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쪽 난 미국… 트럼프 못 걸러낸 정당시스템 탓인가, 관용 사라진 혐오사회 때문인가

김민정 기자 2023. 4. 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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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이슈 읽기] 트럼프 기소로 본 미국 민주주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박세연 옮김|어크로스|352쪽|1만6800원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

에즈라 클라인|황성연 옮김|윌북|344쪽|1만8800원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현지 시각)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 피고인석에 앉았다. 미국 전·현직 대통령이 법원에 선 최초의 사례다. 미국은 건국 이후 260년간 대립을 사법 수단이 아닌 정치 협상을 통해 접점을 찾아왔다. 이번 기소를 계기로 미국 사회에선 ‘합의의 정치’가 끝나고 한국 등에서 볼 수 있는 정치 보복과 분열의 길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고민이 시작됐다. ‘민주주의의 등대’로 불렸던 미국 민주주의가 왜 이렇게 된 걸까.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2018년)’, 미국 대안 언론 VOX를 창립한 저널리스트 에즈라 클라인이 미국 사회 양극화를 분석한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Why We’re Polarized·2020년)’에 그 실마리가 담겨있다.

◇”미국 정치가 안정적이라는 환상”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5년 전 이 책에서 이미 “미국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이 흔들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날로 극심해지는 정치 양극화를 짚으며 세계에서 가장 견고해 보였던 미국 민주주의가 쿠데타 같은 전복 없이도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말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드레일은 두 가지. 경쟁자를 인정하는 ‘관용’, 그리고 권력이나 제도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의 미덕이다. 두 불문율이 정당 정치가 파멸로 이르는 것을 막아왔는데, 가드레일이 제 역할을 못해 민주주의가 위태롭다고 이들은 경고했다.

지난 4일(현지 시각)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 출석한 뒤 플로리다주 자택에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그는 수백 명의 지지자 앞에서 “그들(민주당)은 투표로 이기기 어렵다고 보고 법을 이용하려 한다. 미국은 지금 엉망”이라고 주장했다. /AFP 연합뉴스

저자들은 과거 미국의 민주주의가 백인들만의 표면적인 평화였음을 지적한다. 백인이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지배 집단이던 시절엔 백인들끼리 지배적 위치를 유지한다는 공동의 이해 아래 서로 파멸로 치닫지 않는 ‘윈윈’의 힘겨루기를 했다면, 1964년 인종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이 통과되고 사회가 다원화된 뒤에는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제로섬’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양보와 합의는 종적을 감추고 민낯이 드러났다. 오바마가 최초 흑인 대통령이 된 이후 정당 갈등이 도를 넘어서기 시작한 것을 이를 통해 설명한다.

이어 포퓰리스트 독재자 등장으로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과정을 소개한다. 후보를 가려내는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못하는 정당 때문에 독재자가 선거에 나와 선출되고, 이 독재자는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고 경쟁자를 적으로 몰며 언론을 공격한다. 사법기관 등에 자기 사람을 심고 합법적으로 권력을 휘두른다. 저자들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트럼프 등을 독재자의 대표 사례로 제시하며 이들을 방조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정당 쇄신을 주문했다.

에즈라 클라인도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세금 인상 법안’에 서명하고,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적자를 줄이기 위해 ‘복지 축소 예산안’을 짜는 등의 정파를 떠난 선택이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미국이 됐다”고 진단하면서 “과거를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일은 꽤 불쾌할 수 있지만 현재를 명확히 이해하고자 한다면, 미국의 과거를 탈신화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트럼프만 사라지면 될까?

트럼프에 대해선 시각차를 보인다.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트럼프를 ‘선출된 독재자’라고 규탄한 반면, 클라인은 트럼프 개인을 ‘악당’ ‘독재자’로 보는 대신 양극화가 심화되는 흐름 자체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시 대선서 공화당 대선 후보에 투표한 백인 유권자 비율은 2016년 57%로 2004년 58%와 비슷했고, 출구 조사서 트럼프에게 투표했다는 남성 유권자 비율은 52%로 4년 전 롬니가 얻었던 성적과 일치해 딱히 이변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시장을 민첩하게 읽은 마케터”일 뿐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아닌 어떤 인물이 나오든 양극화에 계속 속도가 붙을 수 있단 의미다.

상대 당에 대한 혐오 때문에 표를 행사하는 ‘부정적 당파성’을 가진 이들이 지난 50년간 늘어났다는 것을 그 근거로 든다. 미 여론조사 기관이 쓰는 ‘느낌 온도(상대방에게 느끼는 감정을 1~100도 사이로 나타낸 것으로 높을수록 긍정적)’ 조사에서 1980년 유권자들은 자신이 속한 당에 72도, 상대 당에 45도를 매겼고, 2016년 유권자들은 자신의 당에 65도, 상대 당에 29도를 줬다. 자기 당 온도는 7도, 상대 당 온도는 16도 떨어진 것이다. 클라인은 제도 변화도 중요하지만 탈양극화하려는 개인의 각오도 필요하다고 설파한다. ‘민주당원’ ‘공화당원’ 같은 정체성 외에 ‘공정한 사람’ ‘동물 권리 옹호자’ ‘기독교인’ 같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하고 정치 양극화를 이용하려는 이들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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