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언론, '정의롭다는 착각'이 초래한 비극

정철운 기자 2023. 4. 8. 00: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7일 '언론과 권력' 세미나 "검찰에게 작업당한 언론"
"정치경제 주도하는 검찰, 언론이 외면해선 안 돼"
'개검''기레기' 멸칭 없애려면 "진실 두고 경쟁해야"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디자인=미디어오늘 이우림.

“검찰 수사와 언론보도를 돌이켜보면 대부분 직권남용죄와 배임죄다. 직권남용죄는 검찰이 정치를 재단할 수 있게 한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의 직권남용 기준이면 선거로 선출될 이유가 없다. 내가 공직을 맡아도 되는지 검찰에 물어보면 된다. 지금 기준이면 선거의 의미가 퇴색된다. 배임죄도, 기업을 운영하면서 혁신을 위해 창의적 투자와 경영이 필요한데 배임으로 묶어 기소한다. 또 한편으로는 업무방해죄가 있다. 파업이 업무를 방해하기 위해 하는 건데 파업하면 (업무방해로) 다 잡아간다. 이런 식으로 검찰이 정치경제를 다 주도하고 있다. 이 현상을 언론이 외면할 순 없다. 외면해선 안 된다.” (이범준 전 경향신문 사법전문기자)

7일 뉴스타파함께센터 리영희홀에서 열린 한국언론정보학회 미디어공공성특별위원회 주최 '언론과 권력' 3차 세미나 주제는 '검찰'과 '언론'이었다. 이날 '정의롭다는 착각 : 검찰과 언론의 관행 분석'이란 제목의 발제를 발표한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등 검찰이 비판받았던 여러 사례들을 언급하며 “검찰을 향한 멸칭은 자업자득이다. 선출된 권력이 아니면서 막강한 힘을 보유한 검찰은 별건 수사, 기우제식 수사, 보복성 표적 수사, 봐주기 수사를 하는 고장난 저울”이라고 비판했다.

김재영 교수는 “종편 재승인 심사로 구속된 분들은 죄를 범해서라기보다, 누구도 찍히면 자유로울 수 없는 정치검찰에 포획된 결과”라며 “언론의 역할은 이러한 검찰 수사에서 작동하는 법과 원칙 이외의 퇴행적 관행을 감시비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언론의 모습은 2020년 채널A 검언유착 의혹에서 볼 수 있듯 감시비판보다 동조에 가깝다. 김 교수는 “검찰과 언론은 독립성합리성공정성 등 핵심 가치가 유사하면서 (핵심 가치의) 근간인 신뢰도가 굉장히 낮다는 공통점도 있다”며 “피의사실공표와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에 있어 검찰과 언론은 한 몸”이라고 지적했다.

이서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조교수는 검찰발 보도 관행을 가리켜 “사법 정보를 독점한 검찰 앞에서 언론은 검찰 관계자라는 익명 취재원과 알려졌다는 식의 무無주체 술어를 남발한다”고 했다. 그 결과 “언론은 검찰관계자에 실명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고 했으며, “발화자는 희미한데, 사회적 파장은 극대화한다”고 했다. 검찰 의도에 맞게 기사가 악용되는 상황을 두고서는 “언론이 검찰에 의해 작업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속도 경쟁, '아니면 말고' 관행, 단독 압박 등이 더해지며 “핵심에서 벗어난 단순 정보들이 단독을 달고 생산된다”는 지적이다.

경향신문에서 20년간 법조를 취재하다 지난해 퇴사하고 서울대 법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범준 사법전문기자(현 뉴스타파 객원기자)는 “검찰과 언론 모두 도덕적 심판자를 자처하고 있다. 검찰은 한 사람의 인생을 부도덕하게 낙인찍는 여러 방법을 갖고 있는데 언론도 마찬가지다. 지향점이 비슷하다는 점이 서로를 가깝게 만든다”고 풀이했다. 익명 취재원 문제에 대해선 “실명 보도를 하면 (취재원이) 피의사실공표죄로 기소될 수 있다. (실명 보도 이후) 기자는 더 이상 취재가 안 될 것”이라며 현실적 한계를 지적한 뒤 “익명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지금은 보도량이 너무 많은 (검찰 중심) 법조 기사 자체를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 ⓒ연합뉴스

이범준 기자는 그래도 현실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낙관했다. “20년 전에는 영장이 기각되면 언론이 판사를 비난했다. 판사가 수사를 방해한다는 사설이 일반적이었다. (언론이) 사법제도를 부정했다. 그러다 무죄가 나왔을 때, 수사를 잘못했구나-단계로 왔고, 지금은 유죄가 나와도 '검찰 수사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단계까지 왔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는 “언론의 힘이 아니라, 여론과 법원의 판결로” 찾아왔다.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에서 검사가 유씨를 보복 기소했다고 공소가 기각됐다. 죄 있다고 다 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2021년 나왔다. (대부분의) 언론은 여기에 기여한 게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서현 제주대 조교수는 “검찰과 언론은 역할이 다르지만, 정당한 목적의 정보수집 등 직업윤리가 굉장히 비슷하다. 동시에 똑같이 '개검'과 '기레기'같은 멸칭으로 불리고 있다”며 “검찰 권력의 싹에 물을 준 것은 언론이다. 검찰에서 어떻게 사건을 덮는지, 정작 취재해야 할 것은 (취재에서) 배제하고 있다”고 우려하며 멸칭을 없애기 위해 “검찰과 언론이 실체적 진실을 두고 경쟁해야 한다. 그 출발은 각자의 적폐 관행을 떨쳐내는 기개와 용기”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장인 김성순 변호사는 “검찰 내에서 검사에 대한 평가는 주로 수사단계에서 이뤄진다. 기소 이후 유무죄 여부가 인사평가에 별로 반영되지 않는다”며 이러한 분위기가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대검찰청 기자단 간사를 맡았던 이범준 기자는 언론계 안팎에서 꾸준히 지적되는 법조기자단 문제와 관련, “기자단 문제는 독점에서 발생한다. 법조엔 기자단이 하나다. 기자단을 복수로 새로 만들어야 폐해가 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우열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판결문 중심 △공판중심 △탐사 중심 법조 기사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사례를 찾기 위해 뉴스타파에 주목했다. 조회수에 의한 광고 수익에 의존하지 않는 뉴스타파는 현재 4만2000여명의 후원회원이 경제적 뒷받침을 하고 있다. 신우열 교수는 “뉴스타파 기자들은 출입처가 없고, 사람보다 문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기획 중심의 취재체계가 있고, 취재의 완결성이 탁월해야 한다는 내부 규범이 있다. 무엇보다 정해진 기사 생산 주기가 없어 완결성 있는 보도가 가능하다”고 했다.

신우열 교수는 “출입처가 있는 기자들은 출입처가 인식 틀이 되지만, 출입처가 없는 기자들은 기사 자체가 인식 틀이 된다”며 결국 '전지적 검찰 시점'에서 벗어난 이슈 중심의 심층 취재 관행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 출입-법원 출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한 명의 기자가 기소 전 단계부터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따라붙는 식이다. 또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기사보다 고생했던 기사에 대해 동료들이 인정하는 분위기, 완결성을 높이기 위한 시민단체와의 협업 방식도 특이점”이라며 “누구나 뉴스를 생산할 수 있는 세상에서 아직 기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다는 걸 보여주는 모델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미디어오늘 바로가기][미디어오늘 페이스북]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