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열의 산썰(山說)] 4. 산, 그리고 동행(同行)의 미덕

최동열 2023. 4. 8.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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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 귀때기청봉 코스에서 조망하는 설악 암릉.

■등산 동행, 마음을 열고 교감하는 장시간 여정


산에 다니는 것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교감 할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등산은 동네 근교의 야산을 다녀온다고 해도 보통 2시간 정도는 소요되고, 설악산이나, 지리산 등 1500m 이상급 고산에서는 무려 10시간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많으니 시간을 투자하는 여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긴 시간을 동행(同行)한다면, 얼마나 많은 대화가 오갈까. 찻집에 앉아서 얼굴 맞대고 담소를 나눈다고 해도 1∼2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점에서 산과 함께하는 동행은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운 길고도 긴 대화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대화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밥도 함께 먹고, 차도 나눠 마시고, 험한 길에서는 서로 손을 잡아 끌어주고 밀어주기도 하니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진심어린 동행이라고 해도 좋겠다. 현대인들은 시간을 금쪽같이 여기며 매사에 쫓기듯 살아가는 경우가 많기에 여유를 가지고 함께하는 그런 시간이 더욱 값지다.

▲ 강릉 괘방산(통일안보등산로)의 벤치. 동행하는 산객들이 바다를 조망하며 쉬어가는 명소이다.

예전에 산을 함께 타는 것을 즐기던 한 친구는 “장시간 등산을 함께하는 친구야말로 친구의 급을 따질 때 최상급에 속하는 친구”라는 지론을 펴기도 했다. 이 친구가 우스갯소리로 들려준 얘기인 즉슨, 친구에는 3가지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술을 함께 먹으러 다니는 술친구’, 또 하나는 ‘목욕탕에 같이 가는 친구’, 마지막으로는 ‘함께 점을 보러 가는 친구’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엄밀하게 따지자면 그 가운데 가장 하치는 술친구요, 중치는 목욕 친구이고, 점을 함께 볼 수 있는 친구야말로 최상급에 속하는 친구라고 할 수 있다는 지론이다.

그렇게 구분하는 기준은 자신을 숨김 없이 얼마나 많이 드러내느냐 하는데 있다. 술친구에게는 얼마든지 속내를 감출 수 있으니 고주망태로 술에 취해 주정을 하지 않는 한 자신을 드러낼 일이 별로 없다. 반면에 목욕탕에 함께 가는 친구는 적어도 서로의 벗은 몸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사이가 되니 술 친구보다는 급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점을 함께 보러 가는 친구는 어떨까. 지나온 인생사와 고민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점에서 훨씬 특별하다. 제대로 된 점괘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과거에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낱낱이 까 보여야 할 때도 있다. 또 가정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맞닥뜨린 고민거리나 문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지 하는 것 등을 비교적 소상히 털어놓아야 하니 허물 없이 막역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점 보는 자리에 동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이류로 점 집에 같이 가는 친구야말로 먼 옛날 백아(伯牙)와 종자기(鐘子期)의 우정처럼 지음(知音)이 될 만한 친구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구분하고 볼 때, 함께 등산을 즐겨하는 친구는 적어도 점 집에 같이 가는 친구에 버금가는 사이 라고 해도 좋다는 논리이다.

▲ 정선 가리왕산 이끼계곡에서 만나는 야생초.

■고난과 즐거움 나누며 세상살이 지혜 공유


10여 시간씩 울퉁불퉁 산길에서 서로 의지하면서 자의적 ‘고행’을 해야 하고, 산이 연출하는 풍경과 정취에 함께 취하고, 장시간 수많은 얘기를 나눠야 하니 등산은 세상살이 지혜를 나누고 동반자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긴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산길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험로에서는 손을 내밀어 끌어주고 당겨줘야 할 때도 많고, 다치는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는 상대방을 부축하거나 둘러업고 하산해야 하는 고난을 감내해야 한다.

무거운 짐 때문에 힘겨워할때는 배낭의 짐을 덜어주는 배려가 필요하고, 여차하면 배낭을 아예 통째로 내 어깨에 추가로 얹어 짊어지는 수고를 마다하지 말아야 할 때도 생긴다. 배낭에 챙겨간 먹을거리도 내 것, 네 것 구분이 없다. 또 야생의 꽃이나 나무를 대하는 자세, 쓰레기를 처리하는 마음가짐 등을 통해 상대방의 인격까지도 가늠할 수 있게 되고, 본인이 먼저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상대방을 감화시키기도 하는 것이 산행 현장이다.

▲ 동해 무릉계곡 관음암 코스의 명품 소나무.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풍상을 이긴 소나무가 마치 자연이 분재를 해 놓은 듯 하다.

그렇게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동행하다 보면, 하산에 즈음해서는 함께 험산을 넘었다는 뿌듯함에다 긴 시간 곁을 지켜준 상대방에 대한 고마움 등등. 수많은 감흥이 교차하면서 서로에게 훨씬 가깝게 다가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요즘 중·고등학교를 비롯한 학교 현장에서 ‘사제동행(師弟同行)’이라는 이름 아래 단체로 스승과 제자가 태백산이나 설악산 등지로 등산을 하는 사례가 생겨나는 것도 체력과 극기 정신을 기르는 것 외에 등산의 이 같은 친화·교감적 효과를 기대한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등산이 끝난 뒤에는 사진이나 기억을 통해 추억까지 공유하게 되니 이미 산을 함께 탔다는 것으로 나는 그대에게 마음을 열었다.

▲ 산객이 홍천 팔봉산의 암릉을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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