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항의는 수용, 조직력 강한 늑대 리더십 배워야

2023. 4. 8.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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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닐 때가 있고, 나쁘다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느 공립학교가 이런저런 이유로 갈수록 부실해지고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사립학교를 세워 경쟁을 시키면 양쪽 모두 좋지 않을까? 얼핏 좋은 방안일 듯하지만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사상가였던 앨버트 허시먼은 아니라고 한다. 의도와는 달리, 공립학교를 완전히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사립학교라는 대안이 없으면,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고 재력도 있는 학부모들은 학교에 이런저런 항의를 하기도 하고 압력도 넣을 것이다. 하지만 대안이 있으면? 다들 사립학교로 떠나버릴 것이니 공립학교는 더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앨버트 허시먼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허시먼은 이 사례를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끄집어낸다. 우리는 보통 항의는 부정적인 것이라 없을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어느 나라나 공기업은 부실해지기 쉬울까? 이들은 국가라는 ‘믿는 구석’이 있어 손실에 둔감하다. 그래서 민간 기업만큼 고객의 불만과 항의에 귀 기울이지 않는데,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더 쉽고 저렴하게 대체해주는 기업이 나타나면 고객들이 쉽게 이탈해버리기 때문이다.

허시먼은 기업이나 조직 혹은 국가가 퇴보의 길로 들어설 때 이를 치유하고 다시 성장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떠나거나, 남아서 항의하거나, 충성하는 것. 이탈이 방법인 건 경고의 의미가 있기 때문인데, 허시먼은 이 중에서 특히 항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생각과는 달리 더 나빠지지 않게 해주는, 알고 보면 잘못을 수정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가 항상 긍정적으로 여기는 충성심엔 ‘두 얼굴’이 있다. 충성심은 진심 어린 항의를 하게 하기도 하지만, 이걸 옥죌 수도 있다. 전자가 충신이라면, 후자는 충성파들이 하는 것인데, 충성파들은 흔히 전자를 억누르는 것도 모자라 이물질인 양 축출하려 할 때가 많다. 다른 의견을 틀린 것, 아니 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힘이 강해질수록 유능한 사람들이 떠나면서,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조직의 법칙’ 하나가 뚜렷해진다. 남아야 할 사람은 떠나고, 떠나야 할 사람은 남는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참고할 만한 자연의 조직이 있다. 정복자 칭기즈칸이 벤치마킹했다는, 최고의 조직력을 자랑하는 늑대 사회다. 이들은 조직력이 강한 무리답게 대장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구성원을 호되게 다루거나 추방하는 식으로 조직력을 유지한다.

그런데 이들이 한겨울 사냥을 나갈 때, 흔히 부딪치는 상황이 있다. 건너야 할 시냇물이 급류이거나 깊어 보일 때인데, 한겨울이라 잘못하면 얼어 죽을 수 있고, 깊은 곳이면 익사할 수도 있다. 그래서 대장 늑대는 냇물을 오르내리며 최적의 지점을 찾아 건너자고 하는데, 보통 군말 없이 지시를 따르던 늑대들이 망설일 때가 있다. 아무리 봐도 대장의 판단이 틀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다. 이럴 때 대장은 어떻게 할까? 우리가 생각하는 늑대 이미지답게 ‘당장 시키는 대로 하라’고 으름장을 놓을까?

경험 많은 대장들은 다르게 한다. 구성원들의 항의를 받아들인다. 그들이 건너자는 곳으로 건넌다. 왜 강력한 리더십에 어울리지 않게 자신의 의견을 접을까? 너그러워서가 아니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대다수가 반대할 경우 그들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래야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사냥에서 전심전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존재감을 인정해 줄 때 협력의 힘이 세진다는 걸 아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인간의 보호를 받는 늑대 무리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장이 강압으로 일관한다. 야생에서는 모두 함께 힘을 합쳐야 먹고 살 수 있고, 그래야 대장 지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먹이가 주어지는 상황에서는 ‘양보’할 필요도 없고, 문제 역시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항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오랜 수렵 채집 생활의 유물이다. 자신의 신념이나 지위에 도전받는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의 뇌를 영상 스캔하면, 맹수와 맞닥트리거나 이들에게 쫓길 때와 같은 패턴이 나타난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 생각과 반대되는 주장을 들으면 생각을 바꾸기보다 기존의 생각을 더 강화하는 경향이 있고, 부정적인 반응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해 예상하는 경향 역시 다분하다. 탁월한 리더들에게서 볼 수 있는, 항의를 잘 수용하는 공통점이 사실은 보통 일이 아니다.

고객의 불만을 귀찮아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개선하는 회사가 성장하듯 내부의 ‘다른 의견’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는 수렵 채집 시대가 아닐뿐더러 리더라고 다 알 수도 없고, 더 나아가 누구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모두가 전심전력해야 바라는 미래를 얻을 수 있는 시대 아닌가. 정당한 항의가 살아있는 조직이야말로 진짜 살아있는 조직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araseo11@naver.com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2005년부터 자연의 생존 전략을 연구하며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를 탐구하고 있다.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등의 책을 냈고,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지식탐정의 호시탐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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