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민의 노크] 학폭과 정시

문광민 기자(door@mk.co.kr) 2023. 4. 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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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입 정시전형 평가 요소에 학폭 징계 기록을 반영해 가해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과 교육부가 최근 '학폭 대책 관련 당정협의회'를 열고 내놓은 추진 과제 중 하나다. 당정은 가해 학생의 징계 기록 보존 기간을 늘리고, 취업에도 학폭 기록을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대학들은 학폭 징계 기록을 정시에 반영하겠다면서 당정의 공언에 화답하고 있다. 기이한 일이다.

'학폭'과 '대입'이라는 이질적인 두 영역이 첫 만남을 이룬 시점은 11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말 대구에서 중학교 2학년 학생이 동급생들의 집단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소년의 유서에 적힌 가해 학생들의 가혹행위는 잔인했다. 2012년 2월 정부는 '학폭 근절 종합 대책'을 마련했다. 여러 대책들 중에는 학교생활기록부에 학폭 가해 사실을 명시한다는 방안이 포함됐다. 학폭 가해 학생들이 대학 진학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게 함으로써 스스로 경각심을 갖도록 한다는 의도였다.

결과는? 신체적·물리적 폭력에서 언어적·정신적 폭력으로 괴롭힘의 유형만 바뀌었을 뿐 학폭은 사라지지 않았다. 종합선물세트 같은 대책이 나온 이후 학교 현장에선 매년 두 차례에 걸쳐 학폭 실태조사가 실시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형식적인 조사에 그치고 있다. 학폭을 얼마나 예방했는지, 괴롭힘을 당한 학생의 피해 회복은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 종합 대책의 실효성에 관한 검토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폭 징계 기록을 대입에 반영하는 방안을 두고 이를 학폭 근절의 묘수로 여기는 모습은 우습다. '학폭을 저지르면 대입을 그르칠 수 있으니 학생 스스로 정신 차려야 한다'는 어른들의 경고는 공허하다. 학교 현장 어디서나 대입이 지상 과제처럼 여겨진다는 믿음은 착각에 가깝다. 수험생은 갈수록 줄고 있다. 2013학년도 수능 응시자는 62만1336명이었다. 2023학년도 수능에선 44만7669명으로 줄었다. 올해 치러지는 2024학년도 수능 응시자는 40만명 안팎으로 예상된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수시든 정시든 원서만 내면 합격하는 대학 모집단위도 늘고 있다. 학폭 징계 기록 때문에 대입 당락이 갈리는 사례가 애초에 얼마나 있겠는가.

정시 평가 요소에 학폭 가해 기록을 반영한다는 발상은 '정순신 사태'가 없었다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 아들, 자식의 성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아버지, 피해 학생은 학교를 떠난 사이 가해 학생은 정시로 서울대에 입학하는 결말. 여기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차원에서 이번 대책이 마련됐다.

아무리 그래도, 당정을 이끄는 어른들이 머리를 맞대고 낸 정순신 사태의 후속책이 '학폭 징계 기록의 정시 반영'이라니.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교육기관 본연의 의미가 한국 공교육 현장에서 빛을 잃은 지 오래라지만, 학폭 근절의 대책마저 대입을 빼놓고 말할 수 없게 된 상황은 기이하다. 학폭으로 영혼이 황폐화하는 피해 학생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어른들의 굳은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은 대입뿐이었을까. 세상이 달라져도 여전히 입신양명의 첫 단추로 입시를 꼽는 어른들이 있는 한 제2, 제3의 정순신 사태는 반복되지 않을까.

[문광민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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