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야도 없는 구장서 일군 꿈 "이젠 이기러 고시엔 갑니다"

김지섭 2023. 4. 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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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교토국제고의 기적을 찾아서>
2021년 여름 고시엔 4강 신화
보통 야구장 반쪽 크기, 열악한 환경
"차 망가질라" 담장 넘어 볼보이 대기
"상상으로 이겨내라" 실전 같은 훈련
어느새 지역 명문 "신화 계속 써야죠"
2021년 여름 고시엔에서 4강 신화를 쓴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또 한 번의 기적을 기대하면서 하늘로 모자를 던지고 있다. 교토=김지섭 기자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0-34 대패, 1루 아닌 3루 달리던 오합지졸 팀의 대반전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일본 고교야구의 심장인 일본 효고현 한신 고시엔(甲子園) 구장에 지난 2년간 울려 퍼지게 한 한국어 교가다. 매년 봄과 여름에 열리는 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는 출전 팀과 승리 팀의 교가가 NHK 생중계를 통해 열도에 전파되는데, 교토국제고는 일본 최강 팀만 나선다는 고시엔에 2년 연속 출전했다. 특히 대회 주최 측이 우수 팀을 초청하는 봄 고시엔과 달리 일본 전역의 3,500여 개 팀이 참가해 지역 예선을 뚫고 49개 팀만 나서는 여름 고시엔에서 ‘4강 신화’를 쓰기도 했다.

1999년 창단 첫 경기 당시만 해도 0-34로 대패하고, 타격을 한 다음 1루가 아닌 3루로 뛰던 오합지졸 팀에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이다. 재일동포 사회는 물론 지역의 자랑으로 떠오른 건 당연하다. 2017년에 부임한 박경수(63) 교토국제고 교장은 “교토 지역에서 택시를 타면 우리 학교 명칭은 정확히 몰라도 ‘고시엔에 나간 팀’이라고 말하면 다 안다”고 자부했다.

교토국제고 선수들의 연습구장에는 외야가 거의 없어 제대로 된 타격과 수비 훈련 진행이 어렵다. 교토=김지섭 기자

외야 공간 없어 타격, 수비 정상 훈련 불가...주차장엔 볼보이 대기

한국일보가 지난달 눈으로 직접 확인한 교토국제고의 훈련 현장을 보면 ‘고시엔 4강이 왜 기적으로 불릴 수밖에 없었는지’ 쉽게 이해가 됐다. 교토국제고에는 연습구장 1면이 있다. 그런데 일반 그라운드와 달랐다. 홈플레이트부터 내야까지는 보통 야구장과 같았지만 외야 공간이 거의 없다. 외야 짧은 곳은 홈플레이트부터 50m, 길게는 60m 정도 길이였다. 규격이 워낙 작아 타자들의 장타는 그물망을 훌쩍 넘기고, 정상적인 외야 수비도 불가능한 환경이다. 이런 그라운드는 일본보다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한국 고교야구 팀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외야 뒤로는 학교 임직원들의 주차장이 있는데, 타구에 차가 맞을까 봐 그라운드와 주차 공간 사이에 야구부원 두세 명이 글러브를 끼고 대기하기도 한다. 주차 공간 앞에서 날아오는 공을 잡기 위해 대기 중이던 1학년 투수 듀오 히로오카 슈마와 야마무라 하루는 “평균 10개 정도는 공이 넘어온다”고 전했다.

선수들이 주차장으로 넘어오는 타구를 잡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교토=김지섭 기자

하지만 그들은 열악한 환경 핑계를 대지 않는다. 더욱 철저한 기본기 훈련, 이미지 트레이닝, 야구를 대하는 진지한 자세 등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갔다. 고마키 노리츠구 감독은 “없는 걸 달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 “평일에도 연습경기를 할 수 있도록 다른 팀과 일정을 조율하고, 주말같이 (20분 정도 거리에) 야구장을 빌릴 수 있는 날에 실전 방식으로 훈련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교에서 운동을 하더라도 야구장에서 뛰는 상상을 하며 운동하도록 주문한다”고 덧붙였다. 2학년 외야수 오사후네 하쿠오도 “훈련 때 최대한 외야 깊숙한 곳으로 가서 타구를 받으려고 한다”며 “외야가 좁으니 처리할 수 있는 것만 최대한 집중해 처리한다”고 말했다.

