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모두에게 가혹한 중대재해법
지난 6일 중대재해처벌법 첫 1심 선고는 산업 현장에서 하청 업체 근로자의 사망 사고 책임을 원청 회사 대표에게 물어 형사처벌했다는 점에서 적잖은 파장을 불렀다. 향후 다른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첫 법원 판단에서 ‘하청 근로자의 산업재해에 대해 원청 대표이사까지 처벌한다’는 메시지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눈길을 끈 것은 유죄를 선고한 김동원 판사가 판결문에 남긴 “가혹하다”는 표현이었다. 김 판사는 “산업재해와 관련해 사업주 등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상당한 수준의 합의가 이뤄졌다”고 중대재해법 도입 취지에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사고 책임을 모두 피고인들(원청 대표 등)에게만 돌리는 것은 가혹하다”고 했다.
원청 대표를 향한 판사 개인의 ‘온정주의’가 아니었다. 도입 1년 3개월째를 맞는 중대재해법이 처한 현실이었고, 이에 대한 판사의 고심이 담긴 표현이었다. 그는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상황을 ‘가혹하다’고 했다.
중대재해법은 사망 재해에 대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 형벌을 정했다. 중대재해 첫 유죄 선고를 받은 중소기업 원청과 그 하청 회사 관계자들은 수사와 재판에서 안전 난간 등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책임을 인정하고 합의도 구했다. 법원도 이를 참작했지만 징역형 집행유예를 피할 수 없었다.
경영계·노동계·학계 어디든 중대재해 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법 취지에 동의하지 않는 곳은 없다. 다만, 안전 대책을 마련해도 산업 현장의 여러 변수는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기업인들은 “사고를 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답답함을 호소한다.
이번 첫 1심 유죄는 산업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는 첫 판결이 나왔지만 노동계의 “솜방망이 판결”, 경영계의 “경영 리스크 심화”라는 반응처럼, 법 효과는 여전히 모호하다. 이 법이 예방법인지, 처벌법인지 과연 법 도입 효과가 있는지 모두 의문만 제기한다.
거꾸로 현장 노하우가 쌓인 안전 관리자들이 현장을 떠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사고가 나면 누가 처벌받느냐’는 부담이 작용한 결과다. 중대재해 사건에서 피의자 또는 참고인 조사는 한 사건당 평균 18회 정도라고 한다. 그럼에도 법의 모호한 부분이 많아 고용노동부, 검찰 판단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다.
“판례가 쌓이면, 사례가 쌓이면” 식으로 시간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내년부터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도 법 적용 대상이다. 영세 사업장까지 포함돼 원청, 하청 관계가 더 복잡해지면 책임 판단도 더 어려워진다.
결국, 작년 1월 중대재해법 도입 이후 주요 공사 현장들이 모두 ‘1호가 될 수 없어’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멈췄던 일이 재현될 수 있다. 당시 경영진은 신규 투자 계획을 망설였고, 근로자들의 일터는 개점휴업이 됐다. 마찬가지로 5인 이상 사업장이 눈치 보기 식으로 활동을 멈춘다면? 참으로 모두에게 가혹한 중대재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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