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실적 발표날 이재용 회장이 간 곳은?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3. 4.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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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총총]
[편집자주] 한국 기업을 대표하는 재계 '총'수들의 한주의 현장 활동을 '총'정리하고, 그들의 행보('총총'걸음)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 한국 기업들이 나아갈 길을 점검하는 코너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 왼쪽 세번째)이 7일 오전 삼성물산 합병 등과 관련한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신변보호를 신청한 이 회장 주변으로 물건 투척에 대비해 우산을 든 법원 경호 인력들이 따르고 있다./사진=오동희 선임기자

2009년 이후 14년만에 처음으로 삼성전자가 분기 기준으로 최악의 실적(영업이익 6000억원)을 기록한 날인 지난 7일 오전 9시 30분경.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92번째 재판을 받기 위해 출석했다. 그가 법원으로 들어설 때는 사고에 대비해 방어용 우산을 든 법원 경호인력들이 따랐다. 지난번 출정 당시 계란 투척 사건이 있은 후 달리진 풍경이다.

사흘 전인 4일 충남 삼성디스플레이에서 투자협약식에 참석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2021년 시작된 이 재판(삼성물산 합병 및 회계부정 의혹 관련)은 햇수로 3년으로 100번을 채우려면 이제 여덟번 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 1심도 끝나지 않았는데 법원 우측 피고인석에 앉아 달리 말 한마디 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5~6시까지 있기를 약 90차례(일부 궐석 재판 제외시)로 3년의 시간을 보냈다. 이날 재판은 간단한 증인신문으로 오전만 진행돼 그나마 짧았다.

이 회장은 재판이 없는 날에는 주요 글로벌 고객을 만나거나 생산 현장을 쫓아다닌다. 이번 주도 지난 4일 충남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에서 열린 삼성디스플레이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협력업체간 신규 투자협약식에 참석했다. 이 회장이 화두로 던진 '동행'에 초점을 맞춘 행사다. 이 자리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했다.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후 충남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에서 열린 삼성디스플레이 투자협약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3.4.4/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회장은 이미 지난달 25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고위급포럼에 참석했고, 앞서 24일에는 삼성전기 텐진사업장을 방문했다. 또 한일정상회담 수행차 일본에 방문해선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도 찾았다. 이달 말에는 한미정상회담 수행차 미국을 방문한다. 현지 기업인들은 물론 삼성의 해외 사업장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재판과 국가적 행사 중간에 틈틈이 해외현장과 국내 투자처를 찾지만 삼성 내외부에선 이 회장의 활동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하는 경영의 큰그림을 그리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지만, 당장 2~3년 앞의 전략도 짜기 힘들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현안은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맡기고 총수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숙고와 화두를 찾는데 역점을 둬야 하지만 그럴 상황이 못된다. 50년 후나 100년 후를 내다보는 긴 호흡을 가져야 하지만 당장 반도체의 대규모 적자 해소를 위한 전략부터가 고민이다.

요즘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다보니 현재의 1년이 과거의 10년이나 50년의 변화보다 더 빠른 상황이다. 깜빡 졸면 낭떠러지다. 이번 삼성전자의 실적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이 회장의 걸음이 더욱 바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회장)이 지난 3일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실사를 위해 방문한 국제박람회(BIE) 실사단을 맞이하기 위해 신라호텔 영빈관 앞에서 하차해 이동하고 있다./사진=오동희 선임기자


최태원 회장도 이달말 있을 SK하이닉스의 실적 발표를 앞두고 맞이한 그룹 창립 70주년 행사를 조용히 치렀다.

최 회장은 창립일을 하루 앞둔 7일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일부 경영진들과 그룹 현안을 논의하며 한주를 마무리했다. 주초의 시작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시작했다. 2030부산세계박람회유치위원회 민간위원장으로 지난 3일 2030부산세계박람회 실사를 위해 방한한 국제박람회(BIE) 실사단 영접을 위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을 찾았다.