교토국제고 선수들의 이동 버스. 교토=김지섭 기자

휴대폰 숙면에 방해된다...자정 전 무조건 취침 위해 회수

규율도 철저하다. 교토국제고 야구부는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선수들은 무조건 자정 전에 휴대폰을 사감에게 반납하고 취침을 해야 한다. 자정 넘어 새벽에 잠드는 걸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로, 충분한 숙면을 취하게 하기 위한 판단에서다. 주장 하마다 타이키는 “다 같이 같은 방향, 고시엔 대회를 보고 달려가고 있다”면서 “야구는 물론 기숙사 단체 생활도 잘 견뎌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마키 노리츠구(왼쪽부터), 주장 하마다 타이키, 외야수 오사후네 하쿠오. 교토=김지섭 기자

2021년 봄 고시엔 2회전, 같은 해 여름 고시엔 4강, 이듬해 2년 연속 여름 고시엔 진출 등 꾸준한 성과를 내며 교토국제고는 일본 전역에서 야구를 좋아하는 선수들이 오고 싶은 팀으로 거듭났다. 아울러 지난 2년 동안 팀의 에이스이자, 4번 타자로 뛴 모리시타 류다이가 일본프로야구 요코하마에 전체 4순위로 입단한 영향도 컸다. 교토국제고는 2003년까지는 한국 고등학교라서 한국 국적 학생들로만 선수를 꾸렸는데, 2004년부터 일본 학교가 되며 일본인 학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학생 수가 줄어 폐교 위기까지 놓였지만 딛고 일어섰다.

박경수 교장은 “고시엔에서 뛰는 꿈을 이루니 전국에서 알게 됐다”며 “감독의 지도력과 학교 명성이 생기면서 효고현뿐만 아니라 홋카이도와 후쿠오카까지 학부모가 선수를 받아달라는 영상을 보낸다”고 말했다. 고마키 감독도 “그동안 고시엔에 가는 게 목적이었는데 이제 이기는 걸로 바뀌었다”면서 “항상 상대를 넘고 싶어 하는 마음과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의식을 가진 선수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명실상부 야구 명문 되자 선배들도 흐뭇

명실상부한 야구 명문고로 인정받는 모습을 보며 교토국제고 출신 선배들도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2020년도 졸업생인 일본프로야구 니혼햄의 우엔 쿄헤이는 “고시엔에 간 후배들이 대견하다”면서 “내가 가본 적 없는 무대에서 모교가 야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고, 나도 더 야구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고3 때는 선수 각자의 힘으로 경기를 풀어갔었는데 지금은 한 팀으로 움직인다”고 칭찬했다. 서울 덕수중을 졸업한 뒤 교토국제고에 진학했던 두산 신성현은 “후배들이 고시엔에서 경기를 치르는 모습을 보니 자랑스럽고 한편으론 부러웠다”며 “중계방송에 한국어 교가가 나왔을 때 뭉클했다”고 밝혔다.

박경수(왼쪽) 교장과 조리사 도요타 나오미. 교토=김지섭 기자

선수들의 삼시 세 끼를 챙기는 조리사 도요타 나오미는 “친구 중에 교토 지역 전통의 명문 헤이안고 팬이 있는데, 최근 3년간 우리 교토국제고를 이겨본 적이 없다”며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튼튼하게 좋은 성적을 계속 냈으면 좋겠다. 또 꿈은 이뤄진다는 걸 보여줘 용기와 힘을 얻었다. 우리 선수들 최고”라고 힘줘 말했다.

교토국제고의 기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는 7월께 시작하는 여름 고시엔도 뚫고 3년 연속 본선에 올라 일본 최강을 향해 계속 달린다는 각오다. 팀의 ‘원투 펀치’ 모리시타와 히라노 준타가 졸업했지만 1학년 신입생들의 기량이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다. 무엇보다 특정 선수에 의존하기보다는 단결력과 조직력의 힘으로 정상에 우뚝 서겠다는 각오다. 고마키 감독은 “모리시타가 빠져 좋은 투수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팀 전체의 힘이 필요하다”며 “선수들에게 이기는 맛을 더 알려주고 싶다. 올여름도 고시엔 본선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선수들도 “우리 모두의 힘으로 어떤 경기든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교토=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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