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이 문앞에 남자성기 동상을 세워놨습니다...신고해야할까요?” [사색(史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3. 4. 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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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16] 어머니는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홀몸으로 키운 아들이 입대를 앞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뿐인 자식이 전장에서 다칠까, 목숨이라도 잃을까 밤새 뒤척였지요. 극단적인 일이 생기지 않기를 신께 간절히 소망하는 나날이 이어집니다.

화톳불 옆에서 곤히 자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들을 부릅니다.

“아들아, 이걸 가지고 가거라. 어디서든 몸에서 떼어놓지 말거라.”

로마 청동 부적 파시눔의 한 형태. 기괴한 모습의 남근 청동상이다. 폼페이에서 발견됐고 현재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저작권자=마리 란 응우웬>
아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염주 같은 작은 청동상을 하나 건네줬는데, 이게 웬걸. 남자 성기, 그것도 화가 잔뜩 난(?) 모습의 성기 상을 건네줬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합니다. “파시눔이야. 이게 널 악마로부터 보호해줄 거란다. 옆집 청년도 이걸 가지고 전쟁에서 무사 귀환했단다.”

‘파시눔’(Fascinum)은 고대 로마의 부적과도 같았습니다. 이 시기 사람들은 ‘남근상’을 귀히 여겼지요. 집 앞에도 걸어두고, 몸에 소지하는 펜던트로 활용하기도 했었습니다. 남근이 악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 포석에 새겨진 남성 성기. 행운과 풍요를 가져온다고 여겨졌다.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고대 로마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중세 성당이나 우리나라에서도 괴상한 모습의 물체로 안녕을 기원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남자 성기를 숭상한 고대 로마 사람들
“발기한 남근이 그대를 보호하리라.”

고대 로마에서 남근 성기는 숭상받았습니다. 고대 국가 대부분이 그러하듯, 남성 성기는 다산의 상징이었기 때문이었지요. 로마의 여섯 번째 왕이었던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탄생 설화만 봐도 그렇습니다. 얘기는 이렇습니다.

고대 로마의 6대 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전설 속에서 그의 어머니는 육체 없는 성기와의 결합으로 그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어느 날 갑자기 육체가 없는 남근이 난로에서 확 튀어나와 처녀와 관계합니다. 열 달 뒤에 세르비우스가 태어났지요. 그는 로마의 6번째 왕으로 즉위해 조국의 태평성대를 이끌었습니다. 육체 없는 ‘남근’상은 신성성 그 자체였음을 증명하는 전설이 됐지요.

남근상은 악과 싸우는 도구로서도 종종 여겨졌습니다. 당시 지중해 국가 시민들은 악을 상징하는 ‘눈’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악마의 눈’(Evil Eye)이었지요. 침략을 받을 때면, 야만족들이 ‘악마의 눈’을 이용해 자신들의 나라를 유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악마의 눈, 이거나 받아라” 2세기 고대 로마가 지배한 리비아 지역에서 발굴된 유적. 남근 파시눔이 악마의 눈에 사정을 하는 모습. <저작권자=사샤코치맨>
이 눈에 대항할 무기가 필요했고, 고대 로마에서는 이걸 ‘파시눔’, 남근상으로 삼았던 것이었지요. 소년들은 ‘불라’(Bulla)라는 이름의 남근상 부적을 지니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고대 로마 유적지 곳곳에 발기한 남성 성기 모습이 곳곳에 세워진 이유입니다. 이 파시눔으로부터 영어단어 fascinating(매혹적인)이란 말이 파생됐지요.
“골라 골라, 이 큰 놈으로 가져가이소~”. 성기로 묘사된 청동상은 길복을 기원하는 상징물이었다. 프랑스 랭스 생레미 박물관 소장품.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우리나라에서도 발기되거나, 혹은 성교하는 모습의 신라 토우상이 여러 출토되기도 했었지요. 정확한 용도는 기록이 없어서 확신할 수 없으나, 학자들은 이를 풍농, 풍어, 다산, 죽은 이의 부활을 염원하는 유물로 추정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선돌’이 남근 숭상의 한 예로 여겨지지요. 고대로마와 우리 역사의 연결고리인 셈입니다.
신라 시대 유물인 토우에는 성교하는 모습(왼쪽)과 큰 성기를 그린 사례가 많았다. <사진 출처=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괴물이 너희를 보호하리라...중세 성당에 이단적(?) 상상
역사적으로 안녕을 염원하는 상들은 오늘날 보기에 이상한 모습이 많은 게 대다수입니다. 고대 로마 뿐만 아니라, 중세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유럽 고딕스타일의 성당을 여행해보겠습니다. 성당 외벽을 살펴보실 때면, 유독 이상한 모습의 괴물 한 마리가 붙어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용과 같은 괴물의 모습을 한 가고일이지요. 여기에도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가고일. 모두 성당 배수관으로 활용된다.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고딕양식이 본격화하기 전 7세기 프랑스 메로빙거 왕조 때입니다. 루앙의 주교였던 로마누스는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박쥐 날개, 긴 목, 입에서 불을 뿜는 용이 나타납니다. 가고일이었습니다. 로마누스 주교가 이를 십자가로 제압했다는 일화가 전해지지요.

