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사라진 미녀, 되찾은 매혹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다른 예술과 달리 미술 작품은 실체이고 물질이기 때문에 '도난' 문제에 밀접하다.
미술작품 도난 사건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11년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이다. 절도의 과정(매우 허술하고 간단했다), 목적(훔친 자가 이탈리아인으로 '애국'을 내세웠다), 뒷이야기(피카소와 시인 아폴리네르가 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조사받았다) 등 모든 면에서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모나리자'만큼 센세이션을 일으킨 경우는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절규' 도난 사건이다.
'절규'는 총 다섯 버전이 있는데, 그중 노르웨이 국립미술관과 뭉크미술관에 소장된 '절규'가 각각 1994년, 2004년 탈취당했다가 돌아왔다.
여기서 소개할 도난 그림의 주인공은 두 미녀다.
먼저 18세기 영국의 초상화가 토머스 게인즈버러(1727~1788)가 그린 '데번셔 공작부인 조지아나의 초상화'(1785) 얘기다.
조지아나는 숱한 스캔들을 일으킨 당대 최고의 미녀였다. 그녀의 사랑과 몰락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과 영화로도 나왔다.
살짝 눈을 돌려 앞을 바라보는 눈매와 손의 자세에서 당당함을 넘어 오만함이 느껴진다. 검정의 큰 모자와 꽃 한 송이가 이를 강조해 준다.
이 그림은 비공개로 보관되다 1876년 런던의 한 갤러리에서 일반인에게 공개한 지 며칠 만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후에 밝혀진 도둑은 금고 털이범 애덤 워스였다. 목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는 이 그림을 훔친 뒤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동생 석방의 협상용으로 사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협상도 벌이기 전 동생은 자유의 몸이 됐다.
그 후의 이야기가 드라마틱하다. 워스는 이 그림을 팔지도, 폐기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돌려주지도 않고 자신의 곁에 뒀다. 생활 속 벗이자 애인으로 삼았으며, 자신의 침실이나 창고에 보관했다. 심지어 여행할 때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무려 25년이 지난 뒤 경제적인 어려움 탓에 그림을 넘겨줬다고 한다. 그는 그림을 매우 아꼈으며, 그림 속 여인을 사랑했던 것이다.
게인즈버러의 초상화는 대부분 매력적이지만, 조지아나의 풍모에서는 매력을 넘어 마력이 느껴진다. 그녀는 살아서 사교계를 흔들었고, 죽어서도 세상을 매혹했다. 그리고 25년 동안 한 남자만의 사랑을 얻었다.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가 그린 여인도 수난을 당했다.'안토니아 사라테의 초상'(1905년께)이다.
고야는 자신과 염문을 뿌린 '알바 공작 부인'과 불명의 여성을 그린 '옷 벗은 마하','옷 입은 마하','파라솔' 등에서 아름다운 여성을 다수 그렸다. 사라테는 연극배우였다.
이 그림은 아일랜드 더블린 교외 '러스보로 하우스'에서 보관되던 중 1974년 페르메이르, 고야, 벨라스케스, 루벤스 등의 명작과 함께 도난당했다. 무려 열아홉 점이나 털렸다. 도난의 이유는 정치적이었다. 아일랜드 독립단체인 IRA 요원들을 석방하라는 것.
얼마 후 회수됐을 때는 싸구려 포스터처럼 쓰레기봉투에 담겨 아무렇게나 쑤셔 박혀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심한 손상이 없었던 덕에 다시 그녀의 눈길을 그윽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뛰어난 미녀는 아니지만, 깊이가 느껴지는 사라테의 눈길에 빠져들면 쉽사리 헤어나기 힘들다. 코와 입, 목선 등과 조화를 이룬 그녀의 눈매를 콕 집어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우울하기도, 포근하기도, 슬프기도 한 복합적인 눈길이기 때문이다.
여러 감성을 동시에 일으키는 이유는 아무래도 검정 드레스 때문인 것 같다. 러시아 화가 이반 크람스코이(1837~1887)가 그린 '미지의 여인'(1883)처럼 검정은 보통 '공포'나 '죽음','권위'를 상징하지만 때로는 대단히 유혹적이다. 이미지의 감성을 북돋우는 힘이 있다.
데생이나 색채의 기교가 뛰어나다 할지라도 초상화에서 깊은 속내까지 표현할 수 있는 건 전적으로 화가의 능력이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림을 보는 즐거움 중 하나가 초상화를 감상하는 일이다. 화가와 시대와 계급, 성(性)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변주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지의 여인'에서도 느껴지긴 하지만, 도난당한 후 되찾았다는 이유 때문인지 조지아나와 사라테의 눈길에는 '호소의 마력'이 보태져 있는 듯하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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