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역린(逆鱗)

강천석 고문 2023. 4. 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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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집토끼’ ‘산토끼’ 허망한 말싸움으로 시간 낭비 말라
대통령, 승리가 절실하면 당장 변화 始動 걸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김형두 헌법재판관 임명장 수여식에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한 달 후 취임 1년을 맞는다. 내년 이맘때는 22대 총선이 있다.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민주당 5선 의원은 내년 총선 의미와 관련해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지면,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고 차기 정권을 야당에 뺏기고 그러면 대통령과 부인은 아마 감옥에 갈 것”이라고 했다. 신용 없는 정치인 발언이니 크게 마음에 담을 일은 아니지만 귓전에 그냥 흘릴 말도 아니다. 민주당 바닥 공기를 반영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문제 발언 당일 저녁 재·보선 결과가 발표됐다. 대통령과 국민의힘엔 불만족스러운 성적표였다. 대통령실도 여당도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인 모양이다. 하긴 대통령과 여당에 관련된 여러 여론 지표가 하향세(下向勢)였다. 심지어 이재명당(黨)에 역전을 허용할 정도였다. 이름을 감추고 내년 총선을 염려하는 소리가 있었으나 책임감이 실린 발언은 아니었다. ‘질 줄 알았던 데서 졌고, 이긴 곳도 있다’는 것이다.

그다음 날 국민의힘은 원내대표를 새로 뽑았다. 수도권 출신과 영남 출신이 경합을 벌였다. 현 당대표는 울산 출신이다. 2020년 총선에서 수도권 121개 지역구 가운데 국민의힘은 16석, 민주당은 103석을 차지했다. 수도권에는 원내대표로 내세울 인물조차 마땅치 않다. 한 후보는 ‘영남 당대표-수도권 원내대표 조합(組合)으로 총선 승리를 이끌겠다’고 했다. 다른 후보는 ‘유권자는 대통령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공천은 잘됐는지 보고 투표하지 원내대표가 어디 출신인지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이날 갤럽 여론조사에서 다음 총선의 여당 승리 예상 36%, 야당 승리 예상 50%였다.

정당은 외부 온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자기 본래의 내부 체온을 그대로 유지한다. 이것이 정당의 정체성(正體性)이다. 그런가하면 외부 온도 변화에 맞춰 자기 체온을 때로 높이고 때로 낮추기도 한다. 정당의 변화 대응 능력이다. 승리가 절실한 정당, 자신감 있는 정당은 ‘집토끼냐 산토끼냐’ 하는 논쟁으로 아까운 시간을 까먹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이도 저도 아닌 정당 같다.

윤 대통령은 해야 할 일이 많다.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그러나 손이 묶여 있다. 입법권을 장악한 거대 야당은 헌법, 국가 재정, 세계 흐름, 과학적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위조지폐 찍듯 법을 찍어낸다. 일본과 관계를 정상화한 것은 잘한 일이다. 당장은 평가가 박(薄)해도 머지않아 후(厚)히 쳐줄 날이 올 것이다. 수십조 원 투자한 반도체 공장이 진입 도로를 뚫지 못해 여러 해를 허송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도 줄었다. 그런데도 국민 평가는 왜 이렇게 야박한가.

원내 안정 의석 확보가 대통령만큼 절실한 사람은 없다. 총선까지 남은 1년은 훌쩍 지나간다. 국정 운영은 자동차 운전과 다르다. 갑자기 핸들을 돌리고 기어를 바꿔 넣는다고 가속(加速)과 감속(減速), 방향 전환이 즉각 이뤄지지 않는다. 바꾸려면 당장 바꿔야 한다. ‘나도 다 계획이 있다’고 생각하다가는 때를 놓친다.

국민에겐 대통령 부근에서 대통령이 가장 많이 아는 것처럼 비친다. 국민은 어느 한 분야에선 대통령보다 키 큰 나무들이 대통령을 둘러싸야 안심한다. 키 작은 나무는 바람도 막아주지 못한다. “참모와 원로들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단안(斷案)을 내렸다”는 식(式)의 발표는 모든 화살이 대통령에게 날아오게 만든다.

대통령이 신경 쓰던 여당 안 내부 총질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반대로 누군가 목소리를 내면 그들은 확성기일 뿐 목소리 주인공은 대통령이라고 한다. 당의 자신감을 갉아먹고 집권당을 초라하게 만든다. 야당보다 더, 또는 야당만큼 시끄러운 정당으로 가야 당(黨)이 살아난다.

인사(人事) 추천과 검증 각 단계에 검찰 색(色)이 너무 짙다고 하면 지는 척하면서 일부를 갈아 끼울 필요가 있다. ‘다 내 수하(手下)였는데 다른 마음을 가질 리 없다’며 굳이 우길 이유가 없다. 대통령실 70년 역사는 자리가 사람을 바꾸더라는 말을 증명한다.

모든 대통령 턱 밑 어딘가에는 비늘이 거꾸로 난 곳이 있었다. 왕조 시대에는 이걸 역린(逆鱗)이라 불렀고, 건드리면 자리나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 비서들도, 정보기관 보고도, 믿고 의지해 온 평생 선배 원로들도 언급을 피하는 것, 그것이 역린이다. 세상은 수군거리는데, 대통령 귀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국회를 재촉해 대통령실 특별 감찰관을 즉각 추천하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이 자신에게 서릿발처럼 대하면 그날부터 나라가 달라진다. 국민이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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