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현실이 됐다”… 반격 앞둔 우크라, 세계 최고 전차들이 모인다 [박수찬의 軍]“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는 전차들이 한데 모여 싸운다.’ 게임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광경이 조만간 우크라이나에서 현실로 나타날 조짐이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 양상으로 흐르면서 서방 국가들의 무기 지원도 폭증하는 추세다. 초기에는 우크라이나군이 별도 훈련 없이 쓸 수 있는 러시아산 장비를 보냈지만, 최근에는 서방측 중화기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산 레오파르트 2, 영국산 첼린저 2, 미국산 에이브럼스 전차 등이 우크라이나에 배치됐거나 조만간 지원될 예정이다. 러시아도 서방측 전차의 출현에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측 전차를 지원받아 실질적인 운용능력을 갖춰 반격에 나선다면, 2000년대 초 이라크전쟁 이후로 20여년 만에 서방측 전차와 러시아산 전차가 전쟁에서 맞붙는 모습이 현실이 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서방은 재블린, 스팅어를 비롯한 대전차미사일과 휴대용 대공화기 지원에 치중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수도 키이우 일대에서 후퇴하고, 동부 돈바스와 남부 헤르손에서 공방전을 펼치면서 중화기 지원 비중이 점차 늘어났다.
우크라이나가 지원을 요청한 무기 중 전차는 우선순위가 매우 높았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점령지를 탈환하고자 반격을 하려면, 하루에 수십㎞를 진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전차와 보병전투차가 필수다.
방어작전에서도 전차의 중요성은 높았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의 공세에 맞서 방어전을 치르는 바흐무트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차가 러시아군 참호 등을 포격하면서 아군 보병을 지원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만큼 전차의 화력과 방어력, 기동력이 전투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셈이다.
서방측은 동유럽 국가들이 갖고 있던 러시아산 T-72 전차를 보냈다. 우크라이나군은 전쟁 전부터 러시아 무기를 주로 사용했고, 정비 등 운영유지체계도 구축되어 있었다. 동유럽 국가들이 T-72를 우크라이나에 서둘러 보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미국과 유럽이 조달할 수 있는 러시아산 전차 재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 이외에 T-72 전차를 생산하는 국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미국은 페루, 민주콩고 등 러시아산 전차를 운용중인 제3세계 국가와 접촉했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얻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공개한 영상에는 바흐무트 인근에서 전투 중인 전차 소대의 모습이 소개됐다. 이들이 쓰고 있던 전차는 1960년대 하르키우 공장에서 생산된 T-64였다.
러시아가 소규모나마 신형 전차를 투입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도 우수한 성능을 지닌 전차가 꼭 필요했지만, 서방측은 재고가 고갈돼 러시아산 전차나 부품 공급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남은 방법은 서방 전차를 넘겨주는 것뿐이었다. 공장을 가동해 전차를 새로 만드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기존 보유분을 지원하기로 한 이유다.
독일이 지원한 레오파르트2 A6 전차 18대도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 독일은 내년까지 레오파르트1 전차 100여대도 우크라이나에 수출할 예정이다.
스페인과 폴란드, 캐나다, 핀란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등도 레오파르트2 A4 또는 A6 전차를 지원할 예정이다.
유럽 각국이 보낸 레오파르트2 전차는 우크라이나군에 가장 큰 도움이 될 장비로 꼽힌다. M-1A2와 챌린저2도 성능이 우수하지만 숫자가 매우 적다.
반면 레오파르트2 전차는 200여대가 지원될 것으로 알려졌다. 기갑여단 편성이 가능한 수준이다.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에서 널리 쓰여 장비와 부품 공급이 쉽고, 우크라이나군 훈련 지원도 용이하다.
사용된 지 오래됐지만, 성능은 무시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에 제공되는 레오파르트2 중에서 가장 구형인 A4는 1980년대 중반에 등장한 기종이다.
21세기 기준으로는 구식이지만, 서방 세계에서 3세대 전차로 평가받았다. 주행 중 사격이 가능한 120㎜ 주포의 공격력은 걸프전 등에서 입증된 상태다. 러시아 T-72와 맞설 능력이 있다는 평가다.
