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 풍선에 매달린 기상관측·우주과학
“2021년 이후 보고된 미확인비행물체(UFO) 366건 중 163건은 풍선과 관련된 것이다.”
미국 국방부가 지난 1월 12일 공개한 ‘미확인비행현상 2022년 연례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2월 4일 중국의 풍선이 미국 국경을 넘은 것을 확인한 미군이 미사일로 풍선을 격추했다. 미국은 이를 ‘정찰용’이라 주장했고, 중국은 단순 ‘기상관측용’이라며 부정했다. 최첨단 과학의 시대, 사람들이 UFO로 오인한 풍선의 진짜 임무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 "UFO? 아닙니다. 과학 임무 중인 풍선입니다"
● 하루에 4번, 연간 1460개 띄워 대기 정보 수집
3월 7일 오후 2시 49분 강원도 강릉 사천면에 위치한 강원지방기상청 과학기구 자동 발사장의 돔 뚜껑이 열렸다. 기상 관측 기계인 라디오존데를 매단 지름 2m 크기의 풍선이 하늘로 날아갔다. 풍선은 대류권을 넘어 성층권인 35km까지 올라가며 고도별 기온과 기압, 습도와 바람 등을 측정해 실시간 전송한다.
기상청은 이곳 북강릉을 포함해 해안선을 따라 총 일곱 군데 지역(백령도, 덕적도, 흑산도, 제주도, 창원, 포항, 북강릉)에서 하루 4번, 6시간 간격으로 풍선을 날려 보낸다. 오전 9시, 오후 3시, 오후 9시 그리고 새벽 3시에 발사장 돔 뚜껑이 열린다. 1년 동안 총 1460개의 풍선이 대기 정보 수집이란 임무를 안고 떠오른다. 풍선이 곧 과학기구인 셈이다.
우리나라만 기상 관측용 과학기구를 띄우는 것은 아니다. 미국, 일본 등 전세계 180여 개 국들이 자국의 기상을 관측하고 세계기상기구(WMO)를 통해 자료를 실시간으로 교환한다. WMO는 오전 9시와 오후 9시를 데이터 동시 교환 시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미국 국립기상청에 따르면 전 세계 약 900개 지역에서 과학기구가 발사된다. 오후 3시와 새벽 3시 관측 역시 WMO 권고 시간에 따른 것이다.
기상 관측용 과학기구는 대부분 고무 재질인 라텍스로 만든다. 지상에서 발사된 풍선은 높이 올라가며 점점 커지다 약 35km 높이에서 지름 6m까지 부풀어 터진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주변 공기의 밀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라디오존데는 이후 지상으로 낙하하지만 별도로 추적하지 않는다. 일회용이다. 송태준 기상청 관측정책과 주무관은 “과학기구 하나를 발사하는 데 대략 20만 원에서 25만 원 정도가 든다”고 설명했다.
풍선엔 공기보다 가벼운 헬륨이나 수소를 주입한다. 북강릉을 포함한 여섯 군데 지역은 수소를 사용하고 있다. 자동 발사장이 없어 기상청 직원이 직접 풍선에 가스를 주입해 발사하는 덕적도는 헬륨을 쓰고 있다.
수소는 헬륨보다 더 가볍고 저렴하지만, 화기와 접촉하면 폭발할 위험이 있다. 이 때문에 기상청은 자동 발사 시스템이 갖춰진 여섯 군데 지역에서만 수소를 사용한다. 이곳 북강릉도 자동 발사장이 건설되기 전에는 안전한 헬륨 가스를 사용했다.
기상관측용 과학기구를 성층권까지 올리는 이유는 대기 대순환을 내려다보기 위해서다. 지구 대기권은 낮은 높이부터 차례로 대류권, 성층권, 중간권, 열권으로 구분된다. 대류권은 지상으로부터 평균 10~12km까지인데 공기가 불안정하다. 지상에서부터 대류권계면까지는 고도가 높을수록 온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지면 근처의 따뜻한 공기가 상승함에 따라 공기 중의 수증기가 구름을 형성하며 기상 현상이 발생한다. 비가 내리고 천둥·번개가 친다.
