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후손’ 대선주자 만든 대만 민진당…한국 민주당 닮은꼴

한겨레 2023. 4. 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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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홍명교의 이상동몽][한겨레S] 홍명교의 이상동몽
대만 독재자 후손의 인기
지난해 11월26일 대만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장완안 후보(왼쪽 셋째)가 지지자들과 함께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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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8일 타이베이시 2·28평화기념공원에서 거행된 2·28사건 기념식에서 기습시위가 발생했다. 대학생 류핀유 등은 학살자 장제스의 증손자인 장완안 타이베이 시장이 “위선적으로 희생자를 위한 추모식을 개최하고 있다”며 “살인자는 무릎 꿇고 사죄하라!”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장 시장이 선 연단으로 돌진했다. 경찰의 진압으로 청년들의 짧은 절규는 끝났다. 장 시장 취임 전 2·28유족회는 성명을 통해 “장완안의 2월28일 행사 참석을 거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매년 공동으로 기념식을 주관해온 단체 역시 보이콧을 선언했다.

1947년 2월27일, 타이베이 시내 찻집 근처에서 전매국 단속반원들과 시민들 간 충돌로 촉발된 2·28사건은 이튿날부터 5월16일까지 대만 각지에서 벌어진 항쟁이자 시민 학살극이다. 1992년 대만 정부는 ‘2·28 연구보고’를 통해 이 사건으로 약 1만8천~2만8천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2·28 직전 대만 사회는 국민당 엘리트들과 외성인(장제스를 주축으로 중국 본토에서 넘어온 중국인)에 편향된 통치, 부정부패, 본성인(대만 토박이)에 대한 차별 등 첨예한 갈등을 안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확대로 고통받고 있었다. 이 연구보고는 “해방 직후 대만인들이 가졌던 조국에 대한 기대는 곧 실망과 경멸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장제스의 ‘종신 계엄령’

1949년 5월, ‘국부’ 장제스 총통은 계엄령을 발동했고 1975년 그가 죽은 뒤에도 계엄령은 이어져 대만에선 무려 40년 동안 집회·표현의 자유가 억압됐다. 오랫동안 억눌려온 대만 민중이 항쟁의 물꼬를 튼 것은 1979년 당국의 집회 금지 통보에도 가오슝에서 대규모 시위를 개최하면서다. 주동자들은 ‘반란 혐의’로 기소됐지만 더 큰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이들은 오늘날 집권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주축이 됐고, 2000년 3월 마침내 정권 교체를 이룬다.

공식적인 역사 서술에서 우리는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이뤘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 이후 평범한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물결을 맞닥뜨렸고, 양극화는 심화됐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기점으로 강화된 노동권은 1997년 외환위기 이래 내리막길을 걸었다. 현재 대다수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주거빈곤 등에 시달린다. 민주주의가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만 사회도 다르지 않다. 2·28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대만 시민단체 ‘민간 진상 및 화해 촉진회’는 과거 독재정권의 억압과 이로 인한 사회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피해자 보상과 가해자에 대한 법적·윤리적 평가, 정치적 박해의 진실을 규명하고 알리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독재 청산과 ‘더 많은 민주주의’가 단순히 정책들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회가 방향성을 상실하는 순간, 현실에서의 왜곡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발생한다. 장완안은 이런 모순을 드러내는 상징적 인물이다. 이 ‘독재자’의 증손자는 2015년 입법회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즈음은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이 첫 여성 총통에 당선되면서 기대를 한 몸에 받을 때이기도 했다. 차이 총통은 동성결혼 법제화와 탈원전 정책 등 진보적 행보를 보였으나 노동정책에 있어선 내내 오락가락했다.

2016년 12월 개정한 노동기준법은 주 5일 근무, 휴일근로수당 인상, 교대제 노동자의 11시간 휴식 보장 등을 명문화하고 있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누구에게도 지지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 자본가단체는 “원가 상승과 교대 근무의 어려움”을 초래한다며 재개정을 요구했다. 반면 노동조합과 청년들은 이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점을 비판했다. 그해 여름 청년단체들은 청년 노동자 33%가 평일 초과근무수당을 전혀 받지 못했으며, 7%만 규정에 따라 주휴수당을 받는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연차를 사용해본 노동자는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2017년 10월30일, 차이잉원 정부는 자본가들의 압력에 굴복해 재개정안을 내놨다. 이번엔 주 5일제 후퇴, 근로시간 상한선 연장, 교대근무 간격 조정 등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목적으로 했다. 현실에서 노동자들은 사장의 연장근로 요구를 거절할 수 없기에 12일 내내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상황이 빤히 예상됐다. 노동조합들은 이 개정안이 더 극심한 과로사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진당 향한 분노→장완안 성원

3주 뒤인 2017년 11월23일, 민진당은 논란이 여전한데도 개정안 통과를 밀어붙였다. 노조들은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회의장 진입을 시도했고, 경찰과 크게 충돌했다. 당일 저녁 장완안 의원은 입법회장에서 노동기준법 개정 반대 필리버스터에 나섰다. 사회정책에 있어 민진당보다 보수적인 국민당 정치인이 노동권을 후퇴시키는 법안에 반대 입장을 강력히 개진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자 민주 진영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일부 인사들은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만든 입법회에서 학살자의 후손이 ‘춤을 추는 모습’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되레 재개정안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 중이던 장완안에게 “버티라”고 외친 사회운동단체와 노조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노동운동가의 절규는 장완안에 대한 응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민진당이 스스로 초래한 결과에 대한 분노이자, 노동권 후퇴를 막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대만국제노동자협회의 천슈롄 활동가는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장완안이 노동기준법 개악을 저지하는 목소리를 외칠 무대를 만들어준 것은 누구입니까? 운동조직들이 아닙니다. 민진당입니다.”

이런 행보를 통해 독재자의 후손 장완안의 지지 기반은 탄탄해졌다.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에서 장완안은 민진당의 천스중을 물리치고 42.29%를 득표해 타이베이 시장에 당선됐고, 국민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등극했다.

민진당이 집권 직후부터 노동시간 유연화를 밀어붙인 모습은 노동계와 청년층의 실망을 불러왔고, 궁극적으로 이는 지난해 지방선거의 참패를 불러왔다. 노동운동가들이 외쳤듯, 장완안을 무대로 부른 것은 민진당 자신이었다.

대만 정치의 아이러니한 상황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온다. 윤석열 대통령을 정치무대로 누가 불러왔나. 촛불 시기 약속을 팽개치고 무리한 인사 임명과 내로남불 부동산 투기 등 상대 당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결과 아닐까. 민주화의 성취를 독점하며, 오늘날의 과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정치세력에 책임이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대만 민진당과 한국의 어떤 거대야당은 썩 닮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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