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영원한 항해자, 지구인의 전령 보이저호[김정욱의 별별이야기](10)

김정욱 기자 2023. 4. 8. 0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경제]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우주.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은 일찌감치 우주의 가치에 눈을 뜨고 그 공간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자체 기술로 만든 위성발사용 로켓 누리호를 쏘아올리고 ‘우주항공청’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우주 개발에 뛰어들고 있죠. 미지의 우주 그 광활하고 거대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풀어내려 합니다. <편집자주>

보이저1호. 사진 제공=나사
인류가 만든 탐사선 중 가장 멀리 떠나 있는 보이저호

저는 46년전 지구를 떠났습니다. 현재 지구인들이 쏘아 올린 우주 탐사선 가운데 가장 멀리 가 있죠.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과학자들이 만든 제 이름은 ‘보이저1호’입니다. 1977년 9월 5일 미국 플로리다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됐어요. 제 쌍둥이 형제인 ‘보이저2호’는 저보다 앞서 같은해 8월 20일에 지구를 떠났습니다.

제가 쌍둥이 형제보다 뒤에 발사됐는데 왜 1호인지 궁금하다고요? 속도는 제가 좀 더 빨라 2호보다 더 멀리 가 있기 때문에 1호 이름이 저에게 붙여졌죠.

우리 쌍둥이 형제는 현재도 지구와 교신을 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우주공간으로 떠났지만 아직 고장난 곳 없이 우주를 항해하고 있어요. 우리의 임무는 목성과 토성 탐사였지만 1989년부터는 성간우주(항성과 항성 사이 공간) 탐사로 바뀌었습니다.

태양권 외부에 있는 보이저1호와 2호의 위치를 보여주는 그림. 그래픽 제공=나사
지구인의 메시지와 위치지도를 담은 보이저호

우리의 임무는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지구의 과학자들은 이 넓은 우주에 지구에만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죠. 그래서 저에게 목성·토성·성간우주 탐사 외에도 ‘지구인의 전령’이라는 임무를 줬습니다.

저와 보이저2호에는 금속으로 제작된 레코드판이 실려있습니다. 구리로 만들어진 이 레코드판에는 지구에서 들을 수 있는 자연의 소리와 인류가 만들어낸 음악, 그리고 지구상의 언어 중 55개 인사말(안녕하세요)이 녹음돼 있습니다. 한국어도 포함돼 있어요. 또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도 담겨 있죠.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는 아래와 같은 인사말을 담았습니다.

“이것은 멀리 떨어진 작은 행성에서 보내는 선물입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소리와 과학과 우리의 모습, 음악, 생각, 감정들이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합니다. 언젠가 은하 단위의 문명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이 해결되길 바랍니다. 이 레코드는 우리의 희망과 결의, 그리고 광대한 우주에 대한 경외를 담고 있습니다.”

보이저 1·2호에 실린 레코드판. 오른쪽 둥근판이 지구의 소리와 언어, 사진 등이 담겨 있는 레코드판이고 왼쪽이 이를 재생하는 방법을 담은 사용설명서이다. 사진 제공=나사

저희에게 이런 레코드판을 탑재해놓은 이유는 지적 외계생명체가 우리를 발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끝없이 우주를 여행하다 지구와 같은 또는 지구보다 더 발전한 문명을 가진 외계 생명체에게 발견됐을 경우를 대비해서 지구를 우주에 알리기 위함이지요.

이 레코드판이 오랜 기간 보존될 수 있도록 과학자들은 금박을 입혔습니다. 우리를 보낸 과학자들이 예상하는 레코드판의 수명은 10억년 입니다.

만약 지구인처럼 자신들 외 다른 행성의 생명체를 못 만난 외계인이 우리를 발견한다면 그 행성은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아마 외계인을 신봉하는 단체는 그야 말로 ‘대박’이 터질 것이고, 일부 단체는 종교로까지 발전할 수 있겠네요.

외계인이 우리를 발견해도 지구와 언어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 레코드판에 소리와 영상을 재생할 수 있을지, 지도와 그림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우주에서 각 문명이 의사소통하는 언어는 서로 다르겠지만 우리를 만든 나사의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공통으로 통하는 언어로 레코드판 재생법을 새겨 놨답니다. 우주의 공통 언어란 바로 ‘과학’입니다. 1더하기 1은 우주 어딜 가나 2가 되고, 수소 2분자와 산소 1분자가 만나면 물이 된다는 것은 우주 어디에서도 똑같이 통하는 법칙입니다.

우리 쌍둥이 형제들에게 탑재한 레코드판에도 이 같은 법칙이 적용되게 끔 최대한 쉽게 과학의 언어로 표기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를 발견한 외계인이 이 레코드판을 재생하지 못하더라도 자신들이 만든 게 아니고 다른 행성에서 인위적으로 제작해 보냈다는 것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적어도 자신들이 우주에서 더 이상 외로운 존재는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겠죠.

1990년 2월14일 보이저 1호가 지구에서 61억㎞ 떨어진 거리에서 촬영한 지구. 사진 제공=나사
보이저1호, 모든 인류가 찍힌 ‘창백한 푸른점’ 사진을 찍다

현재 저는 태양으로부터 약 237억4000만km 떨어져 있고, 보이저 2호는 약197억9000만km 떨어져 있습니다. 저와 2호의 서로 거리는 200억km 정도 됩니다.

1986년 보이저 2호는 천왕성을 가까이서 비행한 최초의 탐사선이 됐습니다. 보이저 2호는 천왕성에서 2개의 새로운 고리와 10개의 새로운 위성을 발견했죠.

이후 저는 2012년 8월, 보이저 2호는 2018년 11월 태양권의 경계면인 성간우주에 도달했습니다. 태양계를 벗어난 셈이죠.

나사의 과학자들은 저와 보이저2호가 해왕성을 통과한 뒤 임무를 종료시키려 했지만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태양계 안쪽으로 카메라를 돌려 사진을 찍어보자고 제안했죠. 저와 2호에 장착된 카메라는 태양빛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자칫 카메라 렌즈에 손상을 줄 수 있어 나사 과학자들 일부는 반대했지만 세이건의 주장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1990년 2월 14일 저는 카메라를 태양계 안쪽으로 돌려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때 작은 점 하나가 찍혔는데 이 사진 바로 그 유명한 ‘창백한 푸른점’이라고 불리는 지구 사진입니다. 모든 인류가 찍힌 사진이죠. 당시 저와 지구와의 거리는 61억km였습니다.

보이저2호가 촬영한 목성(왼쪽)과 토성. 사진 제공=나사

저와 보이저2호는 2025~2030년이면 수명을 다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탐사 역할은 완전히 종료됩니다. 우리는 우주의 어느 중력장에 붙잡히지 않는 이상 수명을 다해도 계속 우주 공간을 날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전령 임무는 계속 남아 있어요.

지구에서는 오늘도 주식거래가 이뤄지고, 자동차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사람들 개개인은 바쁘게 살겠죠.

46년전 지구를 떠나온 우리는 여전히 우주 공간을 외롭게 날아가고 있습니다. 지구의 사는 여러분, 오늘도 바쁘게 생활하겠지만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태양계 밖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김정욱 기자 mykj@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