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고향에 보내는 편지
올해는 예년보다 벚꽃이 일찍 만개했다. 가야산 초입부터 산사로 들어오는 길가에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은 장관이다. 산사를 찾은 참배객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 찍기에 바쁘고, 나 또한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다. 오래전 고향을 떠나 출가했다고는 하지만 벚꽃이 활짝 필 무렵이면 항상 겹치는 기억들이 있다. 내 고향 제주의 4·3에 얽힌 단상들이다. 벚꽃과 더불어 유채꽃 향기가 바닷바람을 타고 한라산으로 퍼져 올라갈 무렵이면 당시를 살았던 제주 사람들은 또다시 과거의 쓰라린 기억들과 마주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겠지만 제주 4·3이 할퀴고 간 고통과 상처는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이든 그 후손에게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아마 초등학교 1학년쯤 때였을 것이다. 속가 모친의 고향이면서 나의 외가인 북제주군 조천읍 북촌리. 어느 날 밤, 제사 지낸다고 어머니 손을 잡고 집을 나서서 졸린 눈을 비벼 가며 이집 저집을 왔다 갔다 했던 생각이 난다. 이상한 것은 이모님 집에 제사를 지내는 날은 온 마을이 제사였다. 어린 마음에 원래 제사는 그렇게 마을 전체가 같은 날 지내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린 눈에 비친 그날 밤의 광경은 이상하고도 무거웠다. 그날 밤들의 의문은 내내 풀리지 않았고, 어른들의 무거운 침묵에 압도되어 이유를 묻지도 못했던 것 같다. 같은 마을에 대부분 주민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학살당해서 제삿날이 같았던 것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 후였다. 4·3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북촌이라는 평화로운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는 알 것이다. 말 그대로 야만과 광기의 시대 속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 아기들까지 수많은 생명이 영문도 모른 채 동백 꽃잎처럼 쓰려져 갔던 것이다.
4·3은 단순히 일제강점기 이후 벌어진 국내 좌익과 우익의 충돌 사건이 아니라, 세계열강의 권력 질서 재편과정에서 벌어진 우리 민족의 비극이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갈 무렵, 제국주의 일본은 제주도를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로 삼으려 했었고, 동시에 미군의 공격 목표가 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징용되고 학살되었다. 당시 제주 도민 중에서 부모 형제가 되었든, 일가친척이 되었든 4·3 희생자가 없는 집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 고통은 세대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고스란히, 마치 다음 세대의 고통으로 전해지고 또 다른 풀어야 할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제주 사람들은 여간해선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다. 제주인들에게 4·3은 가슴속 화인과도 같아서 겉으로 드러내지도 못하고 안으로만 삼키는 고통과도 같다. 진실 규명과 화해라는 작은 몸짓만으로도 꽁꽁 얼어붙은 마음의 벽을 녹일 수 있을 텐데 오히려 정쟁의 도구로 악용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출가한 후에는 좀처럼 고향을 찾을 일이 없다. 의식적으로 방문을 삼가기도 하지만, 실제로 갈 일도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아주 드문 일이긴 하지만 도반 스님들과 제주도에 순례를 갈 기회가 생기면 필자는 가이드를 자임하면서 비행기가 제주공항에 착륙하자마자 예외없이 일행들과 국화꽃을 사 들고 제일 먼저 ‘제주 4·3평화공원’으로 향한다. 4·3을 모르고서는 제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작은 믿음 때문이다. 도반 스님들에게 제주 4·3을 알리고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반대로는 그곳에 잠들어 계신 수많은 영령에게 스님들의 기도와 염불 소리를 직접 들려주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도반 스님들도 현장에서 제주 4·3의 실상을 눈으로 보고 느끼게 되면 처음과는 생각이 달라지고, 알려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한다.
일찍 고향 바다를 떠나와 깊은 산속에서 살고 있지만,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매일 새벽 오랜 통곡의 세월을 지낸 4·3 희생자들과 그 유족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다. 특히 일가족이 몰살당해서 가족도 없고 친족도 없는 무주고혼(無主孤魂)들의 극락왕생을 빌어본다. 4월3일 새벽예불에는 그 어느 날보다 정성껏 촛불을 밝히고 향을 살라 가야산에서 올리는 기도가 한라산에 가 닿기를 바라면서 엎드려 절을 반복한다. 유난히 올해는 이렇게 저렇게 4·3으로 인해 세상이 시끄럽다. 평화의 섬으로 이름 붙여진 제주가 무색해진 느낌이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 손을 잡고 걷다 보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돌담 사이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기억난다. 지금쯤이면 한라산 가득히 철쭉이나 유채꽃이 지천에 가득 피었겠지만, 내 고향 제주에 봄이 오려면 아직은 멀었나 보다. 내 고향 제주에는 언제쯤 봄이 오려나.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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