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간 수술 견디고 난소암 완치… “의사 격려 큰 힘”[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김상훈 기자 2023. 4. 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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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섭 전 서울성모병원 교수, 이성종 교수-난소암 임연숙 씨
아랫배 불편 증세 난소암 3기 진단
복강 내 장기 들어내고 9회 항암… 난소암 환자 80%가 3기 이후 발견
성장 빨라 1년 안에 퍼지기도… 조기 발견 위해 매년 검사받아야
난소암은 치료가 힘든 암으로 여겨지지만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 3기에 암을 발견했지만 완치 판정을 받은 임연숙 씨가 수술을 집도한 박종섭 전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와 완치 판정을 내린 이성종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임 씨, 박 전 교수, 이 교수. 서울성모병원 제공
2021년 12월 임연숙 씨(65)는 난소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기적이 일어났다고 여겼다. 발견 당시 3기였던 데다 난소암이 워낙 치료가 어려운 암이기 때문이다.

임 씨의 수술은 난소암 분야에서 꽤 명성이 높았던 박종섭 전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집도했다. 하지만 박 전 교수는 완치 판정을 내리기 전에 정년퇴직했다. 그는 현재 바이오 기업의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그의 뒤를 이어 제자인 이성종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임 씨의 진료를 맡았다. 완치 판정을 내린 의사가 이 교수다.

임 씨는 두 사람 모두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긴다고 했다. 두 사람을 함께 볼 기회가 없던 차에 마침 연락이 닿아 한자리에 모였다. 임 씨의 난소암 투병기를 들어봤다.

● “암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해”

2016년 12월 무렵. 임 씨는 모처럼 만에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떠났다. 여행은 즐거웠지만 아랫배가 불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벼운 비뇨기계 질환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난소암으로 인한 증세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이런 증세는 20일 동안 지속됐다. 소변을 보고 난 후에도 찜찜함이 남았다. 결국 동네 산부인과를 찾았다. 초음파 검사를 하던 의사의 입에서 “어이쿠”라는 소리가 나왔다. 암인 것 같다고 했다. 큰 병원을 가 보라는 소리에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임 씨는 집에 오자마자 펑펑 울었다. 이후 딸이 침착하게 의료진을 물색했다. 평판과 수술 실적 등 공개된 정보는 다 찾아봤다. 딸은 박 전 교수를 선택했다. 암이 아니길 바라며 진료실에 들어갔다.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이미 복강 전체로 암이 퍼져 있었다.

임 씨는 1년 전 건강 검진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암으로 의심되는 혹은 발견되지 않았다. 1년 만에 난소암이 3기가 될 정도로 악화된 것이다. 박 전 교수는 “난소암은 성장이 빠른 암이다. 1년 만에 암이 퍼질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3개월 만에 훌쩍 자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난소암의 경우 수술 치료가 표준이다. 하지만 환자의 건강 상태가 수술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라면 항암 치료부터 먼저 한다. 다행히 임 씨의 건강 상태는 수술을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판단됐다. 박 전 교수는 곧바로 수술에 들어가기로 했다.

● 11시간 대수술 후 항암 치료

수술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임 씨는 외래 진료를 받고 10일 만에 수술대에 올랐다. 박 전 교수는 “수술을 미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또한 난소암 환자 수술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병원 원칙에 따라 수술을 서둘렀다”고 말했다. 다른 외래 환자 진료를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임 씨 수술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배를 열어 보니 상황은 아주 좋지 않았다. 주변 장기와 혈관에까지 암이 깊이 침투해 있었다. 난소만 제거한다고 해서 끝나는 수술이 아니었다.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암의 뿌리를 뽑으려면 주변의 장기를 모두 들어내야 했다. 그러지 않을 경우 재발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대수술이었다. 난소, 림프절, 방광, 대장을 다 절제했다. 자궁도 절제해야 한다. 하지만 임 씨가 30대 후반에 자궁근종 제거를 위해 자궁을 이미 절제한 상태였기에 추가 조치는 하지 않아도 됐다. 혈관에 침투한 종양도 제거했다.

