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복수가 상처받은 뇌까지 치료할 수는 없어, 동은아”

이진구 기자 2023. 4. 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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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는 끔찍한 학교 폭력을 당한 소녀(문동은)가 성인이 돼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을 그렸다.

동은의 치밀한 계획으로 가해자 중 둘은 숨지고, 한 사람은 평생 말을 못 하게 됐으며, 나머지 둘도 모든 것을 잃고 법의 심판을 받는다.

교사인 저자가 아들이 학교 폭력 당한 것을 계기로 괴롭힘과 폭언, 학대가 피해자의 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리기 위해 일종의 '고발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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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학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실제로 뇌의 발달 구조 무너지기도
가해자에게 공개적으로 책임 묻고, 스스로의 상처 보듬을 수 있어야
◇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제니퍼 프레이저 지음·정지호 옮김/512쪽·2만6000원·심심
저자는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들에게 가해자의 이름을 용기 있게 부르라고 조언한다.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끔찍한 학교 폭력을 당한 문동은(송혜교)이 성인이 돼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을 담은 ‘더 글로리’에서 뜨거운 고데기로 지져져 온몸에 상처가 남은 문동은의 모습.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는 끔찍한 학교 폭력을 당한 소녀(문동은)가 성인이 돼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을 그렸다. 동은의 치밀한 계획으로 가해자 중 둘은 숨지고, 한 사람은 평생 말을 못 하게 됐으며, 나머지 둘도 모든 것을 잃고 법의 심판을 받는다. 이제 동은은 과거의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교사인 저자가 아들이 학교 폭력 당한 것을 계기로 괴롭힘과 폭언, 학대가 피해자의 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리기 위해 일종의 ‘고발서’를 썼다. 어느 날 물도 못 마실 정도로 입안에 염증이 잔뜩 난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간 저자는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염증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오는 물질(코르티솔)의 과다 분비 탓이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아들은 농구팀 코치로부터 수년간 지속적인 폭언에 시달리고 학대를 받고 있었다. 이때부터 공격적인 말, 학대, 괴롭힘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시작한 저자는 코르티솔이 염증뿐만 아니라 뇌 속의 집행 중추를 방해해 뇌의 발달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계산이나 언어 능력을 저하시키고, 단기 및 장기 기억력에도 손상을 준다는 것이다. 특히 폭력과 학대로 인해 생긴 뇌의 상처는 치유가 쉽지 않다. 피부의 상처나 멍처럼 금방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어릴 때 받은 뇌의 상처는 아동기는 물론이고 더 늦은 시기에도 정신질환으로 나타날 수 있다. 피해자가 학대로 인한 충격을 자기 내부로 돌리면 우울증, 불안, 자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증상을 보이고, 바깥으로 돌리면 공격성, 충동성, 약물 남용, 과잉 행동, 태만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어릴 때 나타난 이런 파괴적인 행동을 가정, 학교 또는 사법 시스템에서 질책과 처벌로 다룰 경우 개인의 트라우마를 더 심화시킨다고 지적한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상처받은 뇌는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저자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중 하나가 요즘 학교 폭력 고발처럼 가해자의 이름을 용기 있게 부르라는 것이다. 가해자 이름을 공개적으로 부르면 가해자에게 책임을 지게 할 가능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면 주변에 도움을 구하는 일도 못 하게 되고, 결국 이것이 자신의 뇌를 치료하는 길도 막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사회적으로는 아이들에게 괴롭힘과 학대, 성범죄가 벌어질 경우 누구에게 신고해야 하는지, 어떤 용어를 사용해야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지, 신고받은 어른이 오히려 의심할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 아이들이 대처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자님 말씀이긴 하지만, 가해는 외부에서 비롯됐으나 치유에는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한 신경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해 “구멍이 아무리 크더라도 매일 자신에게 벽돌 몇 장을 건네주자”라고 말한다. 자신의 좋은 점에 집중하기, 타인을 보듬고 인정하기, 때로는 명상과 가벼운 운동도 괜찮다. 꾸준히 하다 보면 결국 어느 날에는 구멍이 모두 메워질 것이고, 끊어졌다고 생각했던 행복의 뇌 신경망도 모두 연결될 것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찬란한 아름다움(Glory)’은 그것이 아닐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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