성층권은 대류권과의 경계인 대류권계면에서 시작해 지표면에서 50km까지의 구간이다. 성층권은 제트기류의 변화에 의한 공기의 이동이 있다. 제트기류는 빠르고 좁은 공기의 흐름으로 대개 서쪽에서 동쪽으로 구불구불하게 요동치는 특징이 있다. 겨울철 제트기류의 요동이 커지면 시베리아와 북극에 갇혀있던 한파가 한반도로 내려온다.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세계 기상청에서 고무풍선을 띄워 올리는 이유는 이런 대기의 상태를 ‘실측’하기 위해서다. 위성과 레이더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직접 수집한 데이터만큼 정확할 수는 없다. 송 주무관은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가장 정확한 기상 데이터 수집 방법”이라 말했다.
● 재질・구조 개선 100일 체공도 가능해
2월 2일 미국 영공에서 발견돼 이틀 뒤인 2월 4일 미국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중국산 풍선을 두고 미국은 ‘정찰용’, 중국은 ‘기상관측용’이라 주장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풍선은 일반적인 기상 관측용 풍선과는 달랐다. 폴리에틸렌 재질로 만든 ‘초고압력기구(SPB・Super Pressure Balloon)’였다.
높은 고도에서 실험 혹은 관측을 위해 제작하는 과학기구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라텍스로 만드는 고무 기구와 폴리에틸렌으로 만드는 초고압력기구, 그리고 역시 폴리에틸렌으로 만들지만 초고압력기구와 달리 부력 가스를 배출하는 영압력기구(ZPB·Zero Pressure Balloon)다. 1783년 프랑스 발명가 조제프 미셸 몽골피에가 동생과 열기구 비행을 한 이후, 1890년대 고무 기구가 등장했다. 고무 기구는 대기 물리학 실험과 태양 및 우주 광선 연구에 사용됐지만 오늘날 라텍스 기구와 마찬가지로 특정 고도에 도달하면 터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폴리에틸렌 소재에 관한 연구가 이뤄졌고, 1950년 미국 항공공학자 오토 C. 윈젠이 폴리에틸렌으로 만든 고고도 풍선을 발명했다. 폴리에틸렌으로 만든 풍선은 약 30km 고도까지도 터지지 않고 고무 기구에 비해 훨씬 무거운 하중을 감당할 수 있었다. 이후 풍선으로 할 수 있는 과학 임무가 천체 물리, 태양 물리, 지리 정보 등 훨씬 다양해졌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초고압력기구는 기체를 넣는 ‘풍선’ 부분인 기낭을 완전히 밀폐한다. 풍선이 터지거나 내부 기체가 빠지는 일이 없기에 일정 고도 범위에서 오랫동안 떠 있을 수 있다. 심지어 성층권에서 낮 시간 태양열을 받아 기낭 내부 압력이 높아지는 상황도 버틸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초고압력기구는 성층권에서 장기적인 과학 실험을 하거나 일정 고도를 유지해야 하는 실험에 주로 사용된다. 초고압력기구의 체공 가능 기간은 최대 100일 정도다.
초고압력기구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국가는 많지 않다. 미국, 일본, 프랑스, 중국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프랑스국립우주연구센터(CNES), 중국우주기술연구원(CAST) 등 항공우주 분야 전담 국가기구가 수십 년 동안 고고도 과학기구 연구 및 제작을 주도하고 있다.
초고압력기구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폴리에틸렌 필름 제작 기술은 각국의 기밀로 부쳐진다. 폴리에틸렌을 2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 분의 1m)보다 얇은 두께로, 찢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과거 국내 고고도 과학기구 연구를 주도한 적 있는 이관중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고어라고 부르는 필름 조각을 열로 가해 한 장씩 붙여야 하는데 NASA에 방문했을 당시 수십 년 동안 그 일을 담당한 직원들의 숙련도가 인상 깊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폴리에틸렌으로 만든 대형 과학기구는 대부분 재활용된다. 과학기구의 비행은 다른 나라의 영공을 침범하기 직전 종료되는데, 지상에서 과학기구에 설치된 비행 제어 시스템에 종료 신호를 보내면 낙하산과 과학 임무 수행 장비가 실린 곤돌라가 풍선에서 분리되고, 기낭이 찢어지며 헬륨 가스가 분출된다. 기낭과 낙하산, 장비들이 지상 혹은 해상으로 떨어지면 이를 회수해 개조한다.
