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클릭하기] 엑스포의 문화정치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2023. 4. 8.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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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2025년 엑스포는 오사카에서 열린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잇는 일본의 대형 국제 행사다. 비슷한 일이 60년 전에도 있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1970년 오사카 엑스포가 그것이다.

도쿄 올림픽은 전범국 일본의 재기를 세계에 알린 선전 무대였다. 6년 뒤 오사카 엑스포는 국내를 겨냥했다. 문화연구자 요시미 ��야는 오사카 엑스포에 대해 “전쟁의 승리가 시가행진을 통해 자기 확인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소득배증'이나 '고도성장''의 달성도 어떤 형태로든 국가적 의례를 통해 자기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요시미 ��야 저, <만국박람회 환상>)고 분석한다.

2020년 올림픽과 2025년 엑스포도 유사한 맥락이다. 도쿄 올림픽은 아베노믹스로 '잃어버린' 수 십 년을 이겨내고 '보통국가'로 재무장을 염원하는 일본의 욕망이 담겼다. 그러나 전지구적 역병은 도쿄 올림픽을 1년이나 유예시켰고 일본 보수파 좌장 아베는 허망하게 유명을 달리했다. 남은 것은 2025년 엑스포일 터인데, 불완전한 올림픽으로 한 쪽 날개를 잃은 엑스포가 일본인들에게 1970년만큼의 반향을 일으킬지는 미지수다.

▲ 2021년 7월23일 2020도쿄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 밖에서 시민들이 올림픽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엑스포의 기원은 순수하지 않다. 제국주의·식민주의·자본주의와 맞닿는다. 대량의 물건을 한 곳에 모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관행과 제도는 서구가 대항해시대를 거쳐 지구 곳곳에서 약탈한 동식물이나 사람, 물건들을 전시하며 정착되었다. 이후 산업혁명으로 엄청난 양의 상품이 쏟아지고 세상이 격변하자 엑스포라는 거대 산업 이벤트가 기획되었다.

최초의 국제 엑스포인 런던 엑스포는 1851년에 개최되었다. 요시미 ��야는 이를 노동자 혁명에 대한 자본주의 역습으로 간주한다. “수정궁의 전시품 사이를 걸어 다니는 600만 명의 군집은 이제 그 1848년 반란하는 혁명적 군집이 아니었다… 수정궁은… 이들 중산계급의 사람들을 상품을 욕망하고 소비하는 대중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요시미 ��야 저, <박람회>)

제국주의 착취로 얻은 부로 자국 노동자를 달래며 서구는 1889년 파리 엑스포에서 식민지 원주민들을 식민지촌에 전시한다. 세네갈인 가족 8명, 콩고인 가족 7명, 뉴 칼레도니아 가족 6명, 다수의 자바인이 서구 '문명'을 확인시켜주는 반례로 등장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엑스포에서도 필리핀촌에 이고롯 족이 전시되었다. 서구 제국주의 열강을 모방한 일본도 자신들만의 엑스포를 열었다. 1903년 오사카 내국권업박람회 학술인류관에는 홋카이도 아이누 5명, 조선 2명, 중국 3명, 오키나와 2명, 아프리카 1명 등 총 32명의 남녀를 전시했다.

인종주의적·제국주의적 동기는 희미해졌지만 엑스포가 자극하는 상업주의는 지금도 강력하다. 예컨대, 2008년 10월 양재동 aT 센터와 인근 시민의 숲, 서울광장에서 열렸던 코리아푸드엑스포가 그와 같았다. 불과 몇 개월 전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쇠고기수입 반대 촛불 시위가 무색하게도 기업·정부가 총력을 기울인 코라이푸드엑스포는 성황리에 개최되었고 미국과 수평적 외교를 맺길 주문한 시민의 바람은 소비자주의와 엑스포가 제공하는 볼거리를 거치며 순치되었다. 그리고 코리아푸드엑스포와는 규모와 내용, 예산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2030 부산 엑스포가 준비 중이다.

작년 8월, 여러 잡음 끝에 열린 방탄소년단의 부산 엑스포 유치 기원 콘서트가 포문을 열었다. 부산 엑스포는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항해'를 슬로건으로 걸었다. 국제박람회기구 실사단 내한에 맞추어 여야는 지난 4월3일, 재석의원 239명 만장일치로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성공적 유치 및 개최 결의안'을 의결했다. 이를 근거로 부산은 이탈리아의 로마,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와 치열한 3파전을 벌일 예정이다.

▲ 한덕수 국무총리가 2022년 7월19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소속사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에게 부산엑스포 홍보대사 위촉장을 수여한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역사는 엑스포나 올릭픽과 같은 대형 스펙터클 이벤트가 항상 정치적 기획과 함께함을 보여주었다. 화려한 볼거리와 상업주의가 사회적·국제적 모순을 은폐하거나 국가주의·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것은 아닌지를 경고했다. 부산 엑스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럴진대, 국회에서 단 한명의 이견도 없었다는 것은 문제적이다. 정녕 부산 엑스포가 순수한 국제 이벤트가 되리라 여길 만큼 순진해서일까. 아니면 지역 표심을 거스르길 두려워해서일까. 그 와중에 엑스포로 가려질 우리 현실을 직시할 정치인은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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