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쪘네요"…수치심 부추겨 돈 버는 이들 [책마을]
캐시 오닐 지음 / 김선영 옮김
흐름출판 / 320쪽|1만8500원
수학자가 분석한 수치심 비즈니스
뚱뚱함을 부끄러운 일로 만들어
다이어트 산업 키운 회사들
혐오·차별 등 부작용 낳기도
과학적 논증보다 개인경험 의존
비슷한 책 많아 참신함 떨어져
인간은 오랫동안 수치심이라는 사회적 구속 아래 살아왔다. 성경에서는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善惡果)를 먹은 이후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적혀 있다. 수치심은 윤리의 다른 이름으로 공동체를 유지하는 핵심으로 작용해 왔다. 모욕죄 등을 통해 성문법 체계 안에도 들어 있는 감정이다. ‘부끄럽다’는 표현으로 사과를 대신하는 정치인도 있다.
수치스러운 행동의 기준은 시대마다 달랐다. 음주운전을 부끄러운 짓으로 여긴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수치심은 어디에서 연유한 걸까. 정당한 감정인가. 최근 국내 출간된 <셰임 머신>은 수치심을 비즈니스 차원에서 바라본다. 다이어트 산업은 비만을 부끄러운 일로 만들고, 명문대 학위 브로커들은 ‘지잡대(지방의 유명하지 않은 대학)’라는 모멸적 표현으로 지방 대학 졸업장을 부끄럽게 만든다. 책은 수치심을 부추겨 돈을 버는 산업 생태계, 이른바 ‘수치심 머신(the shame machine)’에 직격탄을 날린다.
<셰임 머신>의 저자는 수학자 캐시 오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UC버클리를 졸업했고 하버드대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립 여자대학 버나드칼리지의 수학과 종신교수로 지내다가 금융권에 투신했다. 월스트리트에서 헤지펀드 퀀트(계량분석 트레이더)로 일했다. 정보기술(IT) 회사에서 데이터과학자로 금융상품의 위험도와 소비자 구매 패턴 등을 예측하는 수학 모형을 개발하기도 했다. <대량살상 수학무기>라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지적하는 책도 펴냈다.
오닐에 따르면 ‘수치심 비즈니스’는 끊임없이 선택이라는 말을 떠벌린다. “수치심 산업의 변함없는 한 가지는 선택이라는 개념이다. 셰임 머신은 모든 실패가 피해자들로부터 초래됐다고 단정한다. 부유해지고, 날씬해지고, 똑똑해지고, 약물에서 자유로워지고, 성공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고 본다.”
저자가 수치심에 주목하게 된 것은 몇 년 전 한 교사를 만나면서다. 이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도 해고될 위기에 처했다. 표준화된 교원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교육청에 채점 기준을 알려달라고 요구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수학적 문제로 당신은 봐도 이해하지 못한다.”
교사는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다고 했지만 평생 수학을 다뤄온 오닐은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비만이 떠오르며 수치심이 밀려왔다. “나는 그 교사의 수학적 수치심을 한 발 떨어져 지켜보다가 나의 비만 수치심을 알아챘다.”
수치심을 부추기는 현상은 혐오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사람들의 어떤 상태나 행동을 부끄러운 일로 규정하면 공격하기 쉽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에서 “이 두 감정은 공통적으로 인간이 인간임을 숨기고 부정하려는 인지적 판단과 욕구를 수반하기 때문에 사회 내에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집단을 배척하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셰임 머신>은 수치심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전달하지만 과학적 논증보다는 개인적 경험에 기대고 있다. 통계의 함정을 보여주는 여러 사례도 언급하는데 치밀한 데이터 분석은 찾아보기 힘들다. 수학자 오닐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을 수도 있다. 수치와 혐오라는 감정을 다루다 보니 불가피한 서술 방식이겠으나 문제는 이런 주제의 책이 이미 많다는 것이다.
국내 출간된 책만 해도 <혐오와 수치심> <여성의 수치심> <일그러진 몸> <수치심 권하는 사회> 등이 있다. 신간임에도 이들 책보다 논리적 전개가 탄탄하다거나 문제의식이 참신하다는 인상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당부는 무시하기 힘들다. “본질적으로 수치심을 없애는 것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이는 당장 오늘부터 복지사무소, 기업 이사회실에 이르기까지 제도적 영역이든 개인적 영역이든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을 신뢰하고 존엄하게 대우하자고 요구하는 일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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