가고일의 몸은 십자가를 맞고 불에 탔지만, 머리와 목은 온전했다고 전설은 전합니다. 로마누스 주교가 교회의 벽에 부착했지요. 다른 악령들이 이 가고일의 ‘참상’을 보고 접근하지 못하도록요.

기독교 성당에 웬 이단 악마 구조물이라는 생각이 드실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포교의 어려움도 자리합니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성당의 가고일 모습. 각 성당에는 각양각색의 가고일이 묘사 돼 있다.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고대 혹은 중세 초 유럽은 아직 기독교가 완전히 퍼지지는 않았습니다. 이교도들은 아직 ‘정령’이나, ‘신령’과 같은 애니미즘적인 토착 신앙을 믿었지요. 글도 모르는 문맹인 이들에게 무작정 “예수님이 유일한 구세주이며, 사랑이십니다”라고 가르치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의 전지전능함으로 그들이 믿는 괴물을 물리쳤다고 ‘시각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 현실적인 포교 방법이었지요. 성당의 웅장함과 더불어 신의 위대함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음부를 벌린 여자가 성당에?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지역에서도 외설스러운 기괴함이 두드러집니다. 성스러운 성당 곳곳에 신자들을 향해 음부를 벌리고 있는 상들을 볼 수 있어서입니다. 기원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합니다. 종교학자 미르체아 일리아데는 자신의 저서 The Encyclopedia of Religion(1986년)을 통해 하나의 스토리를 제공합니다.
잉글랜드 서부 헤리퍼드셔의 12세기 성당에는 음부를 벌리고 있는 기괴한 모양의 석상이 조각돼 있다. <저작권자=Pryderi>
고대 아일랜드 신화에서 실라라는 여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정욕에 찬 노파였기에,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녀를 거절했지요. 근데 딱 한 남자만이 그녀를 받아 들였습니다. 그가 그녀와 관계를 가졌을 때 그녀는 그에게 왕권을 부여했지요. 또 다시 아름다운 처녀로 변합니다. 미녀와 야수의 성별이 역전된 이야기라고나 할까요.
대영 박물관에 있는 아일랜드의 노파 여신 실라 조각상. 역시 음부를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저작권자=조노맥46>
일각에서는 이것이 정욕에 대한 경고라는 설도 있습니다. 당시 기독교 사회는 성적으로는 굉장히 보수적인 관점을 취했지요. 육신이 지은 수치심을 이 이미지를 통해서 각인시키려고 했다는 해석입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조각상이 여성 성기를 보여주는 것이 ‘퇴마’의 한 형태라고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1762년 프랑스 설화집에 나온 한 삽화.
경복궁 지붕에 웬 원숭이와 돼지가?
하나의 상으로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일은 비단 서양의 일만은 아닙니다. 이제 우리나라로 가보시죠. 경복궁이나 창덕궁 지붕 위 추녀마루에는 여러 개 형상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잡상이라 했지요. 이 상들은 다름 아닌 ‘서유기’의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상이었습니다.
고궁 처녀마루 위에 놓인 잡상들. 서유기의 캐릭터가 앞에서부터 나열돼 있는 모습이다. <사진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불교를 배경으로 한 ‘서유기’는 환영받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목조 건축물이 불에 많이 타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잡상’을 도입하지요. 서유기는 고려 말부터 유명한 작품이었기에 잡상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한 소재였습니다. 화를 막고 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절실했기에 종교적인 명목은 잠시 접어둔 것이었지요.

