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가 부러울 ‘20세기 책받침 아이돌’ 티파니와 데비 깁슨
티파니와 데비 깁슨
역사적인 일이다. 지민의 노래 ‘라이크 크레이지’가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 1위에 올랐다. 한국 가수가 이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처음은 아니다. 비티에스(BTS)는 2020년 ‘다이너마이트’를 시작으로 모두 6곡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렸다. 솔로 가수로서는 처음이다. 싸이가 2012년 ‘강남 스타일’로 7주간 2위를 차지한 이후로 한국 솔로 가수 노래가 이토록 높은 순위에 오른 적은 없다. 나는 진심으로 지민에게 축하를 보낸다. 나는 아미는 아니다. 내가 아미였던 기간은 1996년에서 1998년까지 딱 2년뿐이다. 그래도 비티에스의 빌보드 차트 석권을 지켜볼 때는 아미의 마음이 된다.
비티에스 멤버 중 현재까지 솔로 앨범을 발표한 건 모두 다섯명이다. 뷔와 정국은 아직 앨범을 내지 않았다. 2022년 12월 입대를 한 진을 시작으로 모든 멤버들이 군대에 갈 예정이다. 뷔와 정국도 입대 전 솔로 앨범을 발표할 것이다.(물론 이건 내 기대다.) 자, 여기서 많은 사람이 자기만의 예상을 내놓기 시작할 것이라 믿는다. 지구 최고의 아이돌인 비티에스는 병역을 모두 마치고도 왕좌를 지킬 수 있을까? 물론 나는 비티에스가 2년의 세월 따위는 충분히 버티고 다시 빌보드에 입성할 것이라 믿는다. 아미가 두려워서 그냥 하는 소리 아니냐고? 아니다. 나를 믿어달라. 아미도 나를 믿어달라.
‘용호상박’ 10대 소녀가수
나는 아이돌을 사랑한다. 1980년대부터 사랑해왔다. 1980년대에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있었냐고? 아이돌 산업은 따지고 보자면 미국에서 시작됐다. 10대 소년·소녀 가수들을 발굴하고 메이저로 데뷔시키는 본격적 아이돌 산업은 198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개막했다고 믿는다. 여러분도 잘 아는 뉴 키즈 온 더 블록, 뉴 에디션 같은 보이 그룹이 그 시절에 탄생했다. 1990년대에는 백스트리트 보이스, 엔싱크 같은 보이그룹,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같은 10대 소녀 가수들이 빌보드 차트와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그들을 ‘틴팝’ 가수라고 불렀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은 그걸 아예 ‘아이돌 산업’으로 만들었다. 미국 틴팝과 일본 아이돌 산업의 장점을(그리고 단점까지도) 한국에 이식한 결과가 지금의 케이팝 아이돌이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던 아이돌 가수는 미국의 티파니와 데비 깁슨이었다. 10대 가수가 드물던 1987년 데뷔한 여성 가수들이다. 티파니가 겨우 열다섯 나이로 발매한 첫 앨범 <티파니>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아이 싱크 위 아 얼론 나우’(I Think We’re Alone Now)와 발라드 ‘쿠드브 빈’(Could’ve Been)이 연이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수록곡은 무려 비틀스 노래 ‘아이 소 허 스탠딩 데어’(I Saw Her Standing There)를 커버한 ‘아이 소 힘 스탠딩 데어’(I Saw Him Standing There)였다. 당시 인기 가수 박남정이 ‘널 그리며’로 유행시킨 기역니은 춤은 사실 티파니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춘 춤을 가져온 것이라는 설이 강력하다. 티파니는 한국에서도 꽤 인기가 있었다. 그는 팝스타의 한국 공연이 거의 드물던 1989년 내한 공연을 했다. 들어온 김에 찍은 해태음료 ‘써니텐’ 광고를 여전히 기억하는 4050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거의 동시에 열여섯 나이로 데뷔한 데비 깁슨의 인기도 티파니에 못지않았다. 데뷔 앨범 <아웃 오브 더 블루>에서만 ‘온리 인 마이 드림스’(Only in My Dreams), ‘셰이크 유어 러브’(Shake Your love), ‘아웃 오브 더 블루’(Out of the Blue), ‘풀리시 하트’(Foolish Heart) 등 네곡의 빌보드 차트 톱10 싱글이 나왔다. 둘의 인기는 그야말로 용호상박이었다. 한국 10대 잡지들이 베껴서 쓰던 미국 타블로이드 잡지의 기사는 ‘둘 중 누구를 더 좋아하세요?’라는 뻔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엠제트(MZ) 세대 독자라면 1990년대 말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동시에 등장해 벌인 10대 여성 가수의 대결을 기억할 것이다. 그 역사적 대결은 티파니와 데비 깁슨이 먼저 길을 닦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1980년대 미국 팝의 역사를 새로 쓰다
