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언의 책과 사람들] 저작권 ‘해적질’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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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에 들어서면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깨를 볶고 짜면 기름이 나오는데, 이 과정에서 깨 볶는 냄새가 진동하기에 그렇다.
기름을 한 방울까지 알뜰하게 짜고 나면 찌꺼기라 할 수 있는 깻묵이 남는다.
더 이상 짜낼 수 없을 때까지 쥐어짜 기름기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은 깻묵은 낚시 떡밥으로 팔리거나 비료가 돼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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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방앗간에 들어서면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깨를 볶고 짜면 기름이 나오는데, 이 과정에서 깨 볶는 냄새가 진동하기에 그렇다.
기름을 한 방울까지 알뜰하게 짜고 나면 찌꺼기라 할 수 있는 깻묵이 남는다. 더 이상 짜낼 수 없을 때까지 쥐어짜 기름기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은 깻묵은 낚시 떡밥으로 팔리거나 비료가 돼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영화를 비롯한 각종 영상물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딱딱하게 굳은 깻묵이 떠오른다. 기름을 짜낸 깻묵은 버려지지 않고, 동물의 사료나 작물을 키우는데 필요한 비료처럼 다음 세대가 생장하는 밑거름이 된다. 하지만 깻묵을 70년간 계속 쥐어짜기만 하면, 그것은 돌덩이처럼 굳은 폐기물일 뿐 다음 세대에 도움을 주는 양질의 거름이 될 수 없다.
어쩌면 영상물의 지적재산권이라는 것은 더 이상 팔리지 않는 상품의 유통기한을 70년이나 늘려 마지막 한 방울의 기름까지 짜내려는, 거대 기업들의 수익 전략은 아닐까?
어느 정도의 수익이 생겼다면 그 이후의 수익 창출은 인류의 지식과 문화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지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논란이 된, 공공도서관에까지 저작권료를 받겠다는 소위 ‘공공대출보상권’ 주장은 인류의 지식과 교양을 후퇴시키는 조치라는 생각이다.
‘마테리알’ 7호에 실린 한민수의 ‘해적질의 옹호와 현양’이라는 글을 읽었다. 나처럼 영화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꽤 흥미로운 글이다.
“지적재산권 같은 건 없다”는 장 뤽 고다르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한 이 글에는 소위 ‘해적질’이라 표현되는,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비상업적 영상물들의 경로는 물론, 이들의 국제적 연대, 자막 만들기와 같은 자발적 활동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글은 국경을 넘어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근원적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아마도 30~40년 후 2000년대 영화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돌아보면,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전 세계의 영화광들은 ‘시네마테크’의 물리적 공간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갔다. 이들의 노력으로 접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국경과 제도의 제약을 뛰어 넘어 유통됐다. 또 이들은 다수의 사람들이 보다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어떠한 보상도 없이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투자해 자막을 만들어 배포했다. 이러한 활동은 영화배급사 혹은 제작사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기에 음성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이들에 의해 전 세계 영화문화가 보다 풍성해졌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최근 내가 운영하는 책방 노마만리를 방문한 한민수씨가 자신의 글이 실린 마테리알 7호를 선물해, 이 글을 읽게 됐다. 그전까지 나와 그는 일면식도 없는 관계였다. 같은 지역에 영화연구자가 운영하는 책방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그 주인장에게 자신의 글이 실린 잡지를 기증하며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이는 책방 주인과 손님이라는 관계를 뛰어넘는, 영화로 얽힌 동지애 같은 것이리라.
주말동안 타블로이드판으로 인쇄된 감각적인 잡지 ‘마테리알’을 차근차근 읽어 갔다. 20~30대 젊은 비평가들의 글이 나에게는 다소 낯설었다.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였다. 그와 별개로 이들의 활동을 검색해 찾아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책과 영화를 소개하는 잡지를 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여러 문제들로 주저하고 있었다. 이렇게 멋진 비평잡지를 만들어낸 젊은이들의 연대와 실행력은 질투가 날 정도였다. ‘질투는 나의 힘’, 조만간 ‘마테리알’ 창간호부터 6호까지를 모아 읽어야겠다.
▲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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