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경제전쟁, '반도체' 다음에 내놓을 미국의 무기는[PADO]
[편집자주] 지난주 PADO는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전쟁 예상 시나리오를 다룬 기사('대만 전쟁을 준비하는 미국과 중국')를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이미 현재진행형인 미중 '경제'전쟁의 차후 예상 시나리오를 소개합니다. 앞으로도 반도체를 필두로 한 첨단기술이 주요 전장이 되겠지만 미국이 갖고 있는 카드는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바이오·제약, 녹색 에너지는 물론이고 심지어 농업 부문까지 전선이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의 4월 1일자 기사를 요약 소개합니다. 기사 전문은 '미국이 만지작거리는 美中경제전쟁의 또다른 무기'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여성의 배를 본 중국 세관 직원은 미심쩍었다. 임신 5~6개월이라 했지만 배는 이미 만삭인 양 불룩했다. 검색을 해보니 여성의 배는 가짜였다. 급조해 만든 주머니 안에 든 것은 마약이나 무기가 아니었다. 다름 아닌 컴퓨터칩 202개였다. 미국이 작년 중국 법인에 대한 특정 반도체 및 관련 장비의 판매를 금지한 이후 중국 기업들은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반도체 수입이 급감했다(표1 참조). 기업가 정신이 투철한 중개상들은 원하는 물품을 확보하고 덤으로 관세까지 피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제재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중소기업만이 아니다. 작년 10월 미국의 제재가 시행되기 전까지, 중국의 대형 국영 메모리칩 제조업체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반도체 제조업에서 글로벌 기업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중국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하룻밤 새 YMTC와 다른 모든 중국 기업들은 최첨단 칩을 만드는데 필요한 장비를 구매할 수 없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YMTC가 장비를 조달하지 못해 2023년 사업계획을 확정짓지 못했다고 한다. 새로운 생산시설 건설을 연기해야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중국 반도체 산업을 후퇴시킬 것이다. 컨설팅 업체 인터내셔널비즈니스스트래티지는 과거 중국 기업이 2023년까지 자국이 필요로 하는 반도체칩의 50% 이상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미국의 제재가 발효된 후 예상수치를 33%로 낮췄다.
미국 정책가들이 원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최근 제재는 중국, 러시아, 그리고 냉전 시대 소련에 가했던 과거의 조치와는 다르다. 이번 제재는 중국이 첨단 무기나 한정된 범위의 기술에 손대는 걸 막을 뿐 아니라 중국의 산업 전반을 약화시키려 한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작년 9월 연설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는 인공지능, 바이오, 청정 에너지와 같은 '기반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역량을 약화시켜 미국이 이 분야에서 최대한의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 계획을 '설리번 독트린'이라 부른다.
반도체칩 밀수에 박차를 가하고 YMTC를 뒤흔든 FDPR은 10월에 발표된 것이다. 설리번 독트린에 따라 모든 인공지능의 기반이 되는 머신러닝과 관련된 최첨단 칩을 중국으로부터 차단하려는 시도다. 또한 미국 국적의 엔지니어는 물론이고 심지어 미국 영주권을 가진 중국인의 중국 반도체 회사 취업을 금지한다. 베이징 유럽 상공회의소의 요르그 뷔트케는 이러한 갑작스러운 조치에 대해 "사실상 IT기술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미국은 2019년부터 중국 IT기업인 화웨이를 겨냥, FDPR을 비롯한 다양한 무기로 압박하고 있다. 전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또 다른 중국 기업 바이트댄스를 압박해 전 세계 10대들이 사랑하는 SNS 앱 틱톡의 강제 매각을 꾀하기도 했다. 이제 미국의 공격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미 의회는 틱톡 금지에 대해 시끄럽게 논의하고 있다. 상무부와 재무부의 고위 관료들은 필요할 때 얼마든지 꺼내쓸 수 있는 다양한 제재 수단을 갖고 있다. 하지만 중국도 자국 산업이 얻어터지는 걸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분쟁에서 그렇듯이 다른 나라들도 싸움에 휘말리고 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빌 드렉셀은 이러한 발전으로 인해 미국이 칩에 대한 제재를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칩의 연산능력에만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드렉셀에 따르면 "연산 능력과 통신 속도 사이의 최적점"을 찾는 것보다 더 간단한 접근방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수출 제한 조치를 보다 연산 능력이 낮은 칩에까지 확대하는 게 다음 수순이 될 것이다. 작년에 시장 규모가 400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하는 시장인 비디오게임 산업에서 사용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규제 확대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미국 칩 제조업체와 중국 고객 모두 고통받을 것이다.
