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마다 독특한 형태 장인 손길…완벽하지 않으면 인정할 수 없다

서정민 2023. 4. 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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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첫 선 ‘에르메스 홈 컬렉션 축제’
에르메스 홈 컬렉션의 아티스틱 디렉터 샬롯 마커스 펄맨이 화려한 그래픽과 컬러의 텍스타일 오브제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에르메스 코리아]
지난 3일 서울 양재동에 있는 한 복합문화공간에서 ‘에르메스 홈 컬렉션의 아름다운 축제’ 행사가 열렸다. 에르메스가 기획하고 세계적인 안무가 필립 드쿠플레가 연출한 행사는 이야기가 있는 퍼포먼스를 통해 에르메스 홈 컬렉션의 독창적 가치인 ‘형태, 소재 그리고 기능’의 조화로운 관계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56명의 댄서들은 바퀴가 달린 커다란 나무상자를 밀고 나오는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춤·패션쇼·행위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 형태를 보여줬다.

한국, 전통적이면서 모던한 나라

이날 공연에서 관객(손님)의 시선을 사로잡은 또 다른 주인공은 행사장을 가득 채운 400여 개의 아름다운 홈 컬렉션 오브제들이었다. 소파·의자·테이블 등을 포함한 가구, 조명, 담요·쿠션 등의 텍스타일 제품, 찻잔·접시 등이 포함된 테이블 웨어는 댄서들과 함께 우아하게 움직이며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이는 모두 에르메스 홈 컬렉션의 아티스틱 디렉터 샬롯 마커스 펄맨과 알렉시스 파브리가 기획한 제품들이다. 세계적으로 서울에서 초연된 이번 행사를 위해 방한한 샬롯 마커스 펄맨을 만나 에르메스 홈 컬렉션이 추구하는 장인정신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펄맨은 파리에서 건축학을 공부했고, 필립 스탁에서 디자이너 경력을 쌓았다. 건축가 데이비드 록웰과 합작회사를 설립해 호텔 작업을 했고, 2005년부터는 뉴욕에 자신의 회사 스튜디오 CMP를 설립한 후 세계 곳곳의 공간들을 설계했다. 편집자이자 전시 큐레이터인 알렉시스 파브리와 함께 2014년 에르메스 홈 컬렉션 아티스틱 디렉터로 합류했다.

‘태양’을 주제로 한 찻잔. [사진 에르메스 코리아]
‘태양’을 주제로 한 주전자. [사진 에르메스 코리아]
Q : 독특한 형태의 공연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뭐였나.
A : “판타지다. 정(靜)적이라고 생각했던 실내 오브제들이 평소와 다른 동(動)을 보여준다면 어떤 놀라움과 즐거움이 펼쳐질까. 댄서들이 나무상자들을 밀고 나오는 첫 장면은 마치 이사를 할 때와 비슷하다. 이삿짐 박스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동안 그 안에 든 무엇인지 모를 오브제도 함께 움직인다. 오브제 입장에선 어디에 배치될지 모르는 불안한 순간이지만, 이런 불확실성이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을 안내하기도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들 역시 상자 속에서 자신들이 찾던 오브제를 발견할 때마다 놀랍고 행복한 경험을 하기를 바랐다.”
‘에르메스 홈 컬렉션의 아름다운 축제’ 공연 모습. 400여 개의 홈 오브제와 56명의 댄서가 장관을 펼쳤다. [사진 에르메스 코리아]
Q : 에르메스 홈 컬렉션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
A : “알렉시스와 함께 에르메스에 합류할 당시, 우리 스스로 ‘에르메스는 우리에게 어떤 기대를 갖고 있을까?’ ‘에르메스가 선보이는 가치는 무엇일까?’ 질문을 던져봤다. 향후 우리 작업의 방향성을 잡아야 했으니까. 그런데 ‘에르메스’ 하면 완전무결한 바느질·재단·광택 작업을 거쳐 만들어지는 딱 떨어지는(엄격한) 느낌의 ‘켈리백’도 떠오르지만, 강렬한 그래픽과 다채로운 컬러를 앞세운 ‘실크 스카프’의 자유로움도 떠오른다. 에르메스 총괄 아티스틱 디렉터인 피에르-알렉시 뒤마에게 ‘에르메스는 켈리백입니까 아니면 실크 스카프입니까’ 질문했더니 ‘둘 다입니다’라고 답하더라.(웃음) 결론적으로 깨달은 것은 ‘에르메스의 가치에 부합하는 방식’의 중요성이었다. 가구는 잘 짜인 엄격한 틀 속에서 세월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한다. 반면, 텍스타일 제품들은 보다 풍성하고 다채로운 면 때문에 사랑받는다. 에르메스 홈 컬렉션 오브제는 이 두 가지 사이에 위치해 있다. 또 한 가지 에르메스에서 매우 중요시하는 가치는 시간과의 관계성이다. 우리는 현재에 충실한 동시에 또 현실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기도 한다. 현재의 유행만을 추구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에르메스 홈 컬렉션의 아름다운 축제’ 공연 모습. 400여 개의 홈 오브제와 56명의 댄서가 장관을 펼쳤다. [사진 에르메스 코리아]

