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은의 미술과 시선] 인왕제색

기자 2023. 4.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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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종이에 수묵, 79.2×138.2㎝, 175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최근 3일간 전국에서 무려 50여건의 산불이 났다. 식목일을 앞두고 맞은 재난이라 안타까움이 더했다. 까맣게 타들어간 산에 봄비가 뿌려졌지만, 강력했던 화마(火魔)의 상흔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남기고 떠난 뒤였다. 만약 산불이나 가뭄 같은 기후위기 증후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봄비를 맞아 청명해진 산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을까?

1751년 겸재 정선은 소나기를 맞고 갠 인왕산의 절경을 감상하며 이를 그림으로 그렸다. 국보 제216호 <인왕제색도>가 바로 그것이다. 실경의 묘사로 당대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고, 여러 필법을 혼용하며 과감한 대비를 곁들여 조형적으로 완숙함에 이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화제를 모은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공개됐고, 광주에 이어 대구로 순회 전시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많은 관심 속에 있는 작품인데, 그 해석은 어떨까? 정선이 친구의 쾌차를 빌며 그렸다는 설, 당시 주문자의 의뢰에 따라 제작했다는 설, 정선이 자족하여 즐기기 위했던 것이라는 추측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인왕산을 영조에 비유하고, 화면 하단의 두 집을 노론과 소론의 정치 구도에 빗댄 은밀한 암호라는 견해도 최근 제기된 바 있다. 밝은 화강석 암벽을 검게 칠한 이유에 대해서는 빗물에 젖은 상태를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고, 색이 아닌 괴량감을 투영한 동양적 묵법이라는 언급도 있다.

소실된 기록이 많은 우리 고미술은 하나의 이론만을 정설이라 하기 어렵다. 그러나 역사 속 실마리를 찾는 노력 없이 그저 유행을 좇은 감상에 그치는 것이 걸작이 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 미술사에는 어떤 화마의 흔적이 있는가? 지금 우리가 정말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인왕제색도>를 통해 생각해 본다.

오정은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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