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에 이어 ‘서초 학원가’까지 마약 횡행…법무부 “처벌 강화 신중”[여의도 정책通]
20대 국회에서 법안 폐기, 21대 국회 계류 중
법무부 “취지 공감 하지만, 현행법으로 가능”
전문가 "피해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
해외, 성범죄 연결된 ‘타인 투약범’ 가중처벌
[헤럴드경제=이승환]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마약 음료를 학생들에게 건넨 사건이 발생하면서 마약류 '타인 투약범'을 '단순 투약범'보다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타인 투약범은 다른 사람의 의사에 반해 타인에게 마약을 투여할 경우 상해를 입히거나 성범죄를 저지르는 2차 가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타인 투약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마약류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낮다. 버닝썬 사태로 지난 20대 국회에서 타인 투약범 처벌 강화 내용의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졌지만, 형벌 규정을 담당하는 법무부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하며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이 계류돼 있지만 법무부의 입장은 변함없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2월과 4월에 각각 발의된 마약류관리법 개정안(신경민 더불어민주당·장정숙 바른미래당 의원 대표발의)은 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모두 폐기됐다. 해당 개정안은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임시마약류를 다른 사람 의사에 반해 투약하거나 흡연 또는 섭취하게 한 경우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해당 개정안이 발의되고 국회에서 논의됐던 시점에는 이른바 물뽕(GHB)으로 불리는 신종 마약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 투약해 항거불능 상태에 빠트린 후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이어졌다. 특히 연예인이 연루된 버닝썬 사태에서도 물뽕이 사용되면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다.
하지만 당시 법무부는 현행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제시하며 해당 개정안에 사실상 제동을 걸었다. 마약류를 투약해 강간이나 강제추행에 이르렀다면 형법상 강간치상, 강간추행치상에 관한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21대 국회 들어서도 타인 투약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타인 투약범을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는 내용의 마약관리법 개정안을 올해 3월 발의했다. 현행법상 마약 소지‧소유‧관리‧수수하는 경우에 대해서만 1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부여하고 있다.
해당 개정안에 대해서도 법무부는 현행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과거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안 취지에 공감은 하지만 현행법에서 양형상 고려할 수 있기 때문에 개정 실익은 적다는 입장”이라며 “지금 있는 법으로도 의율이 가능한 상태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타인 투약범에 대해 가중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꾸준히 제시하고 있다.
2019년 발간된 ‘FDC 법제연구’의 ‘성범죄 관련 마약류 타인사용사범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고찰’에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마약류 남용 관련 범죄들의 특징은 마약을 자가 투여하던 기존의 사용자들과는 달리,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할 목적으로 타인에게 알코올 등과 혼합해 임의 투여하는 범죄로 추측된다”며 “타인에게 임의로 약물을 사용하는 행위는 피해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끼치는 범죄행위로서 이를 강력히 규제하고 처벌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현행 법률들은 공통적으로 마약류 자가 복용, 유통, 거래를 규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마약류의 타인에 대한 사용의 규제는 그런 행위자가 늘고 있음에도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에 발표된 국회 입법조사처의 ‘마약범죄 수사·기소·처벌에서의 쟁점과 과제’에서는 “마약류 등의 타인투약은 그 자체로도 피해자에게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줄 뿐 아니라, 피해자가 인지하지 못한 채 범행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자가투약보다 강하게 처벌하자는 의견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적시했다.
다만 주요국들은 타인 투약범 처벌과 관련해 마약 관련 범죄 전체를 대상으로 가중처벌 하는 것보다 성범죄와 직접 연결되는 마약류 투입에 한정해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시행 중이다. 우리나라 법무부의 입장과 같이 가중처벌 규정이 현행법 체계와 충돌할 수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미국 의회는 1996년 피해자의 동의 없이 약물을 투여해 강간 등 폭력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 20년 이하의 징역과 벌금에 처하도록 ‘마약에 의한 강간방지 및 처벌법(Drug-Induced Rape Prevention and Punishment Act)’을 제정했다.
김보람 국회 입법조사관은 “해외 입법례를 보면 성범죄와 직결되는 마약류에 대해 가중 처벌을 하지만, 일반적인 마약류 모든 것에 대해서는 본인투입과 타인투입에 대해 형벌 규정을 따로 두지는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nic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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