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오리’의 한국정치 격동 목격한 외교관
김정기 지음
한울
좋은 약은 입에 쓰다.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인 이 평전의 저자에 따르면, 그레고리 헨더슨(1922~1988)의 한국정치 분석과 비판도 그렇다. 헨더슨은 외교관으로서 26세에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광복 후 격동의 한반도에서 7년(1948~1950, 1958~1963)을 주한 미국대사관의 국회 연락관 및 정치 보좌관 등으로 일했다.
한국정치를 가까이 지켜본 해더슨은 1968년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원제 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를 펴냈다. 그는 단일민족 및 공통 언어 등 한국 사회가 지닌 고도의 동질성 때문에, 다원주의 및 각기 다른 입장을 대표하는 이익집단 및 정당의 자연 발생이 어려워졌다고 봤다. 이를 ‘원자화된 사회’라고 칭했는데, 문제는 각각의 원자들이 중앙권력의 정상을 향해 치달으며 파괴적 회오리(vortex)를 일으킨다는 것. 이를 막기 위해선 정치적 중간지대를 만들고, 지방 분권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극단의 정치, 대도시 집중의 2023년 역시 한국정치는 회오리 안에 갇혀 있지 않은가. 저자는 ‘회오리 이론’에 대한 국내 학계 비판을 소개하면서도, 헨더슨의 쓴 약을 삼켜야 할 때라고 역설한다.
헨더슨은 행동가의 면모도 보였는데, 이승만 대통령 집권 직후 벌어진 일명 ‘국회 프락치 사건’에 반발해 관련 기록을 온전히 남겨 놓거나,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미국의 대응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저자는 다년간의 자료 수집과 취재를 바탕으로 ‘한국 현대사의 증인’으로서 헨더슨의 삶을 전하려 한다. 헨더슨이 한국 문화재를 비도덕적인 방식으로 손에 넣고 밀반출했다는 식의 비판과 관련해서는 이런 생전 육성을 전한다. “한국에 근무하며 받은 연봉 5000달러~1만 3000달러를 쪼개서 아주 공개적, 그리고 합법적으로 사 모은 것입니다. 한 점도 선물을 받은 적 없으며 법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헨더슨은 한국을 떠나기 전 당시 중앙박물관 관장에게 자신의 컬렉션을 보여주고 필요한 것을 사가라고 했다는 주장도 남겼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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