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당하지 말고 진짜 여행을 하라[책과 삶]

최민지 기자 2023. 4. 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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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운명의 집
스테판 츠바이크 지음·이미선 옮김
민음사 | 208쪽 | 1만8000원

위대한 작가의 여행기를 읽는 것은 즐겁다. ‘나도 가본 그곳에서 위대한 지성은 무엇을 보았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되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느꼈으나 나의 언어로 구체화하지 못한 흐릿한 어떤 것을 작가가 정확하게 짚어줄 땐 기쁨이 배가 된다. 오래전 여행한 그곳을 작가와 다시 찾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수많은 운명의 집>은 이런 즐거움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유럽의 지성’으로도 불린 스테판 츠바이크(1881~1942)의 여행기를 엮은 책이다. 1902년 이탈리아 베네치아부터 1946년 오스트리아 빈까지 40여년에 걸쳐 그가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담겼다.

츠바이크는 여행을 사랑했다. 1900년 아버지 선물로 처음 프랑스 여행을 한 뒤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유럽은 물론이고 북미와 남미, 인도 등 아시아 지역까지 여행했다. 그는 23세 때 헤르만 헤세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저는 어디든 가고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즐기려 하는 불안을 가지고 있으며, 제가 이것들-제가 가장 좋아하는 재산-을 언젠가 피로와 게으름 속에서 잊어버릴까 봐 나이 드는 일이 제일 두렵습니다.” 여행은 그에게 삶이었다.

휴가지에서 읽을 법한 책은 아니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목적의 글도 아니다. 격동의 시기를 지나는 여러 대륙과 도시를 당대의 작가는 섬세하게 관찰하고 통찰한다. ‘강경자유여행론자’의 면모를 드러낸 대목에서는 웃음이 난다. 여행의 상품화가 시작되던 시기, 주어진 대로 먹고 안내받은 대로 이동하는 미국·영국인 단체관광객들을 두고 츠바이크는 ‘여행하기’가 아니라 ‘여행당하기’라고 표현한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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