레오파르트1은 이미 퇴역한 구식 전차로 105㎜ 주포를 사용한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약하고 포탄 공급도 쉽지 않지만, 기갑부대를 더 늘리는데 효과가 있고 방어전에서는 보병 지원 등에 효과가 있다는 평가다.
미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봄 마리우폴 아조우스탈을 사수하다 궤멸된 아조우 연대도 재구성돼 훈련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 진행된 패트리엇(PAC-3) 지대공미사일 훈련도 끝났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과 멜리토폴을 겨냥한 우크라이나군의 봄철 대공세가 임박한 셈이다.
공세가 성공하면 크름반도와 동부 돈바스를 연결하는 통로가 단절되고, 러시아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서방측이 지원한 중화기를 우크라이나군이 제대로 활용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우크라이나군은 전쟁 전인 2015년부터 영국, 캐나다, 미국의 군대와 민간군사기업(PMC) 등으로부터 훈련을 받아왔다.
개전 후인 지난해 11월부터는 유럽연합(EU) 주도로 2024년 11월까지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훈련이 진행중이다. 화생방과 지뢰 제거, 장비 유지 보수, 보급, 통신, 간부 리더십 등을 가르친다. 영국도 지난해 7월부터 우크라이나군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전쟁 기간 서방 무기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적응력이 입증됐고, 훈련도 이뤄졌다는 점에서 레오파르트2 전차 등이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반면 서방의 무기 지원 규모나 속도가 우크라이나 측의 요구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전차를 비롯한 중화기 집중운용을 통한 공격력 극대화를 제약할 우려가 있다.
서방측이 현재 운용중인 전차와 보병전투차, 자주포, 지대공미사일 등을 지원하는 것은 전쟁 국면은 물론 국제정치,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현재 서방측이 공급할 수 있는 러시아산 무기는 많지 않다. 중화기는 미국과 유럽 방산업체가 생산한 제품이 공급될 수밖에 없다. 이는 우크라이나군에서 서방 무기 비중이 그만큼 높아지고, 무기체계도 개편되는 것을 의미한다.
서방 무기는 나토 규격에 따라 제작됐다. 러시아산 무기로 무장하고, 구소련의 전투방식을 유지했던 우크라이나군이 나토군과 유사한 형태로 바뀌는 셈이다.
우크라이나군과 나토군과의 차이점이 줄어들면, 후속군수지원과 훈련 등에서 양측간 협력에 따른 시너지가 높아진다. 단기적 관점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반격할 군사력을 확보하기가 쉽다.
서방 무기 공급은 중장기적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난 2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미나 발표 자료인 ‘유럽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과 시사점’에서 “우크라이나의 무기체계 개편은 나토와 우크라이나군 간 상호운용성을 증대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운용경험이 축적되면 우크라이나군은 나토 규격을 자연스레 흡수하게 된다. 나토 규격과 호환되는 장비를 다수 운용하면 스웨덴과 핀란드처럼 필요시 나토 가입을 추진하는데 도움이 된다.
서방 입장에서도 현재 운용하는 장비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것은 이득이다.
우크라이나에 신제품을 공급해 옛소련 장비를 교체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외교 전문 싱크탱크 유럽외교협회(ECFR)의 지난해 연구자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이 보유한 러시아산 전차 987대를 서방 국가 신제품으로 바꾸면 약 92억 유로(13조2370억 원)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보병전투차 1357대 교체는 78억8000만 유로(11조3377억 원), 자주포 655대 교체는 71억 유로(10조2155억 원)가 소요될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서방 각국에서 회의적인 견해가 나오는 상황에서 막대한 재정부담은 감당하기가 어렵다.
현재 운용중인 장비들을 우크라이나에 보내고, 전력공백 해소와 국방력 강화를 앞세워 신형 무기들을 개발해 배치하는 것이 국내 여론 설득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신속한 지원을 모두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는 우크라이나군 개편과 유럽 각국의 군 현대화가 함께 이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국방예산이 대폭 늘어난 것과 맞물리면서 유럽 각국 정부와 방위산업체는 차세대 전차와 장갑차, 전투기 등에 대한 개발 또는 구매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결국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 무기 지원 확대는 국제정치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촉진하고, 경제적으로는 유럽 방위산업 강화와 방산시장 확대 또는 통합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폴란드에 K2 전차와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를 수출한 한국도 추가 수주와 시장 영향력 확대를 위해 유럽 시장 변화를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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