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김재원 파문이 남긴 과제

이정민 2023. 4. 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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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칼럼니스트
국민의힘과 전광훈 목사의 ‘밀월’은 황교안 대표(자유한국당) 시절 절정이었다. 황 전 대표는 2019년 대표에 취임하자마자 전 목사가 회장으로 있던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을 방문했다. 이단 시비가 일던 때여서 가까운 의원들조차 만류했지만 강행했다. ‘문재인 하야’ 광화문 집회에도 참석해 연설했다. 패스트트랙 법안과 지소미아 종료에 반대하며 청와대 앞에서 벌인 단식 농성장에서 전 목사와 나란히 담요를 덮어쓰고 앉아있던 황 전 대표의 모습은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다.

무산되긴 했지만, 황 전 대표는 보수 유튜버들에게 ‘입법보조원’ 자격을 줘 국회에 출입할 수 있게 하자는 엉뚱한 제안을 한 적도 있다. 태극기 부대 같은 장외 세력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던 심산이었겠지만 결과는 정치적 몰락을 가져왔다. 민심은 극우세력과 연대, 중도로의 외연 확장을 외면한 ‘황교안의 미래통합당’을 심판하고 현 야당에 180석이란 상상을 초월한 거대의석을 몰아줬다.

「 김재원 “전광훈, 우파 천하 통일”
한 달 새 7%p 떨어진 국힘 지지율
극우에 매달릴수록 중도 달아나
“황교안 체제로 돌아가버렸다”

선데이칼럼
둘의 관계도 파국을 맞았다. 50억원 수수설 등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황 전 대표가 전 목사를 경찰에 고소하면서 법정 다툼으로 번지고 있다. 밀월 관계의 한때를 떠올리게 하는 전 목사의 발언들이 지금도 유튜브에 떠돌아다니는데, 가관이다. “황교안, 착하고 신앙이 깊은데 정치는 답답하다. 공관위원장 발표 하루나 이틀 전에 꼭 저와 상의해달라고 했는데 웃기만 하더라. 통합하려면 광화문(전광훈 목사 세력)과 해야지 우리를 두고 누구랑 한다는 건가.”(2020년 자유통일당 창당대회)

황 전 대표를 손절(損切)한 이들이 다시 국민의힘 주변을 맴돌고 있다. 당 안팎에선 잇단 설화로 파문을 일으킨 김재원 최고위원의 경우를 이와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알려진 대로 최고위원 경선에서 최다 득표를 한 김 최고위원은 지난달, 전 목사 주도 예배에 참석해 “5·18 정신 헌법 수록 반대” 발언을 했고, 앞서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보수단체 주최 강연회에선 “전 목사가 우파 진영을 천하 통일했다”고 열변을 토했다. 영상은 충격적이다. “우리가 김 의원 밀었잖아~” “김기현 장로도 밀었잖아” “우리가 200석 만들어주면 뭐해 줄래”라는 전 목사에게 김 최고위원은 “영웅 칭호를 하고 최고위에 가서 목사님이 원하시는 걸 관철시키도록 하겠다”고 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집권여당의 지도부,그것도 3선 의원을 지낸 중진 정치인의 발언인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4·3 폄훼 논란까지 겹치며 집중포화를 맞자 김 최고위원은 ‘활동 중단’을 선언한 상태다. 그러나 다른 최고위원들의 막말과 실언, 주 69시간 근무제 논란등 악재가 쏟아지면서 불씨는 국민의힘 전역으로 옮겨붙었다. 7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최근 한 달 새 7%p 떨어진 32%였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빠진 민주당(33%)보다도 낮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한 중진 의원은 “3·8 전당대회 때 전 목사를 지지하는 세력이 대거 당원 가입을 해 제한적이긴 하지만 경선 판도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당이 아스팔트 우파의 입김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내년 총선도 장담할 수 없다”고 탄식했는데, 바로 현실이 됐다. 지난 5일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은 텃밭에서도 대패했다. 특히 김기현 대표 지역구에 인접한 ‘울산의 강남’이라는 남구 구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울산교육감 선거에서도 진보 후보가 당선돼 체면을 구겼다. 야당 우세지역이라곤 하나 전주을 국회의원 선거 결과도 충격적이다. 지난해 대선 득표율(15%)의 반토막(8%)에 그치면서 출마 후보 6명 중 5등을 기록한 것이다. 이게 집권 1년(5월 10일)이 채 안 된 여당,새 지도부 선출 한 달째인 집권당의 참담한 성적표다. 뭐가 고장 나도 단단히 고장 난 것이다.

여의도 정가에 “정치는 산수(算數)”란 말이 회자된다. 보수 30% 진보 30% 중도 40%의 유권자 지형 구도에서 누가 중원을 잘 공략하느냐 하는 수(數)싸움에서 선거의 승부가 난다는 얘기다. ‘평시엔 지지층에, 선거가 가까워 오면 중도층에 충성하라’는 건 상식으로 통한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거꾸로다. 0.73%p 차이의 신승으로 집권한 이후 과거로, 극우로 회귀하는 모양새다. 당이 보수에, 극우에 매달릴수록 중도표는 달아난다. “민주당이 무공천한 전주을에서 집권여당 후보가 얻은 8%라는 처참한 결과는 호남 국민의힘이 2020년 황교안 체제 수준으로 돌아가버렸다는 점을 보여준다”(천하람 순천광양곡성구례갑 당협위원장)는 지적 그대로다.

아스팔트 우파에 기대는 정치는 위험하다. 장외 특정 세력의 원심력에 끌려가 우파 팬덤에 포획되는 순간 중도성향 유권자들은 떠나게 될 것이다. 기우일 수 있지만, 중도가 떠난 둥지가 극우파들로 채워진다면 선거엔 치명적 구도가 될 테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이번 대표 경선 때 100% 당원 선거로 룰을 바꾸면서 특정 세력이 경선에 영향력을 미칠 여지가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귀담아들어야 할 얘기다. ‘김재원 파문’이 국민의힘에 새로운 과제를 남겼다.

이정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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