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는 '손끝의 암호' 지문...'나노' 인공 지문까지 나왔다
오늘도 지문으로 스마트폰 잠금 화면을 해제하셨나요. 지문은 사람마다 달라 암호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런 지문은 어떤 이유로 우리 몸에 존재하는 걸까요? 지문의 정체와 무궁무진한 활용까지 모두 알아봤습니다.
○ 지문의 탄생은 우연의 연속
● 지문을 조각하는 단백질 3인방
지난 2월 데니스 헤든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 유전학과 교수팀은 지문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단백질 분자를 찾아 지문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지문이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만들어지는 이유를 알지 못하다가, 이번에 그 비밀을 알아낸 거죠.
지문을 이루는 선을 ‘융선’이라고 합니다. 융선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만들어져요. 임신 13주부터 태아의 손가락 끝에 생기기 시작해 1차로 융선이 전체적으로 생성되면, 이후 그 빈틈을 메우는 2차 융선이 나타나며 지문이 완성되어 가지요.
연구팀은 태아 시기 융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쥐가 태아 상태일 때 발 주름이 발달하는 모습과 사람의 배아 세포(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된 상태부터 8주까지의 개체를 배아라고 말하며, 그 이후를 태아라고 한다)가 발달하는 과정을 관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문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세 가지 단백질 분자를 발견했어요. 지문의 움푹 들어간 부분을 만드는 단백질(WNT)과 융선 사이의 간격을 조절하는 단백질(EDAR), 그리고 이 둘의 활동을 조절하는 단백질(BMP)입니다. 지문은 모래사장에서 구덩이를 파듯 매끈하던 피부에 홈이 파이며 만들어지는데, 위 세 단백질 분자가 이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죠.
연구팀은 EDAR 단백질이 많아지면 융선의 간격이 넓어지고 WNT 단백질이 많아지면 홈이 파여 융선이 짙어지며, BMP 단백질이 많아지면 융선이 줄어드는 모습을 띤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WNT와 EDAR 단백질은 융선 형성에 관여하고, BMP 단백질은 반대로 융선 형성을 억제하며 복잡한 무늬가 만들어진 거죠.
이렇게 여러 요소가 서로에게 무작위로 영향을 주면서 정해지지 않은 형태로 생기는 무늬를 ‘튜링 패턴’이라고 합니다. 열대어나 표범, 얼룩말 등에서 볼 수 있는 점무늬와 줄무늬 역시 튜링 패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구팀은 세 단백질 분자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지문을 무작위적인 튜링 패턴 형태로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제껏 지문의 융선이 완성돼 가는 구체적인 과정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혈액이나 피부 주름 등이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여러 가설만이 존재했죠. 헤든 교수는 “지문 발현 원리를 찾아낸 건 지문뿐만 아니라 머리카락, 치아, 손톱, 땀샘과 같은 여러 피부 구조의 원리를 밝혀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울퉁불퉁 지문에겐 다 계획이 있다
지문은 사람을 비롯한 영장류와 코알라 등 일부 동물만 갖고 있습니다. 지문의 역할에 대해 그간 마찰력을 조절하거나 수분 조절에 도움을 준다는 등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지문은 과연 왜 있는 걸까요.
● 손끝의 배수로가 되어주는 지문'
2021년 박건식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팀은 지문이 마찰력을 높여 물체를 잘 잡게 도와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지문이 손가락 표면의 수분을 조절하는 미세한 통로 역할을 하면서, 손가락이 닿는 표면 사이의 마찰력이 최대가 되도록 도와주는 거죠.
연구팀이 젖은 상태와 건조한 상태의 손가락에 전자기파를 쏘아 마찰력을 측정한 결과, 지문은 손가락이 습한 정도와 상관없이 최적의 수분 조건을 유지하며 최대 마찰력을 유지했습니다.
손끝이 건조한 경우엔 땀을 분비해 마찰력을 높여 밀착을 돕고, 반대로 땀이나 물 등으로 손끝이 축축할 때는 지문이 배수로처럼 수분 증발을 유도해 건조시켰죠. 지문이 없는 피부에도 같은 실험을 했지만, 마찰력이 최대 상태로 조절되는 현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박건식 교수는 “이 연구는 스마트폰 화면과 같이 직접 피부에 닿는 물질이나 로봇 등의 인공 피부 접촉력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손끝의 촉감을 책임지는 지문
지문이 물체를 잡을 때 느끼는 감각인 촉감을 높여 준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2021년 에바 자로카 스웨덴 우메로대 생리학과 교수팀은 지문 덕분에 손가락으로 느끼는 감각이 더욱 활성화된다고 밝혔어요.