상무부가 다른 산업 분야에도 FDPR을 사용할 수도 있다. 중국 바이오의약품 산업은 2025년까지 10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이 예상되는 산업인데 미국의 지적 재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신약과 치료제를 생산하는 중국 시설에 많은 생물학 원료, 기술 정보, 실험실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는 게 로펌 호건로벨스의 에이제이 쿤타묵칼라의 지적이다. 이런 거래 중 일부가 금지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다음 제재 조치가 겨냥할 가능성이 높은 타깃 하나는 중국 기업이 미국 수출용 의약품 생산에 사용하는 미국산 소프트웨어다. 서구의 많은 기업들도 새로운 의약품 개발을 위해 중국으로 데이터를 수출한다. 또 다른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에밀리 벤슨은 앞으로 이러한 데이터 전송도 제한될 수 있다고 한다.
미국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또 다른 조치는 기업에 대한 FDPR의 확대다. 이에 대한 시범 사례는 미국의 여러 제재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화웨이다. 화웨이의 자회사 쿤펑은 데이터센터에 사용되는 서버를 생산하고 중앙처리장치(CPU) 설계를 여러 중국 IT기업들에 라이센싱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여전히 미국 기업인 인텔과 AMD로부터 키트를, 대만 칩 제조업체인 TSMC로부터 칩셋을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화웨이 납품업체를 블랙리스트에 추가하여 화웨이의 데이터센터 확장을 방해할 수 있다.
해외자산을 보유한 중국 대기업들도 이 싸움에 휘말릴 수 있다. 3월 초 미국 농무부는 종자 산업의 공정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실무그룹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 이후 중국 농산업기업 시노켐이 발행한 채권의 가치가 하락했는데 신설 실무그룹이 시노켐 종자에 대한 규제를 권고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는 수년간 해외에서 기술을 습득하고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에서 지적 재산권 등록에 주력해 온 중국기업에게 두려운 전망이다. 시노켐에 대한 제재는 시노켐이 2017년 430억 달러에 인수한 스위스의 거대 농업기업 신젠타의 사업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눈여겨보고 있는 산업 중 몇몇은 FDPR로는 타격을 주기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양자 컴퓨팅 산업은 초기 단계로, 미국산 장비나 지적 재산에 거의 의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분야의 중국 연구자들은 미국 연구자들과 활발히 협력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과학자 에드워드 파커는 미국 양자 컴퓨팅 전문가들이 다른 어떤 외국 연구자보다 중국 연구자들과 더 많은 논문을 공동 집필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상무부의 또 다른 무기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바로 '간주(看做) 수출(deemed export)' 통제로, 미국 영토 안에서도 특정 유형의 기술 정보를 외국인에게 공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에는 모두 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양자 컴퓨팅 연구에서 외국인과의 협력을 금지하면 유능한 외국인을 채용할 수 없게 돼 중국 산업은 물론 미국 산업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 기술에 대한 미국의 투자 제한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미국 간의 적대감이 고조되고 팬데믹으로 거의 3년 동안 중국의 국경이 폐쇄되면서 이미 투자가 위축되었다 (표 2 참조). 투자 그룹 피커스캐피털의 알렉산더 그레머는 중국의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미국 자금은 더 이상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쨌든 미국 규제 당국이 전면적인 금융규제를 시행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홍콩이나 케이맨 제도 같은 역외 피난처 소재의 모든 달러화 펀드를 감시하는 것은 규제 당국의 인원과 자원을 대폭 늘리지 않고는 역부족이다.