실사단에게 감동을 주는 글로벌 스포터즈의 '캐리커쳐' 행사와 식당까지 안내하는 보스톤 다이내믹스의 로봇개 '스팟'의 이벤트까지 최 회장의 아이디어가 녹아 있는 행사로 실사단을 놀라게 했다. 수십명이 한꺼번에 몰리는 복잡한 상황에서 안전을 위해 '스팟'의 자율안내가 아닌 수동조종으로 진행하긴 했지만 로봇개의 안내를 받는 실사단은 4족 보행의 로봇의 신기한 움직임에 눈을 떼지 못했다.

최 회장은 지난 5일 저녁에는 존 오소프 미국 조지아주 상원의원(민주당)과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 35층 미팅룸에서 만찬을 겸한 회동을 했다. 지난 2021년에도 만났던 오소프 의원과는 배터리와 수소 등 그린 비즈니스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2030세계박람회 개최 후보지인 부산을 실사하기 위해 방한한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 단장 파트릭 슈페히트 행정예산위원장(오른쪽 세 번째)이 3일 오전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경제인 오찬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함께 4족 보행 로봇인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스팟(Spot)'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3.4.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태원 회장에게 로봇개 '스팟'을 빌려준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다른 로봇개에 빠졌다. 사재를 털어 보스톤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정 회장은 4일 오전 소수의 임직원과 함께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30 서울모빌리티쇼' 현장을 찾았다.

정 회장은 이날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인 '테슬라 봇' 모형과 고스트로보틱스의 4족 보행 로봇을 관찰하며, 미래의 모빌리티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정 회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현대차의 기술을 알리는데 다른 기업 총수들보다 더 적극적이다. 신차 발표회에서 본인이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하거나 현장 기자들의 질문에 적극 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2018년 1월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8’에서 참석한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당시 직책)이 프레스 컨퍼런스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의응답에 답하고 있다. /사진=김남이 기자

지난해 토요타와 폭스바겐에 이어 전세계 완성차 판매 3위에 오른 것은 이런 적극적인 정회장의 모습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8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CES) 현장에서 '수소차 넥쏘' 발표 현장에서 만났던 정 회장은 그동안 현장에서 만났던 다른 그룹 총수들과는 달랐다.

당시 정 부회장(당시 직책)은 전세계 기자들에게 둘러 쌓여 '자동차의 미래와 수소차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공세에 전혀 주눅들지 않고, 굵은 땀방울을 흘려가며 현대기아차의 미래를 설명했었다.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 물러나 있던 다른 기업 총수들과는 다른 신선한 기억으로 아직 남아 있다. 정 회장도 5일 저녁에는 오소프 상원의원과 저녁을 함께 했다.

(서울=뉴스1) =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 4일 경기도 이천 LG인화원에서 열린 LG 어워즈에서 최고상을 받아 환호하는 LG디스플레이팀에게 축하 박수를 보내고 있다. (LG 제공) 2023.4.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광모 LG 회장은 상속회복청구소송의 답변일인 지난 3일 법원에 "소송의 제척 기간이 지났다"며 "소송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본안 심리를 할 필요가 없다"라는 내용을 전달하는 것으로 한주를 시작했다. 그는 '가족간 소송'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떨치고 경영에 몰두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 4일 경기도 이천 LG인화원에서 열린 '2023 LG 어워즈'에서 선대 회장때부터 이어져온 고객가치에 대한 철학을 진화시키는데 몰두했다. 그는 거창한 기술이나 자신들의 만족을 위한 사업성과가 아니라, 고객의 경험이 가치를 만든다는 자신의 경영철학을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구 회장의 노력은 지난 7일 LG전자의 실적발표에서 빛을 발했다. 삼성전자와 실적면에서 경쟁 자체가 힘들던 LG전자가 2009년 국제회계기준(IFRS)를 도입한 이후 14년만에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넘어섰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실적 악화의 영향이 컸지만 LG전자 가전과 전장의 호조로 1분기 약 1조 5000억원의 영업이익으로 삼성전자(6000억원)의 2.5배에 달했다.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지만 고 구본무 회장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을 구광모 회장이 해낸 셈이다. 구광모 체제 5년만에 구 회장의 자율경영스타일이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존 오소프 미국 연방상원의원이 방한해 지난 5일 정의선 현대차 회장(왼쪽 사진), 김동관 한화 부회장(중앙 사진), 최태원 SK 회장(사진은 2021년 방한 당시 사진 SK제공)과 잇따라 회동했다. 왼쪽 두장의 사진은 오소프 의원실이 제공한 것이다.