이렇기에 “민간 기상 관측용 풍선이 통제력을 잃어 실수로 미국까지 간 것”이란 중국의 주장은 명료하지 않다. 일반적인 기상 관측용 풍선과는 재질과 구조가 다른 초고압력기구이기도 하거니와 장기 체공을 염두에 둔 태양광 패널까지 장착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추진 장치 없이 단순 바람의 흐름을 이용해 지구 반 바퀴를 돈 풍선으로 특정 군사시설을 정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다만 미국까지 풍선이 날아가게 내버려 둔 이유가 있을 가능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 비용↓ 정확도↑우주 장비 성능 검증에 효과적
NASA를 비롯해 JAXA, CNES, CAST 등 해외 항공우주 분야 국가연구기관은 우주 업무를 총괄하는 팀 아래 과학기구를 연구하는 조직을 두고 있다. 2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전적인 방식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이유에 대해 최성환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 우주과학본부 책임연구원은 “가까운 우주에서 직접 실험 및 관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상에서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이나 모사 실험이 아무리 정교해도 실측하는 것보다 정확하지는 않다. 또한 풍선은 직접 우주로 가서 과학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항공기, 위성과 비교해 비용이 상당히 저렴하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우주 환경에서 사용할 장비를 고도 및 기온별로 검증하기 위해 자주 사용한다.
2019년 9월, 천문연은 NASA와 함께 풍선으로 ‘차세대 태양 코로나그래프’라는 장비의 성능을 검증하는 프로젝트인 ‘BITSE(Balloon-born Investigation of Temperature and Speed of Electrons in the corona)’를 진행했다. 차세대 태양 코로나그래프는 자외선 영역에서 코로나를 관측해 이전까지 관측된 적 없는 태양 코로나에 관한 정보를 얻는 장비다. BITSE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최 책임연구원은 “태양 코로나그래프를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올리기 위해 NASA와 회의를 이어가던 중, NASA의 제안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현재 천문연은 BITSE 프로젝트의 결과를 바탕으로 차세대 태양 코로나그래프를 개선 중이다. 차세대 태양 코로나그래프는 2024년 6월 스페이스X의 우주 화물선에 실려 ISS에 부착될 예정이다. 최 책임연구원은 “과학기구 실험의 의미와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라 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의 과학기구 연구는 중단된 상태다. 이관중 교수팀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약 5년 동안 진행한 연구가 최초였고, 또 현재까지 유일한 연구다. 이 교수팀은 2018년 ‘스누볼(SNUBall)’이란 영압력기구를 자체 제작해 회수에 성공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이후 관련 연구는 이어지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지형적인 한계다. 과학기구 연구시설과 발사장을 지으려면 인적이 드문 광활한 평야나 사막지대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산악지형과 인구 밀집 지역이 많고, 국토가 작아 대부분의 영공이 항공로로 편성돼 있다. 지형적 한계를 극복할 만큼 국내에서 과학기구에 대한 수요가 확실하지 않은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일본의 경우엔 홋카이도 동쪽 끝에 과학기구 전용 발사장을 설치하고 바다를 향해 풍선을 날린다. 다른 나라 영공을 침범할 위험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해군 조종사로 복무하며 모함과 헬리콥터 간 무선통신 문제를 비용이 낮은 과학기구로 풀고자 이 교수팀에 합류했던 강정표 해군 항공사령부 중령은 “국내에서는 마땅한 발사 장소가 없어서 영덕 축산항 방파제에서 발사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1875년 프랑스 열기구 조종사인 조셉 크로스 스피넬리와 테오도르 시벨은 분광기를 들고 열기구에 올랐다. 이들은 지구 수증기의 기원이 태양이 아닌 지구 대기권이란 것을 확인했다. 천문 분야에서 과학기구를 사용한 최초의 실험이었다. 오늘날 과학기구의 활동 영역은 대류권, 성층권을 넘어 더 먼 우주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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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4월, [기획] 풍선에 매달린 과학, 고고도 과학기구
[이수린 기자,김태희 기자 surinse@donga.com,tae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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