맨 앞자리는 삼장법사인 대당사부가 두 번째는 손오공인 손행자, 나머지는 저팔계가 자리합니다. 나머지는 사오정은 나오는 곳도 있고 안 나오는 곳도 있다지요. 궁의 또 다른 주인공 해태 역시 화재를 막아주는 영물로 통했기에 장식물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치키치키차카차카 쵸~, 경복궁은 우리가 지킨다”. 서울 고궁에 지붕 추녀마루에 있는 상은 서유기 주인공들이다. 사진은 KBS2에서 방영한 ‘날아라 슈퍼보드’.
성당에 등장한 다스베이더
오늘날 현대인들도 전통을 재치 있게 계승합니다. 아래 사진부터 보시지요.
“시간을 거슬러 올랐나?” 에일리언 조각상이 중세 유럽 성당에?.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12세기 중엽에 건축된 영국 스코틀랜드의 페이즐리 수도원입니다. 영화 ‘에일리언’에 나오는 괴물 제모노프입니다. 12세기 건축물에 1979년 영화 캐릭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코틀랜드 지방은 비가 많이 와서 석조 건축물을 정기적으로 보수해야 합니다. 빗물받이 역할을 하는 가고일은 더욱 침식되기 쉬운 구조이지요. 1991년에 페이즐리 수도원의 외벽을 보수할 때 12개의 가고일을 교체합니다. 이때 한 석공이 에일리언의 영화 속 캐릭터와 가고일의 모습이 닮았다고 여기고 이처럼 바꿔버린 것이었죠. 영화 ‘덕후’가 새로 역사를 하나 쓴 셈이었습니다.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워싱턴 국립 대성당입니다. 여기에도 스타워즈 다스 베이더가 가고일을 대체하고 있지요. 1980년대 완공을 앞둔 성당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성당 조각 경연 대회를 열었습니다. 한 어린이가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 캐릭터를 그려내 3등을 차지했지요. 조각가였던 제이 홀이 성당에 다스 베이더를 새겨 넣은 배경입니다. 이를 용인한 성당의 포용력도 훌륭하지요.

미국 워싱턴대성당의 다스 베이더 조각상.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한옥 한 채를 짓는 상상을 해봅니다. 제가 지은 집의 추녀잡상엔 무엇을 올려야할까요. 에스파의 블랙맘바나 뉴진스의 토끼는 어떨까요. 역사는 전통의 계승과 변용 속에서 향기를 더하기 마련입니다. 따뜻한 봄날, 여러분의 한 해 안녕을 기원합니다. 우리네 선조가 ‘잡상’을 바라보며 그러했듯이요.
광화문 앞 해태상. <사진 제공=문화재청>
<네줄요약>

ㅇ고대로마에서는 ‘남자 성기상’이 액운을 쫓는 용도로 활용됐다.

ㅇ기독교가 퍼진 유럽에서도 가고일과 같은 괴물들이 성당의 외부 장식으로 활용됐다. 그리스도는 괴물보다 위인 상위의 존재로 포교하기 위해서였다.

ㅇ우리나라 궁에서도 액운을 쫓는 ‘잡상’이 있었다. 궁 추녀마루 위 상들은 ‘서유기’의 캐릭터다.

ㅇ미국 워싱턴 대성당에는 스타워즈 다스베이더 상도 있다. 현대에도 변용이 이뤄지는 셈이다.

<참고문헌>

ㅇ이종철, 한국의 성 숭배문화, 민속원, 2003년

ㅇ데이비드 프리드먼, 막대에서 풍선까지, 까치, 2003년

ㅇ최경철, 유럽의 시간을 걷다, 웨일북, 2016년

ㅇ윤홍로, 궁궐건축의 잡상, 월간 문화재사랑-문화재청,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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