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은 위험하기만 할까 [버블이 낳은 쌍둥이 금융위기와 이노베이션]
산업의 혁신적인 기술 진보 또는 신 사업 성장 기회 제공
[스페셜리포트 : 버블이 낳은 쌍둥이 금융위기와 이노베이션] 거품 위를 걷는 사람들
“잃어버린 30년?”
“저출산·부동산…일본 버블 판박이”
“코로나19 이면에 가려진 자산 버블”
버블 붕괴에 대한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세계는 지금 ‘닷컴 버블’ 이후 약 20년 만에 발생한 버블 경제 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증시와 가상 자산에 광적인 투기가 이어졌던 현상은 이제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등 긴축으로 꺼져 가며 버블의 붕괴를 야기하고 있다. 버블론이 불거지면 일확천금·신기술·과도한 낙관주의에 빠졌던 다수의 사람들이 비극에 빠져든다. 그런데 ‘버블’은 나쁘기만 할까.
버블의 양면성
“여러분, 모두 부~자되세요.” 한때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광고 문구를 기억하는가. 2002년 한 신용카드사의 광고 문구였다. 이를 기점으로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던 덕담이 바뀌었다. 모두가 ‘부’를 노래할 정도로 당시 한국은 ‘버블’ 그 자체였다.
버블의 진원지는 정보기술(IT)이다. 1997년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당시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인터넷에 주목해 코스닥시장과 중소기업 위주의 벤처기업 육성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돈이 풀리자 시장에서는 ‘벤처기업’ 딱지만 달면 주가가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감돌았다. 이 무렵 A사의 주가수익률(PER)은 9999배로 치솟기도 했다. 코스닥시장에 상장도 안 된 주식이 액면가의 200배를 찍는 일도 있었다. 벤처기업과 주식 시장에 유동성 자금이 급격하게 몰려들었다.
돈 잔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0년대 초반 미국과 한국에 형성된 IT 버블이 꺼지면서 파산이 속출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주가지수는 2000년 3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943일간 고점 대비 78% 가까이 하락하며 나스닥 역사상 가장 큰 하락 폭을 기록했다. 한국증시는 미국보다 타격이 더 컸다. 유가증권시장은 연초보다 52%, 벤처기업 중심인 코스닥시장은 80% 하락한 채 마감돼 버블 붕괴로 당시 테마주들은 거의 대부분이 상장 폐지를 당했다. 여기저기 곡소리가 난무했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IT 버블로 막대한 자금을 보유한 일부 기업들은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섰다. 전우의 시체를 넘어 승자가 된 대표적 사례는 네이버다.
네이버는 벤처 붐이 일던 1997년 3월 삼성SDS의 사내 벤처기업으로 시작했다. 후발 주자인 네이버는 다음·야후·라이코스코리아·네띠앙과 같은 포털 사이트들이 과점하던 시장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네이버는 선두 포털 서비스 업체를 따라잡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다. 오히려 게임 업체인 한게임커뮤니케이션과 인터넷 마케팅 전문 업체인 원큐, 서치솔루션 등 3사를 인수·합병(M&A)하는 등 몸집을 키웠다. IT 버블로 불황의 골이 깊던 2002년에도 70명에 가까운 인력을 충원하고 공모를 통해 자금을 마련해 해외 진출에 투자했다. 2년간 중단했던 광고도 재개했다. 배우 전지현 씨가 네이버 지식인 서비스로 대표되는 ‘초록창’을 광고하며 대박을 쳤다. 그 결과 2002년 10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고 2004년 버블이 종료될 시점에는 코스닥 업종 시가 총액 1위 기업이 됐다. 그리고 한국을 구글의 유일한 경쟁자가 있는 나라라는 평가를 듣게 만들었다.
