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빈곤…창피함 자극하는 ‘악의적 오지랖’
캐시 오닐 지음
김선영 옮김
흐름출판
“본인이 뚱뚱하다는 걸 몰라요?”
지은이가 밀가루, 설탕, 초콜릿 칩을 식료품점 계산대에 올려놓았을 때 잘 아는 점원으로부터 들은 소리다. 미국 하버드대 박사 자격시험에 통과하자 기쁜 나머지 자축용 쿠키를 한 판 굽기로 하고 재료를 사러갔다 겪은 일이다.
수학 교수를 하다 금융·IT 업계에서 데이터과학자로서 상업·금융·교육 분야 알고리즘을 개발해온 지은이는 문제의 핵심이 체중이나 몸매가 아니라, 이를 핑계로 수치심과 자기 처벌을 강요해온 사회에 있다고 지적한다. 비만보다 수치심을 강요하는 사회적 편견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지적이다. 의지와 자제력이 부족해서 다이어트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오해와 편견이 그 배후에 자리 잡고 있다. 플로리다 주립대 연구팀에 따르면 이런 악순환에 빠지면 살이 더 찌는 경향이 있다.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에 수치심은 각종 이익 추구의 도구로 도도하게 자리 잡고 있다. SNS에 흔한 ‘당신은 비만이다’ ‘운동이 부족하다’는 메시지에선 자신에 대한 불만에서 수치심을 유발하고, 자기혐오를 이용해 지갑을 열게 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선거기간에 상대의 실책을 유난히 강조하고 조롱하며 창피를 주려는 시도가 횡행하는 것도 수치심을 활용한 정치 마케팅이다.
지은이는 이를 ‘수치심 산업 복합체’로 부른다. 디지털 거대 기업이나 집단이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해 대중에게 외모나 조약한 취향, 각종 정치적 실책을 놓고 사람들끼리 서로 헐뜯고 조롱하며 악마화하고 갈등하도록 부추겨왔다고 지적한다. 그 목적은 바로 돈과 권력이다. 수치심과 혐오는 클릭수와 함께 광고효과를 높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디지털 사용자는 자신도 모르게 ‘셰임 머신(수치심 기계)’에 동참하게 된다.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고, 논란을 일으킨 인물의 SNS 팔로우를 끊고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캔슬 행위’도 이에 해당한다. 디지털 이용자라면 누구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수치심은 상업적 이익추구로 이어진다. 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 ‘도전! FAT 제로’(미국 원제 ‘더 비기스트 루저’)는 인생 낙오자로 보이는 과체중 남녀들이 자신의 비만을 수치로 여기면서 필사적으로 체중을 줄이는 과정을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지은이는 이를 ‘불행 포르노’라 부른다.
반면 래퍼인 리조는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면서 ‘뚱뚱하다는 수치심을 버리라’고 권유한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이 ‘(당신을) 존중하기 때문에 아픈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교묘하게 돌려 말하며 다이어트 산업에 위협적인 리조를 조롱했다.
지은이는 건강을 염려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수치심과 혐오를 유도하며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이런 행동을 ‘악의적인 오지랖’이라고 표현한다. 다이어트 산업의 대상 연령층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이유도 같은 배경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비만은 물론 중독·빈곤·외모·인종·젠더·소수자 등 다양한 부문에서 발생하는 혐오와 배제 배경에는 ‘수치심’이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 수치심은 집단이 금기를 어긴 개인에게 낙인을 찍고 다른 사회 구성원에게도 같은 가치를 강요하는 사회적 수단이다. 인류 초기에 수치심이 드는 행위를 한 사람은 공동체에서 소외되거나 배제 당했으며, 심지어 처벌받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다.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유행 시기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시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군중 사이에서 기침을 하면 창피를 주면서 사회적인 제약을 가했다. 이런 규제와 제약은 공공을 위한 행동으로 인식됐다.
문제는 수치심이 사회적 순응을 강제한다는 점이다. 순응은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해 고분고분한 행동과 줏대 없는 태도를 하도록 강요한 결과인데, 집단의 관습에 결함이 있거나 부당하면 모순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19세기 미국 작가 호손의 『주홍글씨』는 ‘간통’을 뜻하는 ‘A’자를 가슴에 달고 다니도록 강요당한 여성을 다룬다. 이런 집단처벌은 사회규범의 강요를 넘어 사실상 성 약탈자의 지위와 명예를 지켜주는 도구가 됐다. 호손은 이 소설을 통해 부당한 관습으로 수치심 유발을 강요하는 부당한 사회적 규범을 고발했다. 지은이는 호손의 정신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는 흑인 인권운동과 ‘미투’ 등 현재의 사회운동에도 이어지는 것으로 본다. 원제 The Shame Machine.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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