티파니와 데비 깁슨은 음악적으로는 조금 달랐다. 캘리포니아 시골 태생인 티파니는 이를테면 노동계급의 소녀였다. 컨트리 음악을 바탕으로 팝적인 감각을 조금 끼얹는 구수한 노래들을 불렀다. 그는 첫 앨범을 발매하기 전 주로 미국 중소도시의 쇼핑몰을 돌며 공연을 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데비 깁슨은 중산계급의 소녀였다. 일찍이 재능을 알아챈 부모는 집 차고를 음악 스튜디오로 만들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데비 깁슨은 티파니와는 달리 모든 노래를 직접 작사·작곡했다. 컨트리 바탕의 티파니와는 확실히 다른 도회적 팝송들이었다. 둘은 달랐기 때문에 라이벌이 될 수 있었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혹은 블랙핑크와 트와이스처럼 말이다. 1980년대 10대였던 내 마음은 티파니와 데비 깁슨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두 사람이 1989년에 내놓은 후속 앨범은 데비 깁슨의 완벽한 승리였다. 티파니의 <홀드 언 올드 프렌즈 핸드>는 좀 더 어른스러운 앨범이었지만 히트곡이 많이 나오질 않았다. 반면 데비 깁슨의 2집 <일렉트릭 유스>는 차트를 휩쓸었다. 아직도 내가 노래방에 가면 부르는 데비 깁슨 최고의 히트곡 ‘로스트 인 유어 아이스’(Lost In Your Eyes)는 정말이지 팝의 역사에 남을 명곡이다. 이 앨범으로 데비 깁슨은 빌보드 앨범과 싱글 차트에서 동시에 1위를 기록한 최연소 여성 아티스트가 됐다. 부침은 있었지만 10대 소녀 둘이서 팝 음악의 새로운 기록들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니 티파니와 데비 깁슨을 현대적 아이돌의 첫번째 사례로 드는 것도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닐 것이다. 그들 이후로 비로소 10대 뮤지션들이 이르게 데뷔를 하고 같은 세대 팬덤의 힘으로 차트를 석권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게 됐으니까 말이다.
추락하지 않으려 발버둥쳤지만…
그래서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냐고? 슬프지만 1980~90년대의 아이돌은 생명이 그리 길지 않았다. 티파니와 데비 깁슨의 세번째 앨범은 대실패였다. 문제는 동일했다. 두 가수 모두 조금 더 어른스러운 음악을 하고 싶었다. 20대가 된 그들은 10대의 우상을 넘어 어른의 우상이 되고 싶었다. 둘은 좀 더 어른스럽고 당대의 시류에도 맞는 앨범을 냈다. 그러자 팬들이 떠나갔다. 누구도 그들의 ‘어른 음악’을 듣지 않았다. 지금의 아이돌 산업처럼 끈끈하고 강력하게 조직된 팬덤이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둘은 계속해서 음반을 냈지만 결코 10대 전성기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2002년 티파니는 <플레이보이> 누드 화보를 찍었다. 2005년 데비 깁슨도 <플레이보이> 누드 화보를 찍었다. 나는 슬펐다. 그들은 잊히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다. 발버둥을 치는 만큼 더 빠르게 잊혔다. 팬덤이란 잔인하다. 당신을 세상의 꼭대기에 올렸다가 별안간 바닥으로 내친다. 쓰러져 누운 당신을 밟고 새로운, 혹은 더 젊은 우상을 향해 달려간다.
아니다. 나는 비티에스의 운명을 걱정하며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1980년대와 2020년대는 다르다. 소셜미디어와 조직화된 팬덤의 시대에 아이돌의 생명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뒤 솔로 아티스트로 성공을 거둔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엔싱크 출신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영국 보이 그룹 테이크 댓 출신 로비 윌리엄스는 ‘아이돌 출신은 솔로로 성공할 수 없다’는 법칙을 완벽하게 깨뜨린 가수들이다. 비티에스 이전 가장 인기 있는 보이 그룹 원 디렉션 출신의 해리 스타일스는 올해 그래미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받았다. 사람들은 음악 산업이 점점 더 비인간적이 되어간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그건 반쪽짜리 사실이다. 반짝 가수는 오히려 20세기 이전에 더 많았다. 티파니와 데비 깁슨은 새로운 기회를 얻지 못했다. 지금의 아이돌들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있다. 그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전장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시스템 안에서도 인간적인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티파니는 2022년에도 11집 앨범을 발매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앨범은 권하지 않겠다. 과거의 그림자를 다시 들추는 것은 과거의 팬에게는 조금 고통스러운 일이다. 대신 나는 이 글을 티파니의 히트곡 ‘쿠드브 빈’을 들으며 쓰고 있다. “아름다울 수도 있었죠. 옳을 수도 있었죠. 나는 절대로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할 거예요. 아주 춥고 외로운 밤마다.” (소녀시대 멤버가 아닌) 티파니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엠제트 세대 독자라면 이 아름다운 노래를 다시 발견해주시길 부탁드린다. 특히 이별 뒤에 듣기에는 이만큼 훌륭한 청승이 또 없다.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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