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프리즘] 보건의료의 디지털 대전환
의료는 이런 관계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 분야 중 하나다. 의료 체계는 공급자·가입자(소비자)·보험자의 관계로 구성된다. 그 안에는 환자와 의사 사이에 주고받는 서비스와 재화, 병원과 보험자 사이의 감시와 긴장 그리고 보험이라는 사회연대와 책임 등이 존재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이런 구성요소들의 관계가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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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구체적 실천계획 필요
복지와의 연속성도 포함해야
」
가장 큰 변화의 동력은 소비자다. 이미 소비자들은 의료 체계와 장기요양 체계, 복지 체계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부가 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고 느껴 불만이다. 물론 하나의 플랫폼으로 다른 법체계의 공급자를 연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 발전이 소비자들의 기대를 높여 놨고,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그 길을 앞서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4차 산업혁명 논의의 방향은 아쉬움이 크다. 2017년 관계 부처 합동으로 발표된 ‘4차 산업혁명 대응 계획’에 따르면 의료 분야는 신약·유전자기술·의료기기·로봇 등 의료 기술 개발이 주요 목표다. 2019년 국회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 보고서도 진단기기 개발과 데이터 활용을 목표로 한다. 과제들이 주로 기술 개발에 집중돼 있고, 데이터 활용은 기업으로 의료 데이터를 이전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다. 반면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어떻게 보건의료 시스템을 혁신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목표 설정은 부족하다.
의료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동시에 인공지능(AI), 원격 서비스, 데이터 연계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보건의료 시스템 혁신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3분 진료’의 개선, 수도권 집중 현상의 해소, 비급여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정보 제공, 동일 성분 의약품에 대한 선택권 확대, 의료 서비스와 장기요양 서비스의 연계, 의료 취약 계층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 등 그간의 난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의료기술 개발을 지원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시스템 혁신이 이뤄질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보장 시스템의 혁신은 기술 개발로만 이뤄지기가 어렵다. 기술 개발의 주체인 기업들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법개정까지 해야 하는 시스템 혁신을 주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혁신 과제를 발굴하고 투자하면서 기업에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 대전환(Transformation)’은 고무적이다. 디지털 대전환이란 개념에는 4차 산업혁명이 만들어 내는 가치를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하고 재조직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기술 개발을 넘어 시스템 혁신의 의지가 담겼다. 어떻게 보건의료 시스템의 디지털 대전환을 추진할 것인지 구체적인 정부의 실천 계획이 필요하다.
복지와의 연속성도 포함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4차 산업혁명을 근본적인 시스템 혁신으로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부가 과제의 발굴 단계부터 민·관 협력 체계를 만들어 시도해 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중세 이후 형성된 인간 중심의 규범 사회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다. 영원불변할 것 같은 경계들이 사라지고 있다. 틀을 깨고 경계를 넘어 ‘한국 의료 보장 2050’을 준비할 때다.
권용진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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