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 실사단 홀린 ‘어메이징 부산’ [만물상]
부산역에 엑스포 실사단이 도착하던 날, 역 광장은 5500명이 넘는 시민들로 후끈 달아올랐다. KTX에서 내린 실사단이 전통 복장을 한 취타대를 따라 대합실을 빠져나오자 광장은 땅바닥을 구르며 튀어 오르는 시민들의 발 구름과 환호성, 노랫소리로 뒤덮였다. “아~ 미래 부산, 아~ 엑스포~” 노래를 부르며 실사단 위원 나라의 국기를 흔들었다. 위원들이 꽃다발을 든 채 휴대폰으로 부산 시민을 찍기 시작했다. “마치 팝스타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세계 유일의 부산 유엔군 묘지에 갔을 때는 ‘소녀 외교관’으로 이름난 에이시아양(16)이 공원 안내를 맡았다. 캐나다인·한국인 부모를 둔 이 부산 토박이 소녀는 그동안 참전 용사들과 편지를 주고받아 온 사연으로 유명하다. 실사단 위원 여덟 중 넷이 6·25 참전국 출신이다. 이들은 엔젤피스 합창단의 노래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들으며 자기네 나라 용사들의 이름을 찾았다. 엑스포 덕분에 70여 년 세월을 점프하듯이 “모두 뭉클해졌다”고 했다.
▶국제박람회기구(BIE)가 후보 도시들을 놓고 고를 때 평가 기준에 딱 맞아야 높은 점수를 줄 것이다. 평가 항목은 14분야, 61항목으로 짜여 있다. 첫째가 ‘박람회 주제에 맞느냐’는 것이다. 둘째는 ‘박람회 신청 이유’다. 이것이야 유치 실무자들이 계획서 제출과 4차례의 PT로 어련히 잘했을까 싶다. 핵심은 셋째, 넷째 평가 항목인 ‘시민의 태도’와 ‘매력도’이다. 그중 9가지 세부 항목으로 들여다본다는 ‘매력도’ 점수가 결정적이다.
▶어제 통화한 부산시 담당자는 “광장을 메운 시민들을 뵙는 순간 오히려 제가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혹시 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자원봉사를 조직했던 한 대학생은 “신청자가 몰려 수백 명을 돌려보냈다”고 했다. 한 택시 기사는 “실사단이 걸어만 가도 시민들이 난리였다”고 했다. 마지막 만찬 때는 실사단 한 사람 한 사람의 방문 사진 수십 장을 담은 자개 앨범이 테이블마다 놓였는데 저절로 탄성이 터졌다.
▶실사단이 떠난 뒤 박형준 시장이 시청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혼이 쑥 빠지셨지요? 며칠간 정신없이 뛰어다닌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갓 들어온 신입 직원부터 시장까지 혼이 빠질 만큼 정신없었던 것, 시민을 독려하려다 외려 시청 직원이 눈물 글썽이며 가슴 벌렁였던 것, 실사단은 분명 그것을 보고 갔을 것이다. ‘어메이징 부산!’을 연발하면서 말이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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