연구팀은 지문이 촉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 참가자의 손끝에 장치를 연결한 뒤 주기적으로 물리적인 자극을 가했습니다. 실험 참가자의 팔에는 신경을 감지할 수 있는 전극을 부착하고, 자극을 가하면 어떤 반응이 생기는지 살폈어요.
확인 결과, 손가락 면적 중에서 지문의 융선이 돋아난 부분이 자극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손가락 끝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지문을 따라서 난 신경 섬유 때문이라 판단했어요.
자로카 교수는 “이 결과는 접착력을 향상시키는 등 기존에 알려진 지문의 다른 역할과 더불어, 지문이 촉각에 기여한다고 밝힌 첫 연구였다”며 “인공 신경 연구에서 촉감을 민감하게 할 방법을 찾는 데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3중으로 안전하게 나노지문
스마트폰의 잠금 해제부터 공항 출국 심사까지 지문은 일상 곳곳에서 '나'를 인증하는 데 쓰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의 지문을 모방한다면 개인 정보가 노출될 위험이 큽니다. 이런 위험을 해결하는 아주 작은 지문이 있습니다. 바로, 나노 지문입니다.
● 나노 지문, 샌드위치처럼 쌓아서 만든다
2022년 8월 김상욱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팀은 사람의 지문처럼 매번 다른 형태로 나노 크기의 인공 지문을 만드는 ‘나노패터닝’ 기술을 발표했습니다.
나노미터(nm)는 10억분의 1미터를 뜻하는 단위입니다. 이렇게 작은 나노 단위에서 복잡한 무늬를 만드는 작업을 나노패터닝이라고 해요. 나노패터닝 기술은 나노 물질의 미세한 성질을 조절할 수 있어 반도체 등을 만드는 데도 쓰이고 있지요.
나노 단위의 작은 기판 위에 고분자 등을 떨어뜨려 일정한 패턴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나노패터닝은 지문 형태가 아닌, 선이나 점으로 균일하게 배열된 것을 제작하는 데만 활용됐습니다.
연구팀은 기판에 흠을 내거나 화학 처리를 하던 기존 공법과는 달리, 무작위 무늬를 만들기 위해 기판 위에 아무 처리도 하지 않은 채 고분자를 떨어뜨렸어요. 그 결과 정해지지 않은 다양한 무늬가 만들어졌습니다.
기판 위에 나노 분자가 불규칙하게 퍼지는 패턴 자체가 지문처럼 하나의 암호가 되는 거죠. 연구팀은 먼저 기판 위에 고분자가 알아서 퍼지게 두어 무작위 무늬가 만들어지도록 한 뒤, 만들어진 패턴을 다시 두세 겹 이상 겹쳐서 무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평평한 한 겹의 배열 구조만 식별하면 되던 기존의 지문이나 QR 코드와는 달리, 나노 지문을 식별하려면 세 겹의 암호를 풀어야 해요. 레이저 등의 광선을 이용해 측정되는 광학, 저항, 전파의 3중 특성이 일치해야 하죠. 요소도 많고, 크기도 작아 결국 복제하기에 까다로워지는 셈이에요. 김상욱 교수는 “여러 층의 나노 패턴을 겹치면 여러 선이 얽힌 신경망처럼 따라하기 복잡한 구조를 나타내 보안이 뛰어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나노 지문은 어디에 쓸 수 있을까요. 나노 지문을 스티커처럼 각 물질에 붙이면 바코드같이 활용할 수 있습니다. 보석 등 귀중품에 붙여 이름표를 새기거나, 개미, 머리카락, 세균처럼 작은 물체나 생물에 부착해 정보를 담을 수 있어요.
김 교수는 “머리카락이나 반도체와 같이 작은 물체에도 이름 붙일 수 있어, 사물인터넷(IOT- 사물에 센서를 부착해 인터넷으로 데이터를 실시간 주고받는 기술) 실현에 도움될 것”이라며 “개미나 대장균 생명체에 붙이면 아주 작은 생물도 하나씩 식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어요.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4월 1일, 손끝의 아주 작은 암호, 지문
[박동현 기자 idea1009@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