마켓에서 라탄 가방을 하나 샀다. 디자인과 활용도는 꼼꼼히 따졌지만, 상점 주인이 첫번째로 제시한 가격에 그냥 흔쾌히 응했다. 예술품이란 생각에서였다. 호구로 생각했으려나. 아무렴 상관없었다. 전통 유산을 보존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가치는 이미 충분하니까.
치앙마이에서 만난 지속 가능한 포인트
-님만헤민에서 맛있는 브런치와 커피가 예술과 공존하는 카페를 찾고 싶다면, ‘갤러리 시스케이프’로 향해보자. 동그랗게 창을 내 잠수함을 연상하게 되는 건물에는 갤러리와 편집숍, ‘에스에스(SS)1254372 카페 ’라는 생경한 이름의 카페가 들어서 있다.
-‘디 아르텔 님만’은 가구와 오브제를 업사이클링한 호텔이다. 전통적인 예술품과 현대적 디자인, 치앙마이의 자연이 어우러져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치앙마이는 플리마켓의 천국이다. 플리마켓이 열리는 장소와 일정에 따라 여행 루트를 짜는 것도 추천한다. 산깜팽 공예 마을에는 주말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참차 시장’이 열린다. 은으로 만든 장신구부터 타이다이(실로 묶어 염색하는 기법)를 활용한 옷, 빈티지 그릇과 소품, 갓 구운 빵이나 신선한 커피까지 볼거리와 먹거리로 가득하다.
글·사진 박진명 <피치 바이 매거진> 에디터
지속 가능한 여행 매거진을 만든다. 텀블러를 사용하고 수영장 없는 호텔을 이용하는 등의 소소한 실천이 지구를 지킨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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