이번 주 눈길을 끌었던 인물 중 하나는 한국 재계 총수들을 줄줄이 불러 '밥자리'를 한 존 오소프 미국 조지아주 상원의원(민주당)이다.

만 36세로 바이든 대통령의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기록을 갈아치운 오소프 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그는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해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회장, 정의선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등 국내 재계 총수들을 줄줄이 만났다. 또 이재용 회장과 구광모 회장 대신 박학규 삼성전자 사장(CFO)과 권봉석 LG 부회장 등도 만났다. 이 기업들은 오소프 의원의 지역구인 조지아주에 생산기반을 갖고 있거나 투자를 유인하기 원하는 대상들이다.

국내 기업 총수들이 미국의 미래 권력이 될 가능성이 높은 유망 정치인과의 네트워크를 쌓은 측면도 있지만, 오소프 의원의 정치활동에 국내 총수들이 마케팅용으로 활용됐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오소프 의원실은 국내 기업 총수들과 만남 직후 그 사진을 적극적으로 기자들에게 홍보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언론인 출신다운 미디어 활용 모습이기도 했다.

[돌튼=AP/뉴시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6일(현지시간) 미 조지아주 돌튼의 한화솔루션 큐셀(한화큐셀) 태양광 모듈 공장에서 이곳을 방문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에 대한 환영사를 하고 있다. 한화큐셀은 미국 정부의 공동태양광발전 프로젝트에 따라 250만 개의 태양광 패널을 생산해 납품하기로 했다. 2023.04.07.


지난 5일 국내에서 오소프 의원을 만났던 김동관 한화 부회장은 6일(미국 현지시간)에는 미국 조지아주 달튼에 있는 한화솔루션 태양광 모듈 공장에서 카멜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만났다.

이날 행사는 한화솔루션 큐셀 부문이 미국 에너지 기업 서밋 리지 에너지(SRE)와 협업해 1.2GW(기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에너지를 공급하는 미국 최대 규모의 '커뮤니티 솔라' 사업에 나서기 위한 것이다. 앞서 김 부회장은 지난 3일에 한화에어로가 한화디펜스에 이어 한화방산을 합병한 것을 기념해 손재일 사업부문 대표 등 130여 명이 참석한 '뉴비전 타운홀'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김남호 DB그룹 회장.

김남호 DB그룹 회장은 이번 주 때아닌 경영권 분쟁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강성부펀드가 DB하이텍 지분을 대거 매입한 가운데 김 회장의 부친인 김준기 전 회장(창업자)과의 경영권 분쟁 소문이 퍼지며 곤욕을 치렀다.

몇년 전 기자가 1시간 여를 만나본 김남호 회장은 창업자이자 부친인 김 전 회장에게 지분으로 경영권 분쟁을 일으킬 정도의 판단력을 가진 경영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이 고령이기는 하지만 창업 회장으로서 워낙 '그립'(장악력)이 센 편인데다 여전히 DB 그룹은 김 전 회장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김 창업회장이 사장단 인사 등 경영권을 아직 행사하고 있고, 장남인 김 회장에게 완전히 지분을 넘기지 않은 상태에서 부자간의 갈등의 소지는 없어 보인다. 김 회장의 누나인 김주원 부회장과도 크게 갈등은 없다는 게 DB 내부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 외 허태수 GS 회장은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GS타워에서 벤처 네트워킹 행사인 '지에스 데이'(GS day)를 개최하며 대외적으로 활동을 공개했고, 조원태 한진 그룹 회장은 3일 오후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우승 헹가래를 받았다. '2022-23시즌 도드람 V-리그'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대한항공이 현대캐피탈을 이기면서 통합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현재 대한배구연맹(KOVO) 총재를 맡고 있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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