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빠져든 건 드뷔시만이 아니었네
류이치 사카모토 지음
양윤옥 옮김
청미래
“나는 학교나 사회의 제도를 해체하겠다는 운동에 몸을 던졌지만, 동시대 작곡가들도 기존의 음악 제도나 구조를 극단적인 형태로 해체하려 하고 있었다. ‘서양음악은 이미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 ‘우리는 종래의 음악으로 막혀버린 귀를 이제 해방해야 한다.’ 나는 그런 생각들을 했다. 말 그대로 해체의 시대였다.”
일본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 1952~2023, ‘류이치 사카모토’는 서양식 표기)가 이 책에서 1960년대말을 회고한 대목이다. 10대 후반이던 그는 바흐와 드뷔시 등 고전음악은 물론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 존 케이지와 백남준 등 새롭고 전위적인 동시대 음악과 예술에도 이미 흠뻑 빠졌던 터였다.
게다가 당시는 일본의 학생운동이 치열했던 시기. 고교생이던 그는 시위나 수업거부에 적극 참여했는데, ‘바리케이드로 봉쇄된 학교에서 헬멧을 쓰고 드뷔시를 연주했다’는 소문도 떠돌았다고 한다. 그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혹시 그런 짓을 했다면 분명 인기 좀 끌어보려고 한 행동이었을 것”이라고 했지만 말이다.
70년대말 3인조 밴드 YMO(옐로 매직 오케스트라)를 결성해 유명세를 처음 얻은 무렵의 감상도 남다르다. 특히 해외투어의 반응에서 그는 기쁨만 아니라 “위화감”이나 “묘한 답답함”을 느꼈노라 돌이킨다.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해가 되는 음악’이란 어떤 시장에서나 받아 들여질 수 있는 상품이라는 뜻이다(...)그 무렵 자동차나 텔레비전 같은 상품에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당시 서구에서는 일본산 자동차와 TV 다음은 소프트웨어라는 식으로, 이른바 ‘일본 문화 대망론’ 같은 게 존재했는데, 이에 맞춘 역할을 하는 듯한 게 무척 싫었다는 토로가 이어진다. 그는 당시 음악이나 YMO에 대해서는 사명감을 느껴도, 일본이란 국가에 대해서는 사명감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했다고도 들려준다.
역설적으로 이후 그의 이력은 일본 문화에 대한 당시 서구의 관심을 상기시킨다. 배우로 캐스팅 돼 음악까지 자처해 맡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로 칸영화제에 초청됐고, 현지에서 만난 베르톨루치 감독과의 인연이 ‘마지막 황제’(1987)로 이어진다. 그가 연기한 일본인 캐릭터가 할복자살하는 설정을 바꾼 일이며, 촬영을 마치고 한참 뒤에야 일주일만에 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음악을 맡은 일 등 흥미로운 일화도 여럿 나온다.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그는 해외 작업이 많아지면서 1990년대초 미국 뉴욕으로 이주한다. 9·11 테러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을 목격한 경험과 함께 그는 서구의 패권주의·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이 책에 드러낸다. 자신을 드뷔시의 환생이라고 여길 정도로 그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드뷔시의 인류 역사상 가장 세련된 형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 음악에도 프랑스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주의 범죄성이 깃들여 있다”고 적었다.
한국판은 한 차례 절판됐다 이번에 새로 나왔다. 공교롭게도 그 사이 저자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원제 音楽は自由にする.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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