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캅' 마크롱이 '중국의 역할' 요구했지만...시진핑은 말려들지 않았다

EU 수장 공세 펼 때... 실리 챙긴 마크롱
5~7일 동반 중국 방문 일정 마무리

에마뉘엘 마크롱(왼쪽부터) 프랑스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6일 중국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7일(현지시간) 2박 3일의 중국 동반 방문 일정을 마쳤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와 밀착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게 이전 중국 방문의 주요 목적이었다.

마크롱 대통령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역할 분담을 확실히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평화를 위해 협력하자"고 달랬고 폰데어라이언 위원장은 "러시아를 군사적·경제적으로 돕는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굿 캅, 배드 캅(좋은 경찰, 나쁜 경찰)' 전략을 구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시 주석은 자신이 '받은 대로' 돌려줬다. 마크롱 대통령에게는 광둥성 광저우에서 만찬을 대접하는 등 극진히 대우했지만,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에게는 별다른 우호적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시 주석이 "러시아와 거리를 두거나 전쟁을 말려 달라"는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6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유럽대표부의 기자회견장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러시아 지원 말라" 면전에 견제구 날린 EU 수장

유럽 유로뉴스와 미국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6일 베이징에서 시 주석과 회담한 뒤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에 무기를 주는 건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EU와의 관계도 망가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러시아 무기지원설'에 대한 강한 경고였다. 대만을 언급하며 "누구도 현 상태를 바꾸기 위해 무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시 주석을 거듭 견제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전쟁을 끝내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평화회담을 열어야 한다. 중국이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중재자 역할'을 독려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과 대조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가 얻어 갈 경제적 실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악역을 맡은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서방 민주진영 옹호를 위해 강경한 입장을 취해 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6일 중국 베이징에서 정상회담 후 악수를 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시진핑, 차별 대우"… 마크롱과는 '광저우 만찬'까지

중국의 '대접'은 마크롱 대통령에게만 집중됐다. 시 주석은 마크롱 대통령이 정상회담장인 인민대회당을 찾았을 때 직접 마중 나갔고, 기자회견과 만찬을 함께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홀로 회담 장소에 입장했고, 회담이 끝난 뒤엔 혼자 기자회견을 가졌다.

중국 외교부는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중국 방문 소식을 전할 때 '합의에 따른 방문'이라고 건조하게 표현했다. 홍콩명보는 "형식을 중시하는 중국에서 이는 명백한 차별 대우"라며 "그를 '마크롱 수행단 일원'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 주석은 7일 광저우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다시 만났다. 시 주석이 베이징 이외 지역에서 외교 일정을 수행한 건 이례적이다. 프랑스 정부도 "마크롱 대통령 역시 중국에 대한 신뢰를 보이는 차원에서 시 주석 아버지 시중쉰이 1978~1980년 당서기를 지낸 광둥성을 찾은 것"이라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광저우에서 쑨원대 학생 1,000명과 대화하고, 중국 투자자 등을 만났다. 이어 두 정상은 이틀째 만찬을 함께하며 경제 협력 강화를 다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마크롱 대통령의 방중 기업 수행단이 현지에서 20여 건의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고 7일 보도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