당시 수술실에는 박 전 교수뿐 아니라 혈관외과, 대장항문외과, 비뇨기과의 교수들이 모두 들어갔다. 한 교수가 수술을 끝내면 다른 교수가 이어 집도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수술 시간만 11시간이 소요됐다.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던 임 씨 남편 안병도 씨는 “수술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잘못되는 건 아닌가 걱정하며 마음을 졸였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보통 난소암의 경우 6회 항암 치료가 표준 치료법이다. 하지만 임 씨는 항암 치료를 추가로 3회 더 받아야 했다. 6회 치료가 끝난 후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했는데 미세하게 종양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항암 치료도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입맛이 뚝 떨어졌다. 너무 아플 때는 남편을 붙들고 다리를 잘라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다행히 네 번째 항암 치료 때부터는 어느 정도 적응을 하면서 잘 버텨냈다. 2017년 7월 말 항암 치료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 “의사 격려가 환자에겐 큰 힘 돼”

암 선고를 받으면 대부분 공포에 휩싸인다. 임 씨와 남편도 그랬다. 두 사람은 서로 붙들고 펑펑 울었다. 그런 부부에게 박 전 교수는 “두 분이 오래오래 살 수 있게 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위로했다. 부부는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수술하고 2년이 지났을 때 박 전 교수는 완치를 확신했다고 한다. 난소암 재발은 대부분 2년 이내에 나타나는데 임 씨는 그럴 만한 조짐이 없었다는 것이다. 임 씨는 “당시 박 전 교수가 ‘내 환자는 재발이 적다’고 말했다. 비로소 내가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물론 암 재발에 대한 걱정은 완치 후인 지금도 남아있다. 6개월 혹은 1년마다 추적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는데 그때마다 잔뜩 긴장이 된다. 완치 판정을 내린 이 교수는 그런 임 씨에게 “재발 위험이 아주 낮으니 건강 관리에만 신경 쓰시라”고 조언했다. 국내외 통계를 보면 난소암의 경우 7년 동안 재발하지 않으면 재발 확률이 뚝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임 씨는 비로소 안심이 된다. 임 씨는 “의사의 자신감만큼 환자에게 힘이 되는 격려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암 완치 이후에도 불편함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손발에 저림 증세가 간혹 나타난다. 항암 치료 부작용이다. 이 교수는 “항암 치료를 하다 보면 말초 신경이 죽을 수가 있다. 이 경우 손과 발이 저리고 살짝 마비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 부작용은 평생 안고 가야 한다. 임 씨는 “그래도 생명을 구한 것에 비하면 이 정도의 부작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족 간의 정은 더 끈끈해졌다. 남편 안 씨는 아내가 투병하는 동안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늘 조심했다.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있기 위해 좋아하던 골프를 6년 동안 완전히 끊었다. 자식들도 늘 엄마의 안색을 살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커졌다. 안 씨는 요즘도 매일 밤 잠자기 전 30분씩 아내의 저린 발을 주물러 준다. 박 전 교수는 “암을 극복한 후 가족 간에 정이 더 깊어지고 삶의 질도 좋아진 사례가 많다”고 했다.

● 정기 검사가 최고 예방법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0년 암에 걸린 국내 여성 환자는 총 11만7334명이다. 유방암(2만4806명)이 21%를 차지하며 1위를 기록했다. 난소암 신규 환자는 2947명으로 채 3%가 되지 않는다. 발병률 순위로만 보면 10위권 밖이다. 하지만 치료가 매우 어려운 암으로 꼽힌다. 난소암 사망률은 8위다.

생존율이 낮은 이유는 암을 늦게 발견하기 때문이다. 다른 암도 비슷하지만 난소암은 초기 증세가 거의 없다. 보통은 복통이나 복부 팽만감, 소화불량, 질 출혈 등의 증세가 있지만 이마저도 암이 꽤 진행된 후 나타날 때가 많다.

사실 난소암을 1기에 발견하면 5년 생존율(완치)은 90%에 이른다. 하지만 난소암 환자 10명 중 8명꼴로 3기 혹은 4기에 암을 발견한다. 임 씨 또한 3기에 병을 발견했다. 다행히 완치됐지만 이 경우 완치율은 30∼40%로 뚝 떨어진다. 따라서 다른 어떤 암보다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6개월 혹은 1년 단위로 검사를 하는 게 좋다. 골반 초음파 혹은 ‘CA125’라는 종양표지자(암을 의심할 수 있는 지표) 검사를 한다. CA125 수치가 mL당 46U 이내라면 정상 범위이지만 과도하게 높게 나타나면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난소암의 원인을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임신과 출산이 난소암 위험도를 낮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저출산이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는 뜻이다. 비만도 난소암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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