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행복·열정을 캔버스 위 입체로’…서혜령 개인전 ‘숨.길.’ 23일까지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가 남긴 “지치지 않는 열정, 따뜻한 가슴, 남에게 상처주지 않는 손길을 가져라.”를 모토 삼아 작업을 이어오는 이가 있다. 엄마이자 주부였던 서혜령 작가(47)는 어느덧 자신의 내면을 꺼내들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매 순간 창조하고 있다.
서 작가의 개인전 ‘숨.길.’이 예술공간 아름에서 지난 5일 개막했다. 서 작가는 원래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미술과 전혀 관련 없는 직종에서 일하다가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치열한 육아가 주는 스트레스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삶의 무게는 점점 그의 숨통을 조여왔다. 어느 날 집의 한구석 벽이 허전해보여 그림을 채워넣는 게 어떠냐는 남편의 제안에 서 작가는 붓을 들었다. 마침 언니가 건네준 화구를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었던 그는 흰 캔버스에 형형색색 물감을 입히기 시작했다. 서 작가는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내가 마음대로 뭔가를 펼쳐낼 수 있다’는 행복과 확신에 사로잡혔다. 그 길로 그는 2020년 여름부터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초창기 그의 작품엔 ‘입술’이 주요 모티브로 등장한다. 감정이 말로 발화될 때 꼭 입술을 거친다는 점에서, 서 작가에게 입술은 곧 마음과 같다. 스스로를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소개한 그에게 입술은 내면의 감정을 세계와 소통하도록 만드는 매개체가 된다. 초기작들에선 물결, 산등성이 등 자연 요소가 입술처럼 표현돼 있는데, 초현실주의 작품들을 슬며시 연상시키는 화풍이 계속해서 변주를 거듭한다.
그러던 그의 작품은 어느 시점부터 감정을 풀어내는 데 있어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진다. 아크릴 물감을 굳힌 뒤 캔버스에 붙히기 시작하면서 캔버스 위 입체성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서 작가는 “정말 별 거 아닌 단순한 계기였다. 그림에 말라있던 물감이 뜯어진 걸 보고 그때부터 흥미를 느껴 물감을 말려서 이리저리 연구해보기 시작했을 뿐”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다양한 색상의 아크릴 물감을 한 겹 한 겹 쌓아가며 굳힌 조각을 쪼개서 펼쳐 놓은 우주인 ‘Space Rabbits’를 보고 있으면, 캔버스를 수놓는 오브제가 물감 조각인지 철판인지 헷갈릴 수 있다. 재료의 물성에 관한 각자의 생각을 불러오는 서 작가의 우주 속을 유영하는 경험을 통해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내면을 표출하는 작가의 상상력을 느끼게 된다.
이어지는 작품들 역시 눈길을 끈다. ‘숲’은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는 티코스터나 공예품을 늘어놓은 듯 추상적인 원형 요소들이 가득해 보이지만, 캔버스의 옆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비로소 진면목이 드러난다. 서 작가는 “캔버스에서 솟아오른 물감 조각은 잘려나간 나무의 밑동을 형상화했다. 인간이 자연을 망가뜨린 데 대한 죄책감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물감 조각을 구부려서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장면으로 그려낸 ‘희망의 물결’이나 형형색색의 물감 조각을 촘촘히 캔버스에 배치한 ‘해빙(물, 하늘, 땅, 숨)’ 역시 캔버스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게 유도해 감상의 폭을 넓혀주는 작품이다.
서 작가는 “오히려 미술의 길을 걷지 않다가 뒤늦게 뛰어들었기 때문에 이런 작업들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간 살아오면서 여러 사람도 만나고, 배신도 당해봤고 상처도 얻었고, 듬뿍 사랑도 받아봤으니 그걸 한데 모아 풀어내려고 한다”며 “복합적인 감정을 내 그림으로 마음껏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23일까지 이어진다.
송상호 기자 ss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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