Q : 알렉시스와 당신이 에르메스에 합류한 후 가져온 변화는 뭔가.
A :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고.(웃음) 에르메스가 추구해 온 큰 그림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안에 담긴 각각의 오브제들은 저마다 고유한 매력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홈 컬렉션 안에는 텍스타일, 가구, 테이블 웨어 등 다양한 유형의 오브제들이 포함돼 있다. 각각 요구되는 노하우도 다 달라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뤄내는 게 사실 쉽지는 않다. 그럴수록 알렉시스와 내가 더 집중하고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장인의 손길’이다. 예를 들어 에르메스에서 가죽은 완벽해야 한다. 그런데 기계가 아닌 인간이 하는 일이라 불완전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장인의 손길은 불완전함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흔적이다. 2년 전 구리에 에나멜을 입힌 접시 형태의 장식 오브제 ‘센터피스’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 주변에선 우리를 말렸다. 컬러 조합에 따라 가마 온도, 에나멜 칠 횟수가 다 달라져서 매번 제품이 조금씩 다르게 나오기 때문이다. ‘에르메스에서 이렇게 완벽하지 않은 작업은 인정할 수 없다. 그러니 이건 절대 상품화할 수 없다’고들 했다. 하지만 우리가 흥미롭게 생각한 부분이 바로 각각의 오브제 뒤에 숨겨진 장인의 흔적, 즉 사람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에르메스 특유의 탁월한 형태와 장인의 손길이 빚어내는 시너지’를 강조한 이 오브제는 현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개성 반영 오브제들 섞인 공간 좋아

구리 위에 색색의 에나멜을 입혀 만든 접시 모양 오브제. [사진 에르메스 코리아]

Q : 예술적 영감은 어디서 얻나.
A : “매일 사용하는 일상의 오브제들로부터 얻는다. 개인적으로 오래된 도자기·바구니 등의 공예품을 좋아해서 수집하고 있다. 건축가이다보니 건축양식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오래된 서적을 읽으면서 다양한 문화권에 대해 공부하기도 한다.”

Q : 에르메스 오브제 중 작은 상자를 하나 봤는데, 한국의 조각보가 연상되더라.
A : “그 상자는 아니지만, 설치미술을 하는 한국의 이슬기 작가와 협업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수공예 전시에서 그의 작품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함께 자수기법을 활용한 텍스타일을 만들었다. 에르메스가 가진 노하우와는 다른 노하우를 적용해 만든 첫 번째 텍스타일 오브제 중 하나다.”
2021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 때 에르메스 홈 컬렉션으로 꾸민 공간. [사진 에르메스 코리아]

Q :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무엇인가.
A : “안타깝게도 이번이 겨우 두 번째 방문인데 사람들이 매우 젊고 활동적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서울은 시대적인 분위기에 매우 민감하고 트렌디하며 모던하다.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전통문화 면에서 매우 풍부한 유산을 갖고 있다. 전통적이면서 모던한, 이원성이 느껴지는 나라다.”

Q : 디자이너로서 도자기 외 한국의 전통 오브제 중 흥미를 끄는 것이 있다면.
A : “오래된 책을 통해 바구니 제작과정과 농업용품들의 용도에 관해 알게 됐는데 참 멋지더라. ‘이렇게 단순하게 생겼는데 왜 이토록 아름다울까’ 궁금했다. 심미적 목적이 아닌, 오로지 실용성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인데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단순함 속에 숨겨진 미학의 힘이 정말 대단했다. 한국 전통 탈에 관한 책도 갖고 있는데, 각각의 탈에 적용된 그래픽 작업이 매우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Q : 팬데믹 동안 집과 공간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좋은 공간이 갖춰야 할 조건은 뭘까.
A : “나만의 공간에서 편안함을 만끽하려면 자신의 개성을 잘 살린 인테리어가 필요하다. 그래서 에르메스 제품들로만 공간 채우기를 추천하지 않는다.(웃음) 좋아하는 스타일과 잘 맞는 몇몇 에르메스 오브제와 나만의 개성이 뚜렷이 반영된 오브제들이 적절히 섞인 공간이 오히려 더 풍성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곳이 가족과 함께하는 공간이라면 더욱 좋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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