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다리 붕괴의 ‘악몽’
그날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1994년 10월21일 오전 7시38분. 아침 출근·등굣길에 한강 다리가 갑자기 무너졌다. 다리 중간 48m 구간이 한강으로 폭삭 내려앉았고 차량 6대가 순식간에 추락했다. 시민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날벼락 같은 참사였다. 1970년 와우아파트, 1995년 삼풍백화점 사고와 더불어 한국 3대 붕괴 사고로 일컬어지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다. 안전하다고 믿은 다리가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충격과 공포를 남긴 대형 사고였다. 시공사 동아건설의 부실 공사와 서울시의 점검·관리 부실이 원인으로 드러났다.
성수대교 참사 이후, 이런 후진국형 다리 붕괴 사고는 더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또 일어났다. 지난 5일 탄천을 가로지르는 분당 정자교의 보행로 일부가 3~4초 만에 와르르 무너지며 보행자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했다. 불과 4개월 전 안전점검에서 ‘양호’ 판정을 받은 다리라는데 어이없이 무너졌다. 부실한 시공과 안전 관리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고 당시 비가 내려 인근의 산책객이 거의 없었기에 더 큰 인명피해가 나지 않았다고 하니 아찔할 뿐이다.
전국에 정자교와 비슷한 길이의 작은 다리가 3만8000여개이고 그중 20%는 만들어진 지 30년이 넘었다고 한다. 정자교도 1993년 완공됐다. 이런 다리들은 시설이 노후화해 안전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커서 관할 지자체의 정밀한 점검이 필수다. 인력과 예산 부족을 핑계로 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육안으로 살펴보고 외양만 보수하는 방식으로는 다리가 무너지는 대형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없다. 보행로와 가드레일 등 교량 부속 시설물까지 철저히 점검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성남시는 탄천의 교량 20곳을 대상으로 긴급 안전점검하기로 했다. 고양·부천시도 다리와 도로 시설물 점검에 나섰다. 경기도는 안전등급 C등급 이하의 교량을 전수점검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맹탕 점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수사당국도 설계·시공과 안전점검 과정의 부실 여부를 엄정히 밝혀야 한다. 시민들이 다리를 건너거나 다리 아래를 지나기조차 불안해한다면 안전 사회를 입에 올릴 수 없다. 정말로 ‘멀쩡한’ 다리가 절실해졌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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