여전히 세계를 호령하는 글로벌 기업 아마존과 구글도 IT 버블의 산증인이다. 1994년 설립된 아마존은 닷컴 시대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 중 하나였다. 1997년 5월 1달러에 불과했던 아마존의 주가는 1999년 ‘닷컴 광풍’을 타고 100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그 무렵 미국 전역을 덮친 닷컴 버블에 아마존의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의 위기를 겪었다. 아마존은 포기하지 않았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공격적인 가격 인하 전략을 펼쳤다. 또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 등 서비스를 다각화하며 오히려 비즈니스를 확장했다. 오늘날 시가 총액 1조 달러가 넘는 세계 최대 기업 중 하나로 성장한 아마존의 히스토리이자 “썰물이 빠지면 누가 지금까지 발가벗고 헤엄쳐 왔는지 비로소 알 수 있다”는 워런 버핏의 말을 입증한 이야기다.
주식 거품이 정점에 달하던 2000년 1월 13일 앨런 그린스펀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도 버블의 양면성에 대해 말했다. “2010년을 기준으로 1990년대를 되돌아보면…(우리는) 새천년에 접어들면서 미국 경제가 한 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혁신의 가속화를 경험했고 그 결과 생산성·생산량·기업 이익·주가가 이전 세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속도로 상승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2010년을 회고해 보면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의 상당 부분이 인류 역사에 산재한 수많은 투기 거품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최근 몇 년 동안 두 시나리오의 요소가 모두 작용했다는 결론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를 전후로 벌어진 버블 시대에도 수많은 기회가 포착됐다. 그중 하나는 2007년 1월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고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청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검은색의 조그만 기기, ‘아이폰’이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이 당연하지만 당시만 해도 휴대전화는 통화와 문자가 전부였다. 당시 아이폰은 휴대전화에 터치로 조작할 수 있는 대화면의 MP3와 인터넷 통신 기기 등 3개의 기기를 하나로 합친 제품이었다. 잡스는 “오늘 애플은 휴대폰을 재발명했다”고 했고 평론가들은 이 제품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전자 제품”이라고 평가했다.
그 후로는 ‘대폭발의 시대’였다. 세계 각지의 창업자들이 아이폰에서 구현할 수 있는 서비스(애플리케이션)들을 쏟아냈다. 에어비앤비·슬랙·우버·그루폰 등 글로벌 서비스들과 배달의민족·토스 등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유명 애플리케이션 대부분이 그때 탄생했다.
에어비앤비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설립됐다. 사람들이 돈을 벌고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으면서 남는 방이나 아파트를 빌려주는 아이디어가 점점 인기를 얻게 되면서 에어비앤비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여행자에게 쉽게 빌려줄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 것이다. 슬랙은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기업들이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을 간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던 2009년 등장했고 우버는 기존 택시 서비스에 대한 저렴하고 편리한 대안으로 금융 위기의 여파가 지속되던 2009년 설립됐다. 그루폰 역시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돈을 절약하고 지역 비즈니스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기 위해 2008년 설립된 대표적인 사례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1840년대 영국에서도 버블의 이면을 엿볼 수 있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철도 투기 바람이 불었다. 새 시대라는 내러티브에 높아진 투자자들의 기대 심리와 경기 호황과 저금리 기조에 따른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이 배경이었다. 1844년 ‘철도법’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철도 회사들이 평균 10%의 배당을 실시했다. 이는 당시 이자율의 3배였다. 1845년에만 철도가 약 1200개가 건설될 예정이었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이 약 5억6000만 파운드였다. 당시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약 5억5000만 파운드였던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자본 투입이다.
금융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까지 경쟁적으로 주식을 매수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주가가 폭락하면서 영국 국민총생산(GNP)의 절반에 맞먹는 시가 총액이 증발했다.