이러한 대체 시스템은 개발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가 기존 시스템만큼 우수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굴하지 않는다. 과학 기술의 "자립"은 중국 지도자 시진핑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다. 시진핑 정부는 그중에서도 반도체 개발에 예산을 쏟아 부었다. 많은 예산이 낭비되었지만 전부는 아니다. 예를 들어 중국은 칩을 연결하는 핵심 부품인 병렬-직렬(SerDes) 송신회로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최근까지 주로 외국기업에서 생산했다. 하지만 상하이 소재의 사모펀드 회사 신시어캐피털의 헥시게투는 현지 제조업체들이 송신회로 제조법을 비교적 빠르게 배웠다고 말한다. 중국의 전략 산업 발전을 저지하기 위해 시작한 미국의 제재가 되려 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한편 미국의 제재가 강화될수록 전 세계 기업들은 움츠러든다. 많은 기업인과 일부 외국 정부는 미국이 들이는 비용은 크지만 그 소득은 거의 없는 방식으로 세계화의 규칙을 다시 쓰고 있다고 불평한다. 서방 기업들은 중국 사업을 기업 내의 '중국 사업부'라기보단 울타리로 둘러싸인 별개의 조직으로 여겨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리고 중국 외부에 있는 연구 부서와는 점차 연결이 끊어지고 있다. 추가 제재의 위협이 아른거리자 경영진은 중대한 투자 및 채용 결정을 미루고 있다. 중국 IT기업들 역시 틱톡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서방 국가에 대한 투자와 확장을 연기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동맹국들이 연합전선을 형성하도록 설득하는 데 항상 성공하지는 못했다. 일례로 10월에 발표된 일련의 FDPR은 네덜란드, 한국, 일본의 지지를 확보하기 전에 발표되었다. 이들 국가는 첨단 칩과 칩 제조장비를 많이 생산한다. 이들이 미국의 새로운 규제를 따르지 않는다면 중국 봉쇄 시도는 실패할 것이다.
발표 후 미국 정부 관계자는 네덜란드와 일본 정부로부터 내키지 않는 듯한 동의를 얻어냈지만 네덜란드 칩 제조장비 생산업체인 ASML과 몇몇 일본 대기업에게는 고통스러운 조치가 될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 기업은 1년의 유예를 받았지만 결국에는 규제를 따라야 할 것이다. 한국은 메모리칩의 절반 가량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고 CNAS의 샘 하웰은 지적한다. 한국의 반도체 대기업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중국 내 제조 시설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들은 제재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엔 미국으로부터, 그리고 준수할 경우엔 중국으로부터 보복을 받을 위험이 있다. 하웰은 미국의 방대한 제재 프로그램에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지금까지는 대대적인 보복을 자제하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애플과 같은 미국 대기업이 자국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을 반기고 있다. 3년만에 중국을 방문한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은 미국과 중국 간의 경제적 '디커플링'에 대한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3월 25일 베이징에서 지난 30년 동안 양국의 "공생" 관계가 양국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상무부는 태양광 패널에 쓰이는 일부 첨단 실리콘 웨이퍼의 수출금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많은 미국 기업들에게 타격을 줄 것이다. (물론 중국 수출업체에도 치명적일 것이다.) 그보다 중국의 보복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는 바이오 산업이다. 많은 미국 기업이 의약품과 의료 기기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리서치 기업 로디움의 레바 구존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탄저균 항체에 사용되는 일부 성분은 오직 중국에서만 생산된다. 미국이 더 많은 제재를 발표할수록 보복에 보복이 이어질 위험이 커진다.
김수빈 PADO 매니징 에디터 subin.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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