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완의 주말경제산책] 이렇게 훌륭한 은행이 이렇게 빨리 망하다니!
3월에 발생한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예금 인출 사태는 발생하기 전엔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던 사건이므로 말 그대로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연준의 파월 의장은 SVB 사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라고 오히려 기자들에게 되물어보기도 하였다. 1980년대 초에 창업된 SVB는 기존의 은행과 전혀 다른 영업방식으로 성공한 나름 혁신적인 은행이다. 이번 충격만 아니었으면 경영학 교과서에 21세기 가장 성공한 은행으로 기록되어 많은 학생들이 사례분석을 하였을 것이다. 4300여 개의 시중은행이 무한 경쟁하는 미국 은행업계에서 SVB는 도대체 어떻게 성공하였을까?
가장 큰 SVB의 강점은 기술을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스탠퍼드대 공대 교수와 도매금융의 강자 웰스파고 은행 출신 직원이 창업한 은행이어서 기술에 기반한 신생기업의 성공 가능성을 미리 알아보았다. 실로 관료적인 대형 은행들이 가지지 못한 장점이었다. 될 성싶은 신생기업에 미리 접근하여 파격적인 대출을 해주었다. 더 나아가 SVB는 창업자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창업자들에게 수많은 사교파티를 주선하여 이들이 창업 생태계를 이용할 수 있는 인맥과 정보를 제공하였다. 당연히 창업자들의 자산관리도 해결해 주었다. 이런 영업 방식은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성장한 프라이빗뱅킹(PB) 영업과 유사하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PB였던 친구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자신이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고액 자산가 가족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파티를 열어주는 것이라 하였다.
SVB는 기술에 대한 뛰어난 안목과 창업자들에게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40여 년 만에 미국 내 자산 규모 16위 은행으로 급성장한다. 예금 인출 사태가 발생하기 바로 전 2월에는 권위 있는 포천이 SVB를 미국의 최고 은행에 선정하기도 하였다. 한 달 사이에 급락한 SVB의 운명을 보여주는 1등이다.
이렇게 훌륭한 SVB에도 약점이 있었는데 기술을 보는 안목에 집중한 나머지 금융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소홀했던 점이다. SVB 경영진은 자산이 지나치게 국채에 쏠려 있음에도 연준이 계속해서 기준금리를 올리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국채보유를 계속하기로 결정한다. 거시경제의 흐름이나 중앙은행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는 판단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SVB의 결정적인 실수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위험관리임원을 공석으로 남겨둔 것이다. 이 또한 이해가 되지 않는 소홀함이다. 마치 수학을 너무 잘하는 고등학생이 자신감이 충만한 나머지 영어를 무시하여 수능에 실패한 경우라고 해야 할까?
SVB 사태에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의 책임도 가볍지가 않다. 미국의 연준은 2022년 3월부터 1년 동안 기준금리를 무려 4.75% 올렸다. 미국 역사상 가장 빠른 기준금리 속도이고 매월 40bp씩 올리는 속도다. 그렇다면 여기서 당연히 물어봐야 하는 것이 있는데 금리에 반비례하는 채권의 가격은 얼마나 하락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단순히 계산하면 금리가 4.75% 상승하면 미국 대표 국채 10년물은 40% 이상 가격이 하락한다. 방대한 시중은행 감시·감독 기능을 가지고 있는 연준은 급속한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은행의 자산 변화에 대하여 미리 심각하게 경고하여야 했다. 연준은 SVB와 회의를 하면서 국채 가격 하락에 대하여 경고하였다고 하지만 강제성 없는 recommendation, 즉 권고만 하였을 뿐이다.
연준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은행감독을 강화하였는데 수시로 주요 은행들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였고 BIS가 요구하는 은행 안전자산비율을 8% 이상으로 강화하였다. 미국 은행이 충분히 튼튼하다고 자신하였기 때문에 금리를 빠르게 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연준의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기준금리가 1년 만에 5% 가까이 상승하는 테스트는 없었고 BIS의 규정에서 미국 국채는 가장 안전한 자산인 티어(Tier) 1이어서 아무런 위험요소가 없었다. 연준이 상상하던 위험의 범위 밖에서 SVB 충격이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은행이 이렇게 빨리 망하다니!
[김세완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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