하지만 남은 것은 있었다. 당시 영국 정부는 투자자들이 몰리자 계획한 예산보다 훨씬 큰돈을 쏟아부어 철로 길이를 수천km나 늘리기로 했다. 이 결과, 영국은 1855년까지 약 1만2300km가 넘는 철도가 운영됐다. 이는 독일과 프랑스의 7배에 달하는 것이다. 버블 당시 건설된 철도가 현재 영국 철도 시스템 총연장의 90%에 달한다. 결과적으로 여러 상품들이나 원자재 그리고 사람들을 더 빠르고 저렴하게 운송할 수 있게 되면서 영국인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은 엄청난 효율성 향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교통 병목 현상이 사라지자 시간은 곧 돈이 되고 자본의 축적이 가능해졌다. 판매자와 구매자를 가로막던 거리라는 장벽이 사라지고 운송비가 절감되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이는 수익성 증대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 철도는 1845년에서 1855년, 약 10년 사이에 수송비의 약 4분의 3을 절감시켰다. 나아가 철도는 이동의 편리성을 넘어 인류 역사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이동 수단의 혁명이 결과적으로 유럽의 상품 교역을 활발하게 하고 유럽 문화를 꽃피우는 데 결정적인 기폭제가 된 것이다.
이 밖에 최초의 대서양 횡단 전신 케이블은 최초의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한 1857년 전후로 결실을 봤고, 최초의 라디오 방송 또한 미국 중앙은행(Fed)의 창설로 은행의 위기가 발발하기 직전인 1906년 시작됐다.
20세기 진공관 문명의 총아로 불리는 텔레비전(TV)의 시초 격인 인류 최초의 전자식 TV는 역사상 최악의 경기 침체로 일컬어지는 대공황 시기(1929~1933년) 직전에 개발됐다. 오일 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공황을 겪었던 1973~1974년 직후에는 인류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가 탄생했다.
혁신의 자양분
신제품의 발명이나 개발, 새로운 생산 방법을 도입하거나 신기술을 발명해 내는 것,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일, 새로운 원료나 부품을 찾아내 사용하거나 공급하는 것, 조직을 새롭게 형성해 생산성을 올리는 일…. 세계를 뒤흔든 기술 혁신이 경제 버블을 전후로 태동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는 이를 ‘창조적 파괴’라고 불렀다. 불황의 시기에 기업가의 혁신으로 불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반대로 경제 위기가 오기 전 버블의 시기에 탄탄한 자본금을 바탕으로 기업가들이 혁신의 싹을 틔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버블은 금융 위기를 낳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탄생을 가져온다. 특히 신기술 버블은 일시적으로 집중된 엄청난 투자금이 해당 산업의 혁신적인 기술을 진보시키거나 새로운 사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닷컴 기업에 대한 투기로 풍부한 벤처와 주식 투자금이 형성됐고 이후 각 분야에서 혁신 기업들이 나오는 토대가 됐다. 버블이 붕괴된 이후에는 옥석이 가려지면서 새로운 기업들이 탄생했다. 즉, 버블은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과정이자 혁신의 자양분인 셈이다. 벤처 캐피털리스트이자 경제학자인 윌리엄 제너웨이가 지적했듯이 기술 혁신에는 ‘비효율적인’ 시행착오 실험이 필요하기 때문에 버블은 반드시 낭비적일 수밖에 없다.
금융 위기와 이노베이션은 버블이 낳은 쌍둥이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기 위해 반드시 내야 하는 비용일 수 있다. 다니엘 그로스는 “경제 거품이 피해를 주고 단기적인 경제적 고통을 야기할 수 있지만 경제 순환의 자연스러운 일부이고 장기적인 이점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 근거다. 거품이 새로운 산업과 기술을 창출하고 새로운 플레이어를 시장에 끌어들이며 실험과 위험 감수를 장려한다는 것이다. 그로스는 “비이성적인 경제적 열광이 냉철한 기회와 성장·혁신의 토대를 마련한다“며 “거품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거품이 현대 경제를 이끄는 혁신과 성장의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2023년, 모두가 세계적 버블과 은행의 위기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선 무궁무진한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터넷과 아이폰을 뛰어넘는 제3의 혁명으로 불리는 ‘챗GPT’는 그 시작일 수 있다. 이정수 플리토 대표는 “2023년에는 챗GPT를 기반으로 무궁무진한 사업 기회가 열릴 것”이라며 “스타트업의 황금기가 다시 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거품을 보는 것을 넘어 거품 위를 걷는 사람들을 주목할 시기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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