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 따라 마약 한번 맞았는데...난 괜찮을 줄 알았다”
경기도의 한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남모(27)씨는 작년 9월 일을 하던 중 직장 후배가 가방에서 주사기를 꺼내는 걸 봤다. “그게 무엇이냐”고 물으니 후배는 “몸에 좋은 주사인데, 맞으면 완전 행복해진다”고 했다고 한다. 남씨도 후배를 따라 주사를 맞았는데, 며칠이 지나서야 그것이 필로폰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우연히 접한 마약이었지만, 처음 느낀 자극을 잊지 못한 남씨는 이후 여러 마약에 빠졌다. 필로폰에 이어 대마, 엑스터시까지 손을 댔고 마약 중독자가 됐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합숙 마약 재활 시설 ‘경기도다르크’에서 지난 6일 만난 남씨 등은 이렇게 일상에서 지인으로부터 마약을 권유받았다고 고백했다. 이들은 지인, 여자 친구뿐 아니라 사촌, 직장 동료에게서 마약을 받았다. 이들은 마약을 무심코 가볍게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괜찮을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 중독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었다고 했다.
신모(28)씨 역시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 채 마약을 복용했다고 한다. 스무 살 때 만났던 여자 친구가 “좋은 게 있는데 한번 해볼래”라며 건넨 주사를 맞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필로폰이었다. 이후에는 10년 지기 친구로부터 필로폰을 권유받기도 했다. 신씨는 인터넷 등을 통해 산 필로폰을 거의 매일 투약했고, 친구들과 공동 구매로 마약을 사기도 했다. 3~4명이 모여 공동 구매로 구입하면 마약이 20~30%가량 더 쌌기 때문이다.
마약은 범죄가 아니라는 인식으로 접한 경우도 있었다. 작년 11월 경기도다르크에 입소한 황모(24)씨는 외가를 찾았다가 사촌 형에게 마약을 배웠다. 사촌 형은 황씨에게 “심리 치료에 효과가 좋다”며 액상 대마를 권했다고 한다. 황씨는 “어렸을 때부터 잘 따르던 형이었고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괜찮다며 권하니 나도 모르게 하게 되더라”며 “처음엔 이상했는데 계속 같이하다 보니 중독이 돼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2020년 처음 마약을 접한 황씨는 사촌 형과 상습적으로 액상 대마, 엑스터시 등을 함께했다. 황씨는 “집에 약이 있으면 누가 같이 술을 먹자고 해도 거절하고 퇴근할 정도였다”며 “이젠 일상을 회복하고 싶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마약으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직장을 잃었고, 인간관계 역시 끊어졌다. 반모(37)씨는 마약 살 돈이 없는 날을 빼고는 하루에 한 번씩 꼭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한다. 반씨는 “한번 빠져버리니 거의 매일 약을 해야 했다”며 “1년 넘게 약을 하면서 누가 나를 납치해 감금할 것 같은 망상과 환청을 겪었는데 혼자 의지로 끊기는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반씨는 정부가 운영하는 중독재활센터도 찾았지만, 충동을 참지 못하고 계속 마약에 손을 댔다고 했다. 일본의 한 명문대를 졸업했던 반씨는 개인 사업도 하는 등 활발한 사회 활동을 했지만, 이제는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게 경계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일상에서 마약을 접하기 쉬운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장은 “정부가 마약 판매 업자 등을 수사할 때 이들이 어떻게 판매했고 얼마나 많은 이에게 전달했는지 제대로 수사해 마약이 일상적이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그래야 지인이나 판매 업자 등에게 속아 억울하게 중독되는 이들이 생기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마약을 완전히 끊을 수 있는 정부 시설도 부족한 형편이다. 식약처가 운영 중인 마약중독재활센터는 현재 두 곳뿐이다. 작년 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재활센터를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평일 일과 시간에만 여는 재활센터의 효용성에 의구심을 가진 사람도 많다. 본지가 만난 마약 중독자들은 “마약 욕구가 충동적으로 들 때 도움을 언제라도 요청할 수 있어야 하고, 마약으로 무너진 일상의 리듬을 되찾는 연습을 해야 한다”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상담받고 평일 주간에만 전화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는 마약을 끊어내기 역부족”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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