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사색] 사랑의 때
사랑의 때
김억
첫째.
어제는 자취도 없이 흘러갔습니다,
내일도 그저 왔다가 그저 갈 것입니다,
그러고, 다른 날도 그 모양으로 가겠지요,
그러면, 내 사람아, 오늘만을 생각할까요.
즐거운 때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고운 웃음도 잠깐 동안의 꽃이지요.
때는 한동안 기쁨의 꽃을 피웠다가는
두르는 동안에 그 꽃을 가지고 갑니다,
곱고도 서러운 때의 힘을 어찌합니까,
그러면, 내 사람아, 오늘만을 생각할까요.
즐거운 때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고운 웃음도 잠깐 동안의 꽃이지요.
둘째.
물은 밤낮으로 흘러내리고
산은 각각(刻刻)으로 무너집니다,
세상의 곱다는 온갖 것들은
나날이 달라지며 스러집니다.
그러면, 내 사람아, 우리는
사랑과 함께 춤을 출까요.
아름다운 이 세상의 사랑에
몹쓸 때가 설움의 종자를 뿌립니다,
이 종자의 움을 따서 노래 부르면
도리어 사랑을 모르던 옛날이 그립습니다.
그러면, 내 사람아, 우리는
사랑도 그만두고 말까요.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봄비는 늘 옳습니다. 반갑고 고맙습니다. 며칠 전 내린 비도 그렇습니다. 마른 땅을 적시고 탁한 공기를 씻어내고 사람의 힘으로 잡지 못한 불길들도 모두 잠재웠습니다. 봄비 탓에 동네의 벚꽃들이 조금 이르게 졌지만 괜찮습니다. 꽃이 진 자리에는 곧 푸른 잎들이 돋아날 것입니다. 계절과 날씨처럼 우리도 늘 변하고 흐르는 것입니다. 어느 한순간도 붙잡아두지 못해 아쉽고 애달프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스럽습니다. 아쉬움과 애달픔마저도 다시 어제의 일이 될 테니까요. 그러니 중요한 것은 정확히 100년 전의 이 문장처럼 “즐거운 때를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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