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넘은 건축·클럽 보고 원조 ‘경양식 돈가스’ 먹고…개화기로 시간여행 가볼까

서정민 2023. 4. 8.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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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먹거리 많은 인천 여행
1901년 인천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처음 문을 연 클럽 ‘제물포 구락부’. 드라마 ‘도깨비’와 ‘피아노’의 배경장소로 등장할 만큼 사진 명소다. 집 바로 앞에서 바다와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점도 매력이다. 김상선 기자
때이른 개화와 이틀 간의 비소식으로 전국은 이미 ‘벚꽃엔딩’이다. 4월 어느 봄날의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이미 시들해진 꽃구경 대신 돈가스·중식 먹방 여행을 제안한다. 조선 근대 개항기부터 한국전쟁까지, 시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인천 개항장 거리와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는 50년 이상 관록을 자랑하는 경양식 돈가스집과 중식당, 그리고 인증샷 명소들이 있다.

인천, 서양의 근대 문물 관문 역할

일본식 건축물을 재현한 개항장 거리. 김상선 기자
1883년 개항 이후 서양의 근대문물을 받아들이는 관문이었던 인천 제물포 개항장 일대에는 100여년 전 지어진 건축물이 여럿 남아 있다. 인천 중구청 앞을 중심으로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산재한 일본·청나라 조계지의 유산이다.

중구청이 2006년부터 운영해 온 도보 관광코스 ‘인천 개항 누리길’은 소요시간 기준 3개의 코스로 잘 나뉘어 있다. 1시간짜리 코스는 인천역을 출발해 차이나타운 거리와 짜장면박물관, 해안성당 앞, 대불호텔 전시관, 인천개항박물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아트플랫폼으로 이어진다. 2시간 코스는 한중문화관, 화교역사관, 대불호텔 전시관, 인천개항박물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중구청, 청일조계 경계계단, 삼국지벽화거리, 짜장면박물관, 인천역을 잇는다. 3시간 코스는 한중문화관, 화교역사관, 청일조계 경계계단, 대불호텔 전시관, 인천개항박물관, 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 중구청, 인천광역시역사자료관, 제물포구락부,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동상, 삼국지벽화거리, 짜장면박물관, 차이나타운의 의선당, 동화마을을 차례로 둘러볼 수 있게 구성됐다.

■ 신일반점

신일반점
1952년 창업한 곳으로 산둥식 백짬뽕인 ‘초마면’을 맛볼 수 있다. 지금의 빨갛고 매운 짬뽕은 196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됐다니 백짬뽕의 원조를 맛보고 싶다면 시간을 내어 들러볼 만하다. ‘부먹’으로 나오지만 바삭바삭한 탕수육도 이집의 별미다.


특히 금색과 붉은색, 흘려 쓴 한자가 화려하게 섞인 차이나타운과 1901년 인천에 거주하는 외국인 사교모임 장소로 처음 문을 연 클럽이자 드라마 ‘도깨비’ ‘피아노’ 촬영장소로 유명한 제물포 구락부는 시간을 넘나드는 사진 스폿으로 인기가 많다.

중구청에서 신포시장을 지나 20분쯤 걸어가면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 도착한다. 한국전쟁 이후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학생·지성인들이 저렴한 가격에 책을 사기 위해 몰려들면서 하나둘 늘어난 헌책방은 1980년대에 40~50개가 밀집할 만큼 성행했다고 한다. 지금도 버스정류장 이름이나 지도 앱에는 ‘배다리 헌책방 거리’라고 쓰여 있지만, 현재는 노란 벽이 칠해진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 ‘한미서점’, 1951년 문을 연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집현전’ 등 5개 서점만 거리의 명맥을 잇고 있다. 창립자인 오태운 선생과 한봉인 여사로부터 3년 전 ‘집현전’을 인수한 이상봉 대표는 “그래도 다섯 서점이 서로 의지하며 서점 이상의 대안공간으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집현전의 경우 2층은 레지던스룸, 3층은 전시·공유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거리 반대쪽에는 성냥박물관도 있다.

한국 스타일의 경양식 돈가스
인천에는 오래된 ‘경양식 돈가스’ 집이 여럿 있다. 개화기에 서양식 풀코스 요리를 간략화한 경양식집이 가장 먼저 생긴 곳이 인천이고, 이곳의 대표요리가 돈가스였기 때문이다. 인천의 4대 경양식집으로 유명한 ‘등대경양식(1968년 개업)’ ‘잉글랜드 왕 돈까스(1981년 개업)’ ‘씨싸이드 경양식(1989년 개업)’ ‘송도 국제 경양식(1972년 개업)’은 모두 40~50년의 공력을 자랑하는 노포들이고, 특히 돈가스로 유명하다.

고기를 튀겨 먹는 유럽의 커틀릿을 흉내 낸 일본의 ‘경양식 돈가스’는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여러 면에서 달라진다. 일본식 돈가스는 젓가락으로 집어 먹을 수 있도록 고기 두께가 두툼하고, 또 미리 칼로 썰어서 제공한다. 반면 한국식 돈가스는 고기 두께가 얇은 대신 크기가 크고 양손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한다. 소스를 먹는 방법도 확연히 다르다. 한국식 돈가스는 ‘부먹(고기 위에 소스를 미리 부어서 내온다)’인 반면, 일식 돈가스는 ‘찍먹(작은 종지에 소스를 따로 담아 찍어 먹는 스타일)’이다.




■ 잉글랜드 왕 돈까스

잉글랜드 왕 돈까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정봉이네 가족의 외식 장면 촬영 장소이자, ‘백종원의 3대천왕’ 돈가스편에서 1위를 한 맛집이다. 상호명은 잉글랜드지만 인조 벚꽃나무, 유럽식 분수, 이집트 벽화, 미국식 DJ 박스 등으로 꾸며진 실내가 꽤 흥미롭다.


50개 모여있던 헌책방, 5곳만 명맥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집현전’. 3층 다락방은 전시·공간으로 운영된다. 김상선 기자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한국 스타일의 경양식 돈가스는 식당 직원의 이 한마디로 오리지널리티가 결정된다. “빵으로 하시겠습니까? 밥으로 하시겠습니까?”

빵을 고르면 동그란 모닝빵과 딸기잼이, 밥을 고르면 작은 공기를 거꾸로 엎어 담은 밥 한 덩어리가 제공됐다. 가벼운 일품 서양메뉴라고는 하지만 스프와 케첩·마요네즈 혼합 소스를 얹은 양배추 샐러드, 후식 커피도 함께 나왔다.

스테이크가 흔치 않았던 80~90년대에 ‘양손으로 썰어먹는’ 돈가스는 서양식 고급음식이었으니 양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쥐고 식사하는 기분은 꽤 으쓱했다. 물론 데이트 같은 특별한 자리에서 양식 식사예법을 지키기 위해 진땀 뺐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스프는 숟가락을 안에서 밖으로 움직여서 떠 먹어야 한다, 고기는 조금씩 잘라 먹어야지 한 번에 다 잘라 먹으면 안 된다 등등. 그럼에도 식탁 위에 느끼함을 달래기 위한 단무지와 깍두기(김치)가 함께 놓여 있었던 것이 바로 그 시절 ‘경양식 돈가스’가 있던 풍경이다. 인천에 가면 바로 그 때의 추억을 현실